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복음신문" 복음선교 인류구원 신앙보수 > 오피니언 > 특별 http://nammicj.net/n_news/section.html?code=netfu_89053_16079&s_code=20110403032742_0191 "남미복음신문" 복음선교 인류구원 신앙보수 > rss 보기 ko (캄보디아 선교편지)2018년 5, 6월 선교소식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359 캄보디아.jpg
 
우리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소망으로 하루 하루를 복되게 살아가기를 축복하며 선교소식을 전합니다.    
 지금 캄보디아는
 캄보디아는 이제 옛날 캄보디아가 아닙니다. 캄보디아아 수도 프놈펜은 고층 건물이 없는게 특징이었는데, 2017년부터 프놈펜 곳곳에 고층 아파트와 고층 건물이 들어 서고 있습니다. 고층건물이 생겨 프놈펜은 도시 기분이 납니다. 그리고 일본이 회사가 지은 AEON 백화점도 생겨 아이샤핑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프놈펜이 도시화가 되어 가면서 물가도 껑충 껑충 뛰어서 사역은 어려워 지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 갑절의 영감이 필요합니다.
 토종음식
 동남아사이아 열대과일 중에 제일 맛이 있는 과일의 왕이라고 하는 “두리안”과 과일의 여왕이라고 하는 “망고스틴”입니다. 맛은 정말 정말 좋습니다. 가끔 캄보디아 전통 음식을 먹는 특식을 합니다. 논에서 잡은 개구리 튀김 맛이 좋습니다. 이웃집에서 요리를 하는 덕분에 시식을 하였습니다. 한번은 교회 마당에서 잡은 뱀을 구워서 먹으라고 가져 왔는데 선뜻 먹기가 그래서 얼굴을 찌푸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뱀은 작은 것은 구워서 먹고, 큰 것은 탕으로 먹습니다. 교회 앞 가게에 가끔 논에서 사는 쥐를 사서 베트남으로 파는 장사군들이 가끔 옵니다. 식용 쥐는 논에서 사는 쥐인데 시궁창 쥐와 생김새와 색깔이 다릅니다. 아직 맛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이런 토종음식을 슬 슬 먹을 수 있는 비위가 생기나 봅니다.     
 수영장
 공포의 더위가 최고기승을 부리는 시기인 4, 5월을 맞이하여  첫 번째 교회와 두 번째 교회가 물속으로 풍덩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첫번째 교회는 5월 1일 두 번째 교회는 5월 3일에 수영장을 갔습니다. 더위에 지치고 찌그러진 얼굴들이 모두 함박꽃이 되었습니다.
 여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
 어린이 전도협회(CEF)에서 주최하는 여름성경학교 교사 강습회에 교사 2명, 보조교교사 8명이 참석하여 영혼 사랑에 불을 붙이고, 이번 여름성경학교 준비를 잘해야 겠다는 각오를 하고 왔습니다.    
 귀여워 중아(제 아내 이름은 박정아) 
 박정아 선교사 생일을 맞이하여 첫 번째 교회 제자들이 주머니를 활짝 열었습니다. 지나간 제 생일까지 챙긴다고 큼직한 케익을 사왔네요. 한국말을 잘 모르니 제 아내 한테 “우리 귀여워 중아선생님” 이라고 하니, 귀여워 중아가 아니고 귀여운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과 교회에 감사하고, 이웃을 돕는일에 주머니를 기쁨으로 열기를  꿈꿉니다. 외국인은 부자고 자기들은 가난하니 외국인들은 선을 행하면 내새에 복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여,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는 문화속에서 이들과 함께 부딪치며 관계를 맺어 서로 사랑을 나눌 때 보람을 느낌니다.
