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예전 같으면, 작심삼일이 될 망정 여러가지 신년 계획을 짜느라 분주하기도하고 때론 설레기도 할 텐데 지나간 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시작점에 분명한 경계도 없고 달라진 것도 없으니 새 해와 새 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생각이 아주 희박하다. 그러는 사이 또 몇 날이 지나가고 있다. 카톡으로 전하는 그림 카드로 새해 인사를...... 그나마 이런 식이라도 살아있음을 알리듯 이 쪽에서 받아 저쪽으로 보내고 같은 그림이 가지 않도록, 고작 이런 일에 신경 쓰는 내 모습이 참 별로다.

 바깥 출입이 제한된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의 일상은 참 많이 변했다.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너와 나, 모두 비슷비슷한 삶이었을 테니 다른 이의 삶이 뭐 그리 궁금할까? 나의 일상만 봐도 답이 나오는 것을...... 어수선했던 일년을 남에게 빼앗긴 듯 보내고 그래도 어김없이 찾아온 시간의 선물이 내 앞에 있으니 손 놓을 수 없어 마음 잡아 집 정리를 한다. 교사라는 직업을 핑계로 이렇게 저렇게 사들인 옷이며 구두며, 가방이, 명품도 아니면서 모셔 둔 것들이 수두룩이다. 

 옷 차림에 따라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행색에 신경을 쓰고 살아왔음을 이 물건들이 속속들이 증명해준다. 내 삶의 방식이 제대로 되었던 것인지 돌아보게 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이 일은 꼭 해야했던 나만의 연중행사, 염색과 파마는 모자 하나로, 남을 의식해야하는 옷차림에 번거로움은 마스크 한 장으로 해결하고 말았다. 

 일년 동안의 나의 옷 매무새의 중심은 그럴싸한 의상도 구두도 가방도 액세사리도 아닌, 모자와 마스크였다.

 보잘 것 없는 소품에 불과한 이 것들을 매일 매일 소중히 손에서 놓치 않았다.

 박재상 시인의 [흥부 부부상]의 일부를 소개한다.

 [흥부 부부가 박덩이를 사이하고 가르기 전에 건넨 웃음살을 헤아려 본다. 금이 문제리, 황금 벼이삭이 문제리. 웃음의 물살이 반짝이며 정갈하던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 없는 떡방아 소리도 있는 듯이 들어내고

손발 닳은 처지끼리...[중략] 웃다가 서로 불쌍해 서로 구슬을 나누었으리]

 시인은 물질적 풍요보다 사랑과 신뢰, 정신적 행복을 더 중시하는 부부의 모습이 측은하지만 흐르는 눈물을 구슬로 승화해 시련의 아름다움을 행복으로 표현했다.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인간이 지켜야 할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보여준 이 시를...... 예전 같으면 그리 마음에 와 닿았을까?

 생활고에 시달리고 지친 모든 이의 삶이 더 이상 어렵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껏 힘겹게 걸어 온 길들을 잠시 멈추고 좋았던 옛시절을 뒤돌아 보면 잠깐의 위로가 될까? 지나간 것은 그리움과 추억으로 간직할 수 밖에 없는데 그래도 위로가 된다면 가끔은 끄집어 내어 생각하며 살아보자. 그래도 주어진 시간이 내게 있으니 감사하자고 수없이 다짐하면서 버티어 보자. 걸어 온 길도, 가야할 길도 잘 모르지만 나에게 아직 생명이 있음에.

 우연 같은 인연이 필연이 되어 오랜 세월 부부의 연을 맺은 남편과 황망 중에 이별을 한 이웃이 있다. 

 인간의 뇌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 일을 어떻게,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할까? 언젠가 알 수 없는 시간과 또 세월이 우리 역시 데려갈테니 아쉬움과 미련을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그렇게 지내면 어떠겠냐고 말을 할건가 !

 예전 같으면 붙잡고 얼싸 안고 내 설움 니 설움 함께 쏟아 부으며 통곡이라도 하련만 내 몸 간수하기에 극급해 글로 나마 위안하려는 내 모습이 정말 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