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사님, 우리는 닷새마다 열리는 장에 가는 게 수십 년 익숙해졌습니다.
그래서 별로 살 것이 없어도 사람 만나는 재미에 장에 갑니다.
 농사지은 것 중에서 먹을 것 미리 챙겨놓고 시장에 이고 지고 가서 팔아서 공산품을 사오기도 합니다. 지역마다 장마당이 생겨서 장꾼들이 돌아다니며 장사를 합니다.
 박스 떼기로 사는 도매시장
 이런 수백 년 전통이 깨지고 상설 장터가 생겨서 오일장이라는 말을 모르는 세대가 생겼습니다. 권사님도 ‘장볼 일’이 생기면 강화읍의 풍물시장이나 늘 열리는 농협마트로 가지 않습니까?
 브라질의 경우, 늘 열려 있는 마트가 있는가 하면 수요장터 토요장터 등 재래시장이 있습니다. 또한 센트로에서 자동차로 20여분 나가면 도시의 농산물을 공급하는 새벽도매시장이 매일 열립니다. 요일별로 시간대도 제 각각입니다. 식당하시는 교우들이 싱싱하고 양이 많은 식재료를 싸게 박스 떼기로 사기 위해서 자주 가는 곳입니다. 저도 가끔 갑니다.
 브라질에 온 초창기에는 토요장터나 수요장터에 비해서 너무 싸서 ‘박스떼기’로 저질렀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습니다. 바나나 두 손 값이 한 박스 값이어서 샀습니다. 익기 시작하니까 동시에 익습니다. 먹는 속도가 따라가질 못합니다. 나중에는 검은 반점이 생깁니다. 가장 맛있는 때지만 한 박스가 다 검은 반점이 있는 과숙바나나입니다. 커다란 수박을 샀습니다. 깍뚝썰기로 닦달을 해서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먹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힘이 들었습니다. 수십 개가 들어 있는 코코야자 열매 한 자루를 샀습니다. 구멍을 뚫어 한두 개 음료수로 마시는 데는 신납니다만 한 자루 다 마시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예배 후에 교우들에게 원건 원치 않건 한통씩 안긴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안에 있는 것을 모아서 음료수로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 우스꽝스러운 날 보면서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깨닫게 하고 그래서 이민목회에 잘 적응하게 해주는 교우들이 점점 고마웠습니다.
 나나스케 정신 팔려 말씀방 지각
 그래서 한국에서 어리둥절한 새 식구들이 오면 일용할 양식의 안내까지 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입니다. 아침 7시, 주섬주섬 하고 나가는 아내, 무를 간장에 절여서 먹는 밑반찬(나나스케)을 담가서 선교사들과 나눈다는 겁니다. 주일지낸 월요일, 선교사 가정의 정례모임이 우리교회에서 모이는 날입니다. 한국음식이 고향같은 원주민 대상 한국인 선교사가정들입니다. 이른 아침, 시아제에 동행하는 집사님과 당근, 마늘, 호박, 망고, 피망, 파프리카, 오이, 셀러리, 무, 자두, 고구마.... 시장을 보고 평소보다 늦은 아침을 준비하느라 서두릅니다. 어제 만든 단호박빵과 반달 오믈렛입니다. 커피와 우유를 꺼내왔습니다.
 기도하고 집사님과 한입 먹고 있는데 카턱톡소리가 요란합니다. 가슴이 덜컹하며 열어보는데 아뿔사. “목사님, 아침 말씀주세요” 아침말씀 열렬 팬 수신자 한숙녀 집사입니다. 밤새 안녕인 것처럼, 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말씀 그리고 하루”가 단톡방에 올라오지 않아서 불안했던 것이죠. 카드 내역서를 보면 인생이 보인다는 말이 있듯, 아침 교회 단톡방에 말씀이 올라오지 않은 것을 보면서 불안해하며 “무슨 일이 있으세요?”라고 묻는 그 관심에 깊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