 캄보디아 프놈펜쎈타
 선교사역상 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여 구입하려고 계획을 변경하여 늦어 지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프놈펜 사역지 결정이 늦어져 제 마음이 평안을 잃지 않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기도제목
 1. 프놈펜에 계획하고 있는 교회,유치원,학사사역 준비가 잘 되도록
 2. 함께 동역하는 사역자와 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잘 성장하도록
 3. 급변하는 캄보디아에 맞는 선교정책을 잘 세우도록

박창환, 박정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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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9 Jul 2018 21:21:00 +0900
(정찬성 목사의 복음자리 이야기)목사 공관 집들이에 모인 교회 임원들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352 정찬성2.jpg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지난 주 목요일입니다. 임원들이 우리 집, 이사 간 사택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지난 주일 목요일에 목사 사택을 방문한다는 약속을 하고 임원 카톡방이 분주해졌습니다. 참석자, 사정이 있는 임원, 사택 주소 등이 카톡방을 통해서 올라왔습니다. 김진홍 집사와 오승렬 집사가 사정이 생겨 참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총여선교회 회장인 박금순 권사님도 어색해 하셔서 그런지 남자들만 계셔서 그런지 슬그머니 불참하셨습니다. 그래서 황재오 이근섭 김성일 박노권 이흥수 김영식 집사와 장성주 장로가 함께 집들이 겸 오셔서 함께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늦게까지 함께 했습니다. 브라질 사는 생활과 애환 그리고 경험적인 무용담까지 하하 허허하며 있다가 김영식 집사가 아이들 때문에 집에서 전화가 오고야 일어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유권사님, 목사 사택 집들이로 모였는데 교회 임원들인지라 모이면 교회일 이야기입니다. 가정법원 부근에 교회자리가 나왔다는 관리부장 박노권 집사의 보고에 모두가 신중해졌습니다. 하루속히 예배당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두를 집중하게 만든 것입니다. 갑론을박이 오가고 졸지에 임원회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급기야는 내일 점심시간에 현장에서 만나서 살펴보고 기존의 건물부지와 또 하나의 안으로 정해서 논의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저녁 식사 대접에 잘 잡수시는 손님들 감사
 유권사님, 주일예배 마치고부터 제 아내는 계속 끌탕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며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브라질선교사협의회 세미나가 가까운 곳 산타테레자 호텔에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수요예배 때문에 먼저 나와서 예배드리고 장보기를 위해서 중앙시장에 갔습니다. 돼지등갈비, 바깔야우, 무께까를 만들기 위한 새우, 홍합, 질라피아 등 해산물을 샀습니다. 모지산 버섯, 부추 미나리, 민진홍 선교사의 볼딸레자 산 문어와 큰새우 등이 준비되었습니다. 한국산 해초와 ‘왕창잘되는 집’의 특허 받은 ‘쑥 양념고추장’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산, 브라질의 피라시카바와 상파울 그리고 모지와 뽈딸레자에서 공수한 각종 식재료가 한상에 올랐습니다. 다국적 식재료가 한상에 요리되어 무께까, 바비큐 폭닙, 바깔야우, 미나리문어숙회, 깜바스 알 하이오가 식탁을 가득 채웠습니다. 음료는 수박주스와 따뜻한 상황버섯과 그라비올라, 칙, 둥굴레 등을 넣어 끓인 동서양 한방차가 올랐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거실에서 과일꼬치와 아이스크림이 후식입니다. 과일은 망고, 청포도, 수박, 스타후르츠, 방울도마도가 사용되었습니다. 색깔과 맛의 강도 뒷맛과 영양까지 고려한 후식입니다. 밤이어서 커피는 내놓지 않았지만 더치커피를 한 병씩 풍선포장용기에 담아 깨지지 않게 준비해서 선물로 드렸습니다. 여기까지가 임원초청 집들이 보고입니다.
