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아슬란(7): 멀리할 것
아슬란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하여 알려주고,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어 그와 좋은 관계를 맺고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동행하며 그와의 관계에 충실하고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 2:10).”
그런데 아슬란과 함께 과제를 행하며 알게 되는 것은 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생각할 때 그들이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그에게 소중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많은 경우 그들이 싫어하는 것들이다. 그 중,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안락함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니아 연대기』 제 6권 「은의자」에서, 아슬란은 주인공 유스터스와 질에게 실종된 나니아의 왕자 릴리언을 구해 오라는 과제를 준다. 그들은 마슈위글 퍼들글럼이라는 안내자와 함께 힘겨운 여행길에 오른다. 도중에 녹색 옷을 입은 여자를 만나는데, 그녀는 그들에게 따뜻한 목욕물과 푹신한 침대, 그리고 맛있는 음식으로 여행자들을 잘 대접하는 친절한 거인들이 사는 하르팡 성으로 가라고 한다.
그 이후, 나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첫째, 길이 더 안 좋아졌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나쁜 변화는 마음의 변화였다.
“그 숙녀가 일행에게 하르팡에 대해 말해 준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끼친 영향은 나쁜 것이었다. 아이들의 머릿속은 침대와 욕실과 따끈한 음식으로 가득 차버렸으며, 실내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이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슬란에 대해서는 입도 열지 않았으며, 이제는 잃어버린 왕자에 대해서조차 일체 말이 없었다.” - 『나니아 연대기』 제 6권 「은의자」, 115-116쪽.
천신만고 끝에 하르팡에 도착한 일행은 녹색 숙녀의 말 대로 편안한 침대와 따뜻한 목욕물과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았다. 그러나 그곳은 죽음의 땅이었다. 그 성에 사는 거인들이 그들을 죽이려는 것을 숨기려고 그토록 극진한 대접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유스터스와 질 일행은 마법에 홀려서 하르팡으로 간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의로 그리로 갔던 것이다. 당장 몸이 편안하게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슬란이 가르쳐준 길이 아니었다. 그가 가르쳐준 길은 표적을 따라 가는 길이었다. 편안하고 싶어 간 길은 죽음의 길이었던 것이다.
가까스로 거인들의 폐허에서 탈출한 일행은 얼마 안 가서 지하세계 난쟁이들의 포로가 된다. 안 좋은 일만 자꾸 일어난다며 한탄하는 질에게, 퍼들글럼은 이렇게 말한다. “자, 용기를 잃으면 안 돼, 질. 지금 네가 꼭 기억해야만 할 게 하나 있어. 우리는 이제 바른 길로 들어섰다는 사실이야. 우리는 폐허가 된 도시 아래로 가야 했는데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거기라고. 우리는 다시 표적을 따라가고 있는 중이지.” - 『나니아 연대기』 제 6권 「은의자」, 179쪽.
그렇다. 좋은 일이 일어나건 나쁜 일이 일어나건, 가고 있는 길의 방향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