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
외계 행성에 온 듯한 이국적 분위기, 땅과 콘크리트 색의 대비, 파라노아 인공호수, 초현실적인 건축물은 이 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브라질리아(Brasília). 21대 대통령 주셀리누 쿠비체크(1956-1961)의 작품이다. 체코계 후손인 쿠비체크는 바르가스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정치 격동기를 무사히 지나 임기를 다 채운 대통령이자 브라질 자유주의와 발전주의의 상징이다. 자동차 산업을 시작하고 건축을 현대화하고 외교력을 확장했다. 전임 대통령이 추구했던 산업화에 엔진을 달고 개발과 낙관주의 국정 철학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꿈꿨다.
바르가스와 쿠비체크 사이 1947년 리우에서 인터아메리카 조약이 있었다. 2차세계대전의 상처가 아물기 전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19개 국가들이 합의한 안보 협정이었다. 유럽과 같은 전쟁통으로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북미, 중미, 남미의 공동방어선을 마련하고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을 전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조약으로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은 안보체제를 확립한 듯 보였으나 오히려 미국의 통제 아래에 놓이게 된다.
쿠비체크 시절 브라질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오퍼레이션 판 아메리카(Operation Pan America)는 미국과 라틴아메키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중남미 경제 개발 계획이다. 남미 맹주의 외침이었다. 지역내 협력과 미국의 경제적 원조를 요구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마셜플랜(Marshall Plan)에서 영감을 얻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완전히 무너진 서유럽은 경제재건과 공산주의 위기로 풍전등화의 상태였다. 미국이 개입한다. 양차 세계대전의 최대 수혜국인 미국은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대규모 경제원조를 통해 서유럽을 미국의 영향 아래에 두었고 이곳에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오퍼레이션 판 아메리카는 브라질식 자유주의, 민주주의, 평화주의로 요약된다. 앞으로 시작될 냉전시대를 예견이라도 하듯 쿠비체크는 정치, 종교, 사유재산, 기업을 보호했다. 자유세계의 안보와 관련된 곳이면 외교력을 동원해서 참여하고자 했다. 당시 브라질은 산업화와 근대화에 대한 청사진이 있었다. 무너진 서유럽, 공산화가 진행되던 동유럽, 그리고 이미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미국 사이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으려는 흔적이 발견된다.
쿠비체크는 저개발 극복을 민주주의로 보았다. 반민주주의는 저개발이다. 가난과 굶주림은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막는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빈곤은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한다. 빈곤은 불평등을 낳고 불평등은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결국 공동체 의식을 약하게 한다. 약해진 공동체 의식은 민주주의의 시스템을 왜곡한다. 쿠비체크는 경제를 계획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국가경제발전 계획을 6개분야 31개의 목표로 잡고 인프라 구축을 위해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자동차, 조선, 중공업, 발전소와 같은 대규모사업이 시작되었다. 거대한 국토에 혈관을 주입하는 도로를 깔았다.
쿠비체크가 남긴 자유주의, 개발주의, 성장주의 유산은 브라질 ‘전통적’ 국가와 ‘현대’ 국가를 차이를 드러냈다. 사회의 전분야에서 현대화를 추구했고, 세계경제 시스템에 유입됨에 따라 의존성은 심화되었다. 브라질이 세계화의 물결에 올라탄 것도 이 시점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사회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브라질리아에 브라질의 현대성을 새긴 것처럼 이 시기는 브라질이 하얀 백지에 대국에 대한 희망과 위대한 브라질의 꿈을 꾸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