 하나님 부르실 때까지 대접하며 사는 종이 되길
 유권사님, 너무들 좋아하셔서 더 자주 모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임원회를 교인식당으로 오가며 진행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오늘처럼 임원 가정을 방문해서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의 중책을 담당하는 동역자인 임원들과 허심탄회하게 모인 오늘 집들이는 목사에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번 주에 파라과이 임동수 선교사 가족들과 아마존 이연학 개혁신학교 학장 부부까지 방문하면 준비된 만남은 끝나는 듯싶습니다. 유권사님, 제 아내 김선영 사모에게 손님 대접하길 좋아하는 그 마음이 하나님 부르실 때까지 항상 이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그리고 대접하고 또 대접해도 끊임없이 대접할 수 있는 물권과 건강도 허락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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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9 Jul 2018 21:13: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믿음이 이기네-6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348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물론 3년씩 교회 담임을 로테이션 하는 브라질장로교 노회의 방침을 따라 여러 교회의 담임을 맡고 있을 때도 선교를 열심을 도운 것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한국 서울에 있는 예능교회 초청으로 10일 간 한국을 방문하여 예능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고,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에서 예배도 드린바도 있었다. 그 인연으로 하나님께서는 예능교회를 통해 오스말 목사에게 새 자동차를 주셨다. 그 후에는 우리 부부가 브라질 동북쪽을 방문할 때면 밤이건 낮이건 그 차를 가지고 운전하며 위험한 산길도 마다 않고 선교의 발이 되어 주었다. 한 번은 뻬루남부꾸 주 가라늉스에서 까루아루로 가는 비가 오는 캄캄한 밤길에서 길을 건느려던 들염소가 달리는 자동차 앞으로 달려들어 부딪혀서 자동차 앞면이 완전 부서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의 사역을 하는 우리 부부와 운전하던 오스말 목사의 생명을 지켜주셨다. 자동차는 움직일 수가 없어서 벌판 길에 버려둔 채 지나는 지동차를 기다리는 동안 노상 강도가 많은 그 길에서도 우리들을 보호하셨다. 그날 저녁 주님만 의지하고 수없이 주님을 불러야 했던 밤! 주님은 우리들을 지켜주셨다. 사실은 나의 마음도 기도의 힘이 아니였다면 다 찌그러졌을 것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 함께했던 오스말 목사가 빼르남부꾸 빠또스 교회를 시무하던 중에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는 잠자는 병이 걸려버렸다. 그래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졸면서 잠을 자는 것이다. 창문을 붙들고도 자고, 밥 먹다가도 자고 심지어는 리메이라 빠르끼 노보문드 브라질교회에서 남편 김우선 목사의 강의를 듣다가도 졸아서 의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했고 강대상의 의자에서도 졸다보니 많은 문제가 생겼다. 심방은 커녕 설교준비도 할 수 없고, 신학교 강의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 심각성은 말할 수 없었고 백방으로 병원을 찾았고 약물 투입도 소용이 없어 급기야는 브라질 노회의 권유로 교회의 담임 목사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교회 담임을 그만두고 생계의 위협 속에 살아갈 길이 막히고 소망이 끊어지는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교인들이나 우리가 조금씩 도와주는 푼돈으로 겨우 식생활을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가 운전하는 자동차 안에는 오스말 목사와 우리 부부가 타고 있었다. 히안하게도 운전할 때는 조는 것이 덜하지만 차를 함께 타고 있는 우리 부부는 늘 불안하여 차가 가는 동안 기도를 쉴수가 없었다.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던 나는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 불일듯이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그에게 말을 했다. “오스말 목사님! 당신의 병은 하나님이 주신 병이요. 병이 들어야 교회 담임을 사임하게 되고, 할 수 없이 목사님 사모님의 친정이 있는 마나우스로 가게될 것이고 그곳에 교회를 세우시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니 당신의 병을 반드시 하나님께서 고쳐주실꺼예요” 라고.... 그가 혹시 나의 말을 무심하게 지나쳐 버렸는지는 몰라도 그 말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믿음의 선포였음이 증명되었다. 아내 호젤리와 딸 에밀리 그리고 아직 다섯 살의 막내 아들 윌리암을 데리고 결국 마나우스에 있는 째지게 가난한 사모님 친정에 가서 얹혀 살 수 밖에 없었고, 지극한 고난 속에서 부부가 기도하게 하시더니 하나님은 그의 병을 완전히 고쳐 주셨으니 이 아니 놀라운 기적이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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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9 Jul 2018 21:04:00 +0900
(정찬성 목사의 복음자리 이야기)어린 시절 종이연(紙鳶) 날리기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335 정찬성2.jpg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시골의 바람 불던 언덕에서 연날리기를 하면서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연을 날리던 곳은 가급적이면 전봇대가 없는 곳, 전선줄이 지나가지 않는 곳, 나무가 적은 곳 등 연날리기에 방해요소가 없는 곳을 택해서 놀다보니 연 날리는 장소가 거의 동네 아이들이 함께 날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연을 국어대사전에서 찾으니 “종이에 댓가지를 가로 세로 또는 모로 맞추어 붙이고 엇실로 매어서 공중에 날리는 아이들의 장난감, 꼭지연, 반달연, 가오리연 따위가 있음. 지연(紙鳶) 풍연(風鳶) 풍쟁(風箏)” 등으로 쓰여 있네요. 주로 어릴 때 우리는 가오리연과 방패연으로 놀았고 ‘달뵈기’, ‘구레논’ 부근에서 연날리기를 했습니다.
