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숙주 차돌박이 알배추 쌈” 이런 제목의 음식이름이 있나 싶지만 제가 최근에 H권사님의 지도하에 음식으로 향수병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숙주차돌박이 알배추쌈 레시피 살펴보기
음식 레시피가 정확한지 몰라서 재료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상파우르에서 숙주나물을 사다 놓은 것이 있어서 한 봉을 꺼내 씻었습니다. 차돌박이 1킬로그램 포장을 냉동실에서 꺼내서 해동했습니다. 속백이 속노란 배추를 깨끗하게 손질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쌈장입니다. 마늘 참기름 후추 등등과 소위 말하는 한국에서 들고 온 갖은 양념을 더해 된장과 섞어 만든 아내 비장의 무기인 쌈장이 탄생했습니다. 준비물 손질이 다 끝났습니다. 이층짜리 찜 솥 아래층에는 물이 펄펄 끓고 위층에는 가지런히 펼쳐놓은 배추 속 위에 원래 기름기가 많은 부위인 차돌박이를 얇게 저며 숙주와 함께 깔아 수증기에 배추 속과 함께 찝니다. 전기밥솥에는 귀리와 보리 좁쌀이 들어가 까슬까슬한 잡곡밥을 푹 뜸을 들여 최대한 먹기 편한 밥을 생산합니다. 낮 12시 30분 목사와 사모 둘이 먹기는 너무 사치스러워서 교회에서 가장 이웃에 있는 한 가정을 초대했습니다. 커다란 접시에 익힌 배추 쌈 재료를 듬뿍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그 옆에는 숙주와 차돌박이 찜을, 그리고 각자 자리에는 쌈장, 잡곡밥이 배달되었습니다. 식사기도는 목사차례인지라 “이 복된 음식을 우리만 먹지 않고 온 교우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날을 속히 허락해 주십사” 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유권사님, 그런데 말입니다. 이 현장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시름시름 앓던 향수병이 이 음식 한방에 씻은 듯 나은 것입니다. 꿈자리도 부드러워졌습니다. 향수병으로 투정부리던 생각이 들어서 ‘옆지기’에게 창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입이 짧고 까다롭다고 소문이 난 C집사도 음식에 진심인 H권사도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붉은색 ‘수제 삐멘따(Pimenta)’를 개인접시 한편에 따라놓고 연신 폭풍흡입입니다. 수북했던 노란배추찜이 바닥을 드러내고 숙주차돌박이도, 심지어는 깊숙이 숨겨두고 입맛 없을 때 조금씩 먹는 오징어젓갈까지 덩달아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구정을 앞둔 주일에는 오늘의 레시피를 더 보강해서 전 교인 ‘숙주 차돌박이 알배추 쌈’ 정식을 내 놓아야하겠다고 말입니다.
도반(道伴)들과 함께 선교행전(宣敎行傳) 써가기
유권사님, 저는 가벼운 향수병이지만 다른 이들도 다 저보다 더 깊은 스트레스가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정체성의 혼란과 이중문화의 벽을 넘어 우뚝 서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 받는 일들로 산적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도 자랑스럽게 각자의 자리에서 한 몫씩 감당하고 있어 어른들이 오히려 속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른 교인들도 마찬가집니다. 식당을 하는 성도들은 한국인 손님들을 넘어 현지화 하느라 애쓰고 있어 스트레스입니다. 매출이 현지인들에게서 반 이상 나와야 현실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든 교우들의 마음속에는 ‘현지화’라는 뜨거운 감자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서로서로 교우가 아닌 경쟁자로, 천국 가는 도반(道伴)이 아닌 원수로 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어 목사의 처신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파라과이 인디오 마을에 예배당을 일 년에 수십 채씩 건축하고 있는 임동수 선교사에게 부탁한 대형 떡판과 떡메로 찰떡을 함께 만들면서 설과 추석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성탄절에 기아대책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내는 빠나또네 행진, 선교지를 위한 바자회와 대서양 입구 뽈딸레자에서 현지인 선교를 부럽게 잘하고 있는 민진홍강지연 선교사 가정을 초청해 함께 하는 일, 김철기 선교사의 아마존 인디오 마을 병원선에 교우들과 함께 동참하는 일 등 새해에도 성도들과 함께 ‘선교행전’을 계속 써 나가려고 합니다.
맞잡은 손으로 이 거룩한 선교행전에 동참해주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도반(道伴): 도반(道伴)은 ‘같은 길을 서로 도우면서 함께 가는 좋은 벗’이란 뜻이다., 더욱 친근한 말로는 벗, 친구, 선우, 동무, 회원, 동기 등으로도 넓게 쓰인다. 그러나 도반은 단순히 기쁨과 슬픔, 고통과 좌절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를 통해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고 함께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