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유스터스: 변화와 회개
용이 된 유스터스에게는 용으로 변한 자기 모습이 끔찍해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걱정은 일행에게 버림받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마음씨 좋은 나니아 백성이니까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용으로 변한 유스터스의 처리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갑판 한쪽에 쭉 앉아 있게 하면 안 될까?” “밧줄로 묶어서 끌고가는 것은 어때?” “날아서 우리와 나란히 가게 할 수 없을까?” “그런데 도대체 먹이는 어떻게 주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스터스는 비로소 자기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얼마나 무겁고 성가신 짐이었는지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이전과 달라진 태도로 일행을 대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좀더 유익하고, 그들을 좀더 많이 도우려고 온 힘을 다 한다. 배의 파손된 부분을 수리하는 데에 쓸 나무를 뿌리째 뽑아 가져오기도 하고, 섬 전체를 날아다니면서 동물을 사냥하여 가져오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기본적으로 사람들 세계에서 떨어져 나가기 싫기 때문이다. 언제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그들과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마치 착한 일을 했을 때 프로도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좋아서, 그래서 계속 그의 곁에 머무르고 싶어서, 선행을 하는 골룸과 비슷한 태도인 것이다.
그러나 골룸이 자기 자신의 생각과 힘으로 행하는 선행이 그를 다시 이전의 호빗으로 되돌리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용으로 변한 유스터스의 선행은 그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가게 하지도 못했고, 사람들 세계에 완전히 동화되게 하지도 못했다. 일행은 그의 변화를 기뻐하면서도, 그리고 그를 이전과 다르게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용이었다. 시시각각 엄습하는 고립감에 대하여 절망적으로 싸우지만, 여전히 괴물이었다.
아슬란은 유스터스에게 스스로의 생각과 힘으로 행하는 선행의 한계를 보여준다. 어느 날 밤 유스터스를 찾아온 그는 옷을 벗으라는 것이었다. 유스터스는 용과 가장 비슷한 동물인 뱀이 허물을 벗을 수 있는 것처럼 용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의 비늘을 벗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피부도 술술 벗겨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물로 가서 목욕을 한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러나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그것 역시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바로 이것이 회개이다.
참된 변화에 관하여 자기가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고 또한 고백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자기 자신의 모습이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해도, 그래서 겸손하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스스로의 생각과 힘으로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자기 자신은 전적으로 무능력하다. 오직 구세주의 전능하신 능력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 때, 아슬란이 다가왔다. “네 옷은 내가 벗겨야 한다.” 그리고 그는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운 유스터스에게 와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용의 껍질을 박박 벗겨 내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발톱이 어찌나 깊이 파고들던지, 난 발톱이 심장까지 파고드는 줄 알았다니까. (...) 태어나서 그렇게 아파 보긴 처음이었어.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걸 벗겨 낸다는 기쁨 때문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