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모피어스를 만나다(10): 먼저, 전적 타락부터
성경적으로 보았을 때, 눈으로 보고 마음에 좋아 손으로 취하여 먹은 선악과, 신이 되어 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 선악과를 먹은 그 원죄는 결국 인간을 전적으로, 노예처럼 지배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 동일선상에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3).”
그러므로 죄를 짓는다는 것은 단순히 부도덕하거나 비윤리적인 생각이나 언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좀더 심오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다.
그리고 그 죄는 사람을 노예화한다. 그래서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게 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 없게 한다. 죄 가운데에서 잉태되고 출생한 인간에게는 그러한 자유가 없는 것이다(참조 시 51:5).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롬 14:23).”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육신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롬 14:18).”
죄가 얼마나 공교하고 치밀하게 사람을 노예화 하는지,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섭다. “(…) 그들이 이 같은 [죄악된] 일을 행하는 자는 죽음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18-32).” 그래서 모피어스가 이 세상을 상징하는 매트릭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거기서, 그토록 순수하게 공포스러운 정밀함을 보고, 너무나도 당연한 현실을 깨달았지. 매트릭스가 무엇이냐고? 바로 통제야.” 『귓속말』이라는 드라마의 명대사도 떠오른다. “악은 성실하다.” 그렇다. 이 세상은 순수하게 공포스럽고, 정밀하며, 성실하다.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그 아래 통제하기 위해서이다.
이 때 이 세상이 사용하는 무기가 무엇인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요일 2:15-17).” 육신의 정욕이라고 해서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몸에 좋고 편한 것에 목을 매도록 추구하는 욕망을 말한다. 안목의 정욕도, 눈에 보기 좋은 것에 목을 매도록 추구하는 욕망을 말한다. 이생의 자랑은 남에게 드러내기 좋은 것, 즉 명예나 인정과 같은 것을 목을 매도록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지나가고, 없어진다. 풀과 꽃과 같이 시든다. 그런데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에 매이라고 이 세상은 사람을 꾄다. 그래야 순수하고 정밀하며 성실하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공포의 노예로 살 것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이 벗어날 길 없는 죄악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