
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
한국에서 교육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이상이다. 브라질에서 살다 보니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 이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해서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하고 번듯한 직장과 연구소에서도 계속 자기를 단련한다. 마흔이 넘어서도 배우는 일에는 열심이다. 육십대에도 자기 성취를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은퇴 이후에도 배우는 일에는 진심이다.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환경과 학교를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의 교육열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교육의 우선순위를 한국사회가 허용하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자기 개발을 넘어 사회에 존재하는 계층을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사회와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좁고 자원하나 없는 땅에서 최고의 부가가치 상품과 높은 수준의 문화 컨텐츠를 만드는 것도 교육의 힘이다. 역사적으로 억압받고, 고난받고, 시련을 겪은 한국인에게 ‘배움’과 ‘학력’과 ‘자기 성취’는 ‘한국 사람되기’와 같은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과 학업 성취도는 지금의 한국사람과 한국사회를 만들었다. 한국의 미래는 인재이고 인재는 교육에서 나오기 때문에 길게 보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교육정책을 세운다. 10년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고 100년을 계획으로 사람을 키운다는 교육 백년대계(百年大計)는 한국에서는 통한다.
페르난도 아제베두(1894-1974)는 브라질 교육의 백년대계를 꿈꿨던 인물이다. 교육자, 비평가, 사회학자다. 미나스 제라이스 출신으로 예수회에서 교육을 받았다. 라틴어와 문학교사로 일하고 Estado de São Paulo 편집자로 활동하며 USP 교수가 되어 상파울로 공교육 상황에 대해 직면하게 된다. 1932년 그가 작성한 교육 개척자 선언문(Manifesto dos Pioneiros)의 첫 문장은 국가문제에서 교육만큼 중요하고 중대한 것은 없다고 선언한다. 당시 브라질 교육은 조직적이고 통합된 정책이 없었다. 개혁은 자의적이고 산발적이었다. 기초가 없는 곳에 올려져 얼마가지 못하고 무너지는 건물과 같았다. 교육의 철학적, 사회적 목적과 과학적 방법이 어떻게 교육에 적용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상황에 대한 판단과 분석도 하지 않은 채 교육의 정책이 결정되었고 예산이 투입되었다. 아제베두가 주도한 이 선언문은 교육의 목적에서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을 다루며 미래를 담고 있다. 교육이 당시 급격하게 진행되던 도시화, 산업화와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가야함을 선언한다. 그의 교육철학은 공교육 정책에 영향을 끼쳤고 1930년대 브라질의 뉴스쿨(escolanovista) 운동으로 이어졌다.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뿐 아니라 어떻게 교육이 모두에게 인식되고 인정되고 허용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개인의 교육은 사회와 국가발전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믿음이었다.
아제베두의 선언문이 나온 지 100년이 지났지만 브라질 교육의 현실은 밝지 않다. 아직도 이 땅에서 교육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수에게 열려 있기 보다 소수의 전유물이다.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사회계층을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아니라 장벽이다. 희망을 마주하기 보다 천장에 닿게 된다. 만 6~14세 의무교육은 빈부격차와 지역별 교육수준 편차로 학업성취도나 결과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돈이 있으면 사립학교를 보내지만 그렇지 못하면 수준 낮은 공립학교다. 좋은 사립학교를 나온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는다. 다수의 공립학교는 의무교육을 채우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절반 이상의 학생이 진학을 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교육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공립학교의 하루 수업이 5시간 미만인 것보다 휴일을 만들어내는(?) 공교육자들의 인식이 심각하다. 교육의 연속성과 성취, 개인과 사회에 대한 기여는 쉽게 이루어 지지 않는다. 인프라 개선을 위해 장기적 안목을 가진 국가지도자와 개인과 사회, 국가의 철학을 가진 교육자들, 그리고 부모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시급하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교육의 내용과 환경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야 한다. 교육은 모든 것을 가진 이 땅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교육은 브라질의 열려 있는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