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잠이 너무 와서 예배시간에도 졸고 어디 심지어는 밥을 먹으면서도 조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적인 졸음을 기면(嗜眠)이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잠이 안와서 꼬박 밤을 새우고 정신도 몽롱하고 그래서 나중에는 병원 처방을 받아 잠자는 약을 먹고 밤잠을 청하는 불면(不眠)의 사람들도 많습니다. 권사님은 낮에는 일하시고 밤에는 잘 주무시지요?
“꼭자, 또자, 안자, 잘자, 왜자, 못자” 이런 별명들 저는 제가 운전을 할 때는 안 졸지만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출발 후 십분 이내에 코를 골면서 자는 그런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잘자’입니다. 그래도 제 아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붙인 별명입니다.
“꼭자, 또자, 안자, 잘자, 왜자, 못자” 이런 별명들이 하나씩은 있더라고요. 다 자동차에서 지내는 것과 관련이 있는 별명들입니다. ‘꼭자’라는 별명은 부정적인 뉴양스가 있습니다. 너 자동차만 타면 ‘꼭자’니 조수석에서 함께 이야기도 하고 그래야지 하는 뉴앙스입니다. ‘또자’는 지난 번 운전할 때도 자더니 또 잔다고! 말도 안 된다!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늘 차만 타면 자는 사람에게 오늘은 왜 ‘안자’냐며 어서 자라는 말을 할 때와 조수석의 동반자가 졸 조짐이 있을 때 ‘잘자’라고 인사까지 건네는 운전사의 배려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운전자도 졸린 것을 참으면서 허벅지를 꼬집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면서 운전할 때 조수석의 동반자가 이야기 상대도 해주고 같이 난국을 극복하려는 의지 없이 코를 곤다면 ‘또자’냐는 소리와 함께 ‘왜자’냐며 시비를 걸 수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며 제자들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하실 만큼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하다 돌아왔을 때 제자들이 자는 모습을 보며 하신 말씀은 “꼭자, 또자, 안자, 잘자, 왜자, 못자”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유권사님, 제가 사는 곳에서 한국인 사역자들이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 사십분이고 그 다음이 한 시간입니다.
최소 한 시간 거리의 선교지에서 한곳에 모이려면 요즈음은 코로나 바이러스 19사태가 심각해서 모일 수 없지만 만약 우리가 한 번씩 별미가 있거나 축하해야 할 일이 있어 모일 때 제 선교지를 기준으로 박동주 선교사가 현지인을 사역하는 올또란자Hortolandia란 도시가 40분, 그리고 한국인들을 사역하는 강구희 목사의 깡비나스Campinas 한인교회가 한 시간 쯤 거리입니다. 그리고 방향은 다르지만 한시간 일이십 거리인 보이뚜바Boituva 안명권 선교사의 현지인 목회 사역지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사는 피라시카바piracicaba를 중심으로 “모여라 밥먹자” 하면 최소한 한 시간 반입니다. 박동주 선교사가 선교하는 올또란자에서 모여라 밥 먹자 하면 모두가 다 50분이면 도착합니다.
마스크를 끼고 운전을 하거나 조수석에 앉아 동행할 때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 뱉는 호흡을 하면서 산소가 부족해서 나른해지고, 흔들리는 자동차의 진동은 잠들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 줘서 쉽게 졸리게 된다는 게 과학적 설명입니다. 삶의 현장과 선교현장을 오가며, 선교사들에게 결코 짧지 않은 운전은 필수입니다.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 과정에서 생긴 일제의 잔재인 여자이름 ‘자’자 돌림을 통해서 선교사들의 관계를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늘 저 혼자 운전하는 독립군 운전자입니다. 아내는 비록 장롱면허지만 불꽃같은 눈동자로 전방을 살피며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딱지 떼는 곳 예고멘트를 크게 전파하며 간섭합니다. 그게 행복이지 생각하며 오늘도 ‘못자와 안자’의 중간 어디쯤 되어 운전에 매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