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해가 바뀌고 나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지나 간 것은 ‘묵었다’라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 이미 지나간 해는 묵은 해로 불려지게 되고 어김없이 새로운 해를 맞으면 묵은 것을 접어 둔다. 그러나 지나간 그 시간의 것도 그 당시에는 소중한 오늘이고 묵은 게 아닌 새로운 한 날이 아니었던가!

 다시금 시작되는 한 해의 첫 글을 마음이라는 것으로 시작해 보려고 한다. 지난 날의 마음이 아닌 오늘의 마음, 그리고 내일이 되어도 변함없는 마음을...... 사람의 마음에는 세 가지의 마음이 있다고 한다. 의심, 욕심, 변심. 마음이라는 낱말을 떠올리면 아름다운 말일 거라고 누구나 동감하는 말인데 왜 하필 유쾌하지 않은 말만 골라서 마음의 의미를 표현하는 걸까? 거기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마음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생각, 인지, 기억, 감정, 의지, 그리고 상상력의 복합체로 드러나는 지능과 의식의 단면을 가리킨다.]라고 일반적으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상상의 복합체 속에 위에 언급한 세 가지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쓰메 소세끼, 일본 작가의 ‘마음’이라는 소설을 한 때 아주 깊이 분석했었다. 그 책에서는 사람의 마음에 ‘변심’이라는 것을 주로 다루었는데 타인의 변덕성을 비판하고 탓하면서도 도장을 찍는 것과 같이 그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고 남의 행동을 탓하면서 정작 자신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을 때 자신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힘은 무척 약하다는 것이다. 약하다기 보다 오히려 관대해지는 면이 나타나기도 한다. 때문에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면 변덕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덧없이 변한다고 해서 악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의 본성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니까. 

 마음 속에 있는 욕심이 또한 문제인데 아흔아홉 개를 가진 사람이 하나를 채워 백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다. 하나도 없는 자를 비교하지 않고 나보다 많은 백 개를 가진 자를 탐내기 때문에 그 하나를 채우기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그 하나를 얻기 위해 이미 소유한 아흔 아홉 개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도 이를 언급한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는다고...... 있는 것에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이 인색하면 욕심이 슬금슬금 자리를 차지한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신뢰하는 마음이 없으면 의심의 마음이 든다. 의심은 한없이 상상력을 발동하여 있지도 않은 일들을 마음껏 부풀려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든다. 비근한 예를 들어본다. 가족이나 식구를 위해 나름 정성을 들여 상을 차렸으나 몇 숟갈 뜨지 않은 식구를 대할 때 떠오르는 생각은 실로 오만 가지다. 무엇이 잘못 되었나? 음식 차림이 부실했나, 간이 맞지 않았나, 재료가 신선하지 않았나...... 의심의 마음은 점점 고조되어 화가 치밀게 되고 급기야 초심의 마음은 온데 간데없고 원망의 마음은 끝내 하소연으로 이어진다. 음식을 마주한 상대방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으로 애꿎은 상대를 향한  비난의 소리의 단계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상차림의 고마움 때문에 목이 메어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면서......

 사람의 마음에 이런 본성이 있음을 지식적이거나 객관적인 의미로는 이해가 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이런 본성만 가지고 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길거리 청소, 쌀 나누기 손길, 장학생 모집...... 사랑의 손길이 닿는 곳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는 교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인간의 본성을 뛰어 넘는 수준 높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들이 본성을 다스리는 마음이 되길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