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
‘핑크 타이드’(Pink Tide)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등장한 일련의 온건-진보-좌파성향 정부를 말한다. 국가주도경제, 미국 발 신자유주의 거부, 불평등 해소를 주장하며 공산주의의 상징인 레드와 구분하기 위해 핑크라는 심볼을 선택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1998년)를 시작으로 브라질의 룰라 다 시우바(2003년), 아르헨티나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2003년)와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2007년),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2006년),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2007년), 우루과이의 타바레 바르케스(2005년)와 조세 무지카(2010년), 칠레의 미셀 바첼레(2006년) 파라과이의 페르난도 루고(2008년),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2007년), 엘살바도르의 마우리시오 푸네스(2009년)는 21세기의 시작을 왼쪽으로 기울였다. 미국과 자본주의의 거대한 압력에 대한 반동으로 촉발된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실험은 지금도 시행착오 중이다.
핑크 타이드는 2010년대에 들어서 원자재 가격 하락, 지도자들의 부패, 경제 성장 둔화로 위기를 맞는다. 인플레이션과 치안불안으로 가난한 민주주의는 탈출구를 찾지 못한다. 브라질에서 룰라의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는 탄핵을 당하고 온건 좌파에 대한 거부감은 절정에 달한다. 그리고 남미의 맹주는 이탈리아 후손 군인출신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라는 대안을 찾게 된다.
2018년 55%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1988년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정치를 시작해 2014년 연방 의회 선거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는다. 정치경력 내내 범죄자들의 엄단을 주장하고 공권력에 대한 정당방위권과 일반인의 총기소지를 옹호하며 인쇄 투표를 의무화하기도 했다. 보우소나루는 이전 정권에서는 볼 수 없는 물리적 공권력 강화를 통한 사회안정을 기조로 삼았다. 지지자들은 보우소나루가 1964년부터 1985년까지 ‘살기 좋고 안전했던’ 권위주의 정부시절의 브라질을 재현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치안걱정이 없고, 가정의 가치가 지켜지고 공교육이 탄탄했던 매 주말 거리 곳곳에 슈하스코(Churrasco) 냄새가 퍼지던 그시절을 그리워 한다.
보우소나루는 무엇보다 복음주의교회를 위한 공간을 제공했다. 뿌리 깊은 가톨릭교회의 영향에서 복음주의교회는 자유롭지 못했다.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고 하지만 언제나 벽은 가톨릭이었다. 정치 행위자의 종교는 가톨릭이어야만 했다. 종교엘리트는 가톨릭이다.
하지만 최근 복음주의자들이 정치 일선에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한다. 브라질은 1988년 절차적 민주화의 확대를 시도하고 1990년대 후반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굳히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2003년 룰라의 등장으로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허울은 넓어졌지만 지난 25년간 실질적인 시민참여와 삶의 질 향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괴리감이 크다. ‘정돈되지 않는’ 2억명의 목소리를 브라질의 온건 좌파는 담을 수 없다. 룰라는 국민의 80%가 정치에 참여할 여력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20%의 지시를 따르라고 한다. 결과는 사회비용의 낭비다. 하지만 보우소나루는 20%를 장 정돈해서 80%를 끌고 가고자 한다. 20%는 공권력 회복, 공교육 공고화, 온전한 가족에 둘러싸인 건강한 복음주의교회가 핵심 주체다. 복음주의교회가 꼭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25년이나 고착화 되어 썩어가는 연못에 작은 돌맹이 하나 던지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