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현 목사(샬롬교회 담임)
[본문 : 고전 6:12~20]
사람이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객관적’으로 어떤 일을 보는 것이 굉장히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성경해석에서도 그러합니다.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해석이 강해서 말씀의 본래의 의미를 곡해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바로 이렇게 말씀을 자기중심적으로 곡해하는 것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자신의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금해야 합니다(6:12~13).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13절과 연결시켜 볼 때 ‘음식’의 문제와 연결되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의 음식문화는 다른 민족들의 음식문화와는 매우 달랐습니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이 코쉐르라고 하는 정결예식으로 인해서 음식을 먹는 것이 매우 다릅니다. 예를 들자면, 오전에 빵을 먹을 때 Presunto를 먹으면, 절대로 오전에 커피를 내놓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우유를 넣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데요. 구약성경에 따르면, 어미의 젖으로 송아지를 삶지 말라는 말씀(출 23:19/ 34:26, 신14:21)이 있는데, 그 말씀에 Presusnto나 Coxinha를 커피와 같이 먹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뿐만 아니라, 음식도 아무 것이나 먹는 것이 아니라, 랍비가 인정한 음식규정이 있는데, 그에 따르지 않으면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사를 하고서 몇 주 전에 유대인 빵집이 저희 집 근처에 있어서 꼭 들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빵을 샀는데요. 얼마나 맛이 없던지요.
또한 유대인들이 옷을 입는 것을 보시면 좀 독특할 것입니다. 그들은 주로 검정색 옷과 흰색 옷만을 입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서로 다른 씨앗을 섞어서 옷을 짜지 못하도록 한 규정(신 22:11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옷을 다른 섬유와 섞여 있는 것을 입으면 안된다는 법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농사지을 때도 씨를 섞어 뿌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신 22:9 - 포도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이러한 문화 속에서 유대인들이 지금도 여전히 살고 있는데요. 바울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로 로마 제국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풍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처음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갖고 있던 음식 문화나 옷을 입는 문화를 그대로 지키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것으로 인해서 교회 안에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예수를 믿게 되고 교회에 속하게 되면 유대인들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음식이나 옷의 풍습’에 대해서 ‘자유하다’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고린도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한걸음 더 나아가서 문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생리적인 욕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처럼 성적인 문제도 인간의 생리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여는 데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육신의 배고픔과 성적인 충동은 전혀 다른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즉,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자신들의 방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말씀을 자기 임의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않으면 자기 편의에 따라, 심지어 자신의 정욕에 따라서 말씀을 인용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을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몸은 음란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있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욕망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음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