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제법 겨울 날씨 같다고 말한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제 봄이 지나 여름이 완연하다. 갑자기 더운 날씨와 매일 오다시피 내리는 비 때문에 사방이 온통 눅눅하다. 한 겨울도 아닌 이 날씨에 무슨 곰국 타령인가? 하겠지만 결국 문학 속에서 찾아보는 글의 동기는 계절이나 기후와 상관없다. 

 매일 수업을 해야 하는 국제학교 교사 시절의 얘기이다. 아마 날씨가 요즈음 같았던지 아침 첫 시간부터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또 다른 아이는 참을 새도 없이 연거푸 하품질이다. 하루 종일 견뎌야하는 여덟시간의 수업을 어찌 견딜지…… 오늘 저녁은 미리 준비해 둔 멸치국물을 밑천 삼아 쉬운 된장국이나 청국장을 끓이겠다고 일단 선포했지만 변덕이 죽 끓듯하여 더 쉬운 음식으로 대처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사실 주부들의 일상이 늘 그렇지 아니하던가? [도막 난 뼈에서 기름 발라내고/ 하루 반나절을 내리 고았으나/ 틉틉한 국물이 우러나지 않아/ 단골 정육점에 물어보니/ 물어보나마나 암소란다/ 새끼 몇 배 낳아 젖 빨리다보니/ 몸피는 밭아 야위고 육질은 질겨져/ 고기 값이 황소 절반 밖에 안되고/ 뼈도 구멍이 숭숭 뚫려 우러날 게 없단다] 손 세실리아 시인의 [곰국 끓이던 날]이란 시다. 후배에게 받은 선물세트 사골을 고으며 진국이 우러나지 않음을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1연의 시에서 보았듯이 알게되고 이어진 2연을 통해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의 사랑을 암소의 새끼 사랑과 비교하여 미처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고 연이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반성한다. 

 [그랬구나/ 평생 장승처럼 눕지도 않고 피붙이 지켜 온 어머니/ ……나 식빵 속처럼 파먹고 살아 온 거였구나……/ 뼛속까지 갉아 먹고도 모자라/ 한 방울 수액까지 짜내 목 축이며 살아왔구나/ 희멀건 국물, 엄마의 뿌연 눈물이었구나] 일상의 소재에 의미를 부여하여 새롭게 해석한 작가의 발상이 돋보이는 고백적이고 회고적인 시이며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표현된 시다. 맛있는 사골이 우러난 곰탕, 이와 비슷한 설렁탕, 갈비탕…… 국물이 진하게 우러나야 맛있는 탕들을 집에서 요리 한다는 게 번거롭기도하고 귀찮기도 해 식당에 의존했으니 어머니의 사랑은 커녕, 음식의 소중함과 고마움도 솔직히 모르고 살아 왔다. 반성할 것들이 많은 것 중에 또 하나가 새롭게 추가된다. 썰렁한 교실의 분위기를 잠시 시와 더불어 잡아보려고 목청을 돋우지만 이미 잠 기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벽에 걸린 시계가 혹시 고장이 난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의 눈동자를 날릴 뿐이다. 암소가 왜 국물이 나오지 않는 건지, 왜 희멀건 국물이 어머니의 눈물이라고 그러는 건지, 시문학에 그다지  관심없는 아이가 한마디 날리는 맨트에 더 이상 할말을 잃었다. “샘, 전 원래 식빵을 파먹지 않고 다 먹거든요” 시인만 반성해야 할 것 같은 오늘의 수업을 마치며 , 멸치 국물도  사골 국물 못지 않게 소중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리며 정성껏 저녁을 준비하리라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