 연싸움의 추억들
 가오리연, 방패연은 어린 시절 손쉽게 만들던 연입니다. 연실도 집에서 이불 꿰맬 때 쓰는 굵은 실을 사용했습니다. 연날리기의 백미는 연싸움입니다. 함께 연날리기를 하던 친구들의 응원가운데 공중전이 벌어집니다. 연을 높이 올리고 상대방 연줄을 끊는 싸움입니다. 너무 자주 연실을 끊어 먹으니까 어머니가 싫어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연줄은 끊어먹지 않고 상대방의 연줄을 끊어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늘 연날리기의 고민입니다. 초를 줄에 발라 부드럽게 하기도 하고, 밥풀을 감아서 강도를 높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유리를 곱게 갈아서 풀에 섞고 그것을 연줄에 바르기도 했습니다. 생선 부레를 연줄에 바르기도 하고...., 그 비법이 참 많았습니다. 유리가루는 상대방 연줄로 교차시켜서 서로 당겨 연줄을 끊는 데는 좋은 무기인데 반드시 가죽 장갑을 끼고 연날리기를 해야 한다는 철칙이 작용합니다. 연날리기 연싸움으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균형감각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가오리연이나 방패연 등 모든 연은 균형이 틀어지면 공중에서 뱅글뱅글 돌다가 떨어집니다. 연실을 추어주면 하늘 높이 올라가야 하는데 공중에서 돌다가 곤두박질쳐서 연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중간에 튼튼하라고 설치한 댓가지와 창호지가 떨어져 나가기도 합니다. 속상한 일입니다. 그럴수록 균형감각의 중요성을 몸으로 배우고, 도는 쪽 무개를 줄여서 균형을 맞춰주고 엇실의 길이를 조정하기도 하면서 결국 ‘언제나 높이 날아오르는 풍쟁연’을 만듭니다. 누가 싸움을 걸어와도 끄떡없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연날리기를 통해서 좌우대칭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철들어서 성경을 읽다가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는 성서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연날리기가 생각났습니다.
 좌우 균형잡기, 줄 튼튼하게 하기
 한쪽이 강하게 주장하는 소리가 들려도 연줄을 조정해서 균형을 잡아줘야 높이 똑바로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균형 잡는 일에 힘을 기울입니다. 연싸움을 하려고 곱게 유리가루를 만들고 밥풀과 섞어서 연줄에 유리풀을 먹여 실패에 감아 둔 게 발견되면 가죽장갑을 준비해 줘서 손 다치지 않게 하는 일에 앞장섭니다. 유권사님, 연날리기는 한국에서만 있는 장난감이 아니더군요. 제가 여러 나라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기념품 가게에는 반드시 그 나라 특유의 연들이 있습니다. 연은 아이들의 장난감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옛날 전쟁에서 무전기 대신 사용하기도 하고 성안에 있는 사람을 탈출시킬 때도 연이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인간들이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좌우가 균형 잡힌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높이 비상할 수도 있구요. 연줄이 튼튼해야 바람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른 이단이나 비판세력과의 다툼에서도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있구요. 하늘로 높이 올라야 하는 연이 비틀거리고 뱅뱅돌고 균형잡힌 의젓한 행동을 하지 못하면 엇실을 조절해서 중심 잡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처럼 연날리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고 그리고 인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 어릴 때 ‘달뵈기’나 전봇대가 지나지 않는 ‘구레논 벌판’ 같은 곳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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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2 Jul 2018 20:32: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믿음이 이기네-5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331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브라질에 도착한 미국의 맥킨타이어 선교사가 이스라엘 게이로스 브라질 목사와 함께 1934년에 브라질 동북부 뻬르남부꾸주 헤시삐시에 장로교 신학교를 설립하여 50년을 운영하면서 많은 목회자들을 베출하였다. 그런데 경제적인 문제로 1984년에 문을 닫았던 이 신학교를 하나님께서는 쌍파울로 베데스다교회를 통해 다시 문을 열게 하셨다. 그래서 1998년부터 신학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활발히 운영되고 있는 헤시삐 브라질 장로교신학교에서 오스말 목사는 강의를 하면서 따비라 브라질 장로교를 담임하고 있었다. 그는 헤시삐신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동반하고 브라질 동북부에 이곳 저곳을 버스를 갈아타고 다니면서 가정교회로 시작해서 교회들을 개척하였고, 그 교회들의 부흥을 도움은 물론 교인수가 늘어가면 우리 부부에게 교회당을 건축해달라고 무던히 졸라대었다.
