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중 선교사(사회학박사,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정체성(Identity)

 브라질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축구, 삼바, 커피, 아마존, 사탕수수, 가톨릭, 펠레, 룰라가 익숙한 단어들입니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따른 이미지입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우리, 정, 경제성장, 인터넷, 반도체, 태권, 김치와 같은 이미지가 연상되지요. 어떤 존재나 본질을 규명하는 성질을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단어인 것 같지만 정체성 안에는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유지되어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비교할 수 있는 특징도 있습니다. 브라질 정체성이 이 땅에 살았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고 경험되고 공유된 존재를 규명하는 성질이라면, 그 핵심은 인종(ethnicity)입니다. 유럽정복자들이 도착하기 전 살았던 원주민, 유럽인, 아프리카인, 일본인, 중동인, 아시아인들은 서로 섞여 문화, 관습, 실천, 신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결국 브라질 정체성의 바탕에는 인종이 있습니다. 

 백인성(Whiteness)

 식민지시대와 노예제를 거치면서 브라질은 계속 섞였습니다. 19세기 후반 공화정에서 법제정과 사회제도가 갖추어지기 시작했을 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공론의 장이 열렸습니다. 이 때 브라질 엘리트들은 국가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 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인종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인종이 계속 섞일 수 있다면 계획적으로 인종, 국가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이었지요. 부산외대 김영철교수는 1920년-1930년대 초반 바르가스의 신국가 시대에 전근대와 근대, 전통과 현대, 다양성 통합성과 같은 논쟁이 시작되었는데 문화전쟁이라고 불릴만큼 열띤 정체성 담론이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정체성 논쟁은 브라질이 더 낳은 사회가 되기 위해 어떤 인종을 추구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진보적 사회가 되기 위해 엘리트들이 선택한 답은 인종적으로는 백인, 문화적으로는 유럽과 미국의 문화를 수용하는 태도였습니다. 백인, 그들의 관습, 문화, 신념이 다른 모든 인종 그룹들과 비교되는 기준이 작동하는 방식을 브라질 사회에 이식하자는 것이였지요. 서구문명이 쌓아 올린 이성과 과학이 백인 사회가 누리고 있는 특권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브라질이 400년 동안 걸어온 식민성과 노예제의 어두운 얼룩은 ‘백인다움’으로 깨끗게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브라질에서 백인성은 ‘우월한 어떤 것’입니다. 피부가 화이트이면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무언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있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흑인성(Blackness)

 백인성이 ‘우월한 어떤 것’이고 엘리트들의 로망이라고 한다면 흑인성은 ‘브라질의 뿌리’입니다. 흑인성은 노예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열등하고 사람 취급 못받는 흑인 노예들은 브라질 원주민, 유럽인, 미국인, 아메리카인, 아시아인들과 섞여 혼종의 인종을 만들어냈습니다. 다시 말하면 브라질인들은 백인성을 추구하지만 누구도 백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흑인성은 저항성입니다. 본질적으로 백인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가질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저항하려는 정신이 있습니다. 흑인성은 의존성입니다. 나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 내가 해야 할 것을 대신 해줄 것이고 나의 의지를 맏겨버립니다.  흑인성은 자유성입니다. 몸이 구속되고 억압당한 노예시절의 기억은 언제나 영혼의 자유를 추구합니다. 브라질 정체성은 혼종적인 인종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고 우월한 백인성을 추구하지만 내면과 인식구조에는 흑인성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