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중 선교사(사회학박사,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브라질은 혼종성의 나라입니다. 현재 그리고 미래는 항상 과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과거에 누군가가 짙게 남겨둔 흔적입니다. 앞으로 전진하는 것 같지만 과거에 닿아 있으며 뒤로 처지는 것 같지만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섞여 있는 상태입니다. 질서, 논리, 계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흘러 와 내 앞에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사건과 기억이 날줄과 씨줄로 연결되어있는 브라질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는 서구의 합리성, 아시아의 기민성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분리와 단절을 추구해야 하지만 미래의 어느 순간에 만나게 되는 그 벽앞에 선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브라질은 권력자의 나라입니다. 강한 자는 언제나 강하고 약한자는 언제나 약할 수 밖에 없는 사회구조입니다. 소수가 다수가 딛고 있는 땅과 재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권위주의적입니다. 공적인 면이나 개인적인 면에서 이 나보다 높은 사람의 존재는 브라질 사람 의식구조에 뿌리깊이 박혀 있습니다.
시민의식을 개선하려는 것도, 자유를 행사하려는 것도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것도 투쟁과 희생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는 의지도 권위주의의 프레임 안에서 희석됩니다. 내가 해봤자 어차피 안 될것이기 때문에 나보다 더 큰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부자와 권력자들은 지난 500년 동안 기득권을 지키고 유지하고 정당화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그들의 성을 세웠습니다. 사회 윤리와 도덕이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권력은 노예제로 유지되고 공고화되고 우리에게 아픔과 그림자를 남겼습니다. 노예제는 폭력을 기반으로 합니다. 저항을 무력으로 제압합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분리, 나와 타인 사이에 미움과 악을 낳습니다. 폭력의 논리와 문화 그리고 언어는 브라질 문화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노예제의 직접적인 유산이지만 더 큰 그림자는 브라질 개개인의 의식구조에 자리잡은 타인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와 언행입니다. 폭력과 고통의 경험이 내면화되고 구체화되었던 기억은 지금도 일상에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자아와 타자를 인간 자체로 보지 않고 상품으로 보게 됩니다. 많이 소유하고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저 사람을 부릴 수 있다는 의식입니다.
어린아이에서 백발의 노인까지 누구나 권력에 대한 갈망으로 살아갑니다. 노예제는 피할 수 없는 차별을 양태 했습니다. 현재 차별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가장 차별을 받는 흑인들, 가난한 사람들은 일찍 죽고, 소득과 교육수준도 낮습니다. 금지 되어 있는 차별은 실제적으로 더 큰 차별을 양태하고 있습니다.
인종은 브라질 미래의 양날의 검입니다. 발견된 땅 이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누구나 깃발을 꼽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혼합민족이라고 정의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는 백인, 유럽인 서구가 구축해 놓은 인종 카르텔을 인정하며 우월성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피부색을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의 인식은 노예제의 짙은 그림자 입니다. 사회적 배제가 피부색을 기준으로 행사되기 때문입니다. 브라질 경제는 지금도 유럽국가에 빚을 지고 갚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본과 신자유주의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제 중국이 가장 큰 고객이자 채무자입니다. 브라질 엘리트들은 사회 통합과 국가계획에 방점을 둔 이민족의 수용이 아니라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경제성장을 위해, 외교적 이유로 다른 인종들을 의도적으로 섞었습니다. 과거의 유럽과 아프리카의 만남에서 이제는 아메리카 대륙과의 만남, 중동과 아시아와 만남은 브라질을 더 혼종적이고 인종적이고 소수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