 하나님께서는 서울에 있는 예능교회(조건회 목사)를 통하여 죠앙빼쏘아 교회를 비롯해서 훨딸레자 교회를 건축하게 하셨다. 그리고 쌍파울로 베데스다교회와 카나다, 미국 한인교회들을 통해 브라질 동북부에 많은 브라질 교회당 건축을 하게 하셨는데 이것은 첫째로 브라질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다음은 황산물 개미(한번 물면 안 떨어지는 개미) 같이 예배당을 건축해 달라고 졸라대는 열심을 가지고 우리의 브라질 사역을 도운 오스말 목사의 기도와 열정이 한 몫을 했다고 본다.]]>
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2 Jul 2018 20:24:00 +0900
(정찬성 목사의 복음자리 이야기)‘다아스포라 심정’이 큰일 냈네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317 정찬성2.jpg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한 나라가 망하고 20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나라를 회복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런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얼마 있다가 사도 베드로 중심의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바울이 기초를 놓은 이방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입니다. 졸지에 로마는 예루살렘 중심의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누구도 다시 이스라엘이 역사의 전면에 우뚝 설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민족들만 그것을 믿었습니다.
 디아스포라와 한국인 이민교회 목회자 
 이스라엘 민족인 유대인들은 2천년동안 강해질 대로 강해진 개인의 자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존의 법칙을 알았습니다. 나라가 없는 민족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가장 부피가 작고 가장 경제적 가치가 있는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보석 가공기술과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금융계를 틀어쥐게 되었습니다. 유대자본이라는 용어가 생겼고 실제로 자본시장의 큰 손이 되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유대자본에 의해서 좌지우지 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각설하고 2천 년 동안 흩어져 살던 그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불렀습니다. 이 용어는 나라를 떠나 살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가 되었습니다. 유권사님, 유대인 디아스포라에게는 어디에나 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 디아스포라들에게는 한인교회가 있어서 애환을 신앙으로 극복하며 믿음의 공동체를 이뤄가길 한 세기 동안입니다. 유권사님, 지난 주간에는 중남미에 속한 한인디아스포라 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부산의 수영로교회와 생각을 같이 하는 목회자들이 해마다 전 세계의 디아스포라 한인목회자들과 만나서 함께‘말씀과 쉼 그리고 위로의 잔치’를 배설하고 있습니다. 저도 거기에 초청되어 제 아내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57가정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브라질이 29가정, 아르헨티나가 14가정, 파라과이 8가정, 페루, 과테말라, 멕시코, 볼리비아, 우루과이가 각각 한 가정씩입니다. 강사진도 한국에서 최고로 잘나가는 부산수영로교회 이규현 목사, 영안교회 박정근 목사, 서울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가‘복음으로 돌아가자’는 주제로 씨름했습니다. 아침 6시 30분에 시작되는 큐티부터 저녁 10시에 끝나는 저녁집회가 26일 화요일부터 29일 금요일 아침까지 계속 강행군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모들에게는 황숙영 사모의 특별강의가 있어서 목사와 사모 모두에게 도전이 되었습니다.
 57가정이 다짐한 ‘복음으로 돌아가자’
 코디아 찬양팀과 맘껏 찬양하고, 중남미 한인목회자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선교네트웍크를 설정하는 일을 하루아침에 이루게 된 것입니다. 특히 강의하는 동안 함께 스텝으로 섬기는 성도들의 호텔 중보기도실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는 전언입니다. 유권사님, ‘코디아 2018 중남미 디아스포라 한인목회자 컨퍼런스’는 복음, 교회, 연합, 회복, 부흥을 주요 가치로 삼고 각 대륙 한인목회자들의 영성과 회복, 연합을 지향한다고 그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저와 만난 목회자들 대부분은 이 모임의 의미는 그동안 선교사 중심의 프로그램들은 많았지만 한인교회 목회자 대상의 컨퍼런스는 처음이라며 영광교회의 김용식 목사와 박지웅 목사의 민첩한 노력이 돋보이는 행사였습니다. 또한 정체성이 분명한 디아스포라목회자들과 20년 이상 이민목회를 하다가 한국에 들어가서 수영로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이규현 목사는 해외한인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어 그 컨퍼런스가 매우 유익했습니다. 이규현 목사의 디아스포라 심정이 해마다 호주와 유럽에 이어 중남미에서까지 큰일을 해 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세미나 중간에 독일과의 축구에서 큰일을 낸 것도 모든 한인목회자와 사모들 그리고 강사와 스텝들이 한가지로 응원한 결과라고 생각되어 더 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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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5 Jul 2018 05:39: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믿음이 이기네-4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308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오랫 동안 브라질 동북부 뻬르남부꾸와 빠라이바 그리고 바이아주에서 우리와 함께 열심히 사역을 하던 중. 병이 들어 있던 오스말 목사를 하나님께서는 다시 세우셔서 아마존지역 마나우스에 교회를 세우셨다. 오스말 목사의 건강을 회복시켜 마나우스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이제는 소망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셨고, 근심 중에 있던 우리 모두를 향해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이루신 열매라고 믿게 하셨다.
 우리가 다녀온 마나우스 교회를 시작한 오스말 목사의 대하여 소개를 하는 것이 좋겠다. 하나님깨서는 우리 부부를 선교사로 이곳 브라질 땅을 밟게하신 초기에 우리의 동역자로 오스말 목사를 붙여주셨다. 오스말 목사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고신신학교 설립을 도왔고 고신 신학교 강의까지 맡았으며, 1934년에 미국 필라델피아에 훼이스 신학교를 설립하여 미국과 싱가폴 그리고 한국에 보수신앙의 목사들을 많이 배출시킨 맥킨 타이어박사가 설립한 미국 성경장로교회에서 파송한 미국 선교사를 통해 헤시삐에 세운 장로교 신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오스말 목사는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 부부를 브라질 동북부 여러 지역을 인도하며 영혼구원을 하는 일과 브라질 신학교를 돕는 일 그리고 브라질 교회당을 건축하는 일에 우리 부부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브라질 장로교 예배당을 건축할 위치와 대지를 구입하는 일을 도와주었다.
나는 브라질에 도착하면서 기도 제목이 있었다. 그것은 남편 김 목사와 같이 선교사가 되어 브라질에 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를 어떻게 인도하셨으며,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셔서 부모대신 공부를 시키신 일들을 간증집으로 책을 출판하고, 판매하여 얻는 수익금으로 세계 최대 캐토릭 국가인 브라질 땅에 장로교 신학교를 건축하여 복음주의 목회자들을 기르겠다는 기도이며 목표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부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 딸아 울지마라”의 제목으로 간증집을 출판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 책을 많이 팔리게 하셔서 그 수익금으로 쌍파울로주 리메이라시에 리메이라 브라질 장로교신학교를 건축하여 2000년 7월 22일에 봉헌케 하셨다.
 이 신학교 건물은 십자가를 붙인 뾰죽한 종탑이 있는 신학교 예배당과 도서관과 부엌을 포함한 식당 그리고 교수실과 교장실이 있는 신학교 본관 그리고 기숙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크지는 않지만 아담한 건물이다. 그리고 리메이라 신학교 졸업생들이 개척한 교회당을 건축하도록 하나님께서는 기도와 헌금의 동역자를 보내주시고 우리 부부를 사용하여 이루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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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5 Jul 2018 05:26:00 +0900
(정찬성 목사의 복음자리 이야기)성미운동을 다시 생각한다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98 정찬성2.jpg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한국교회의 성미운동을 생각하면서 이 정성스런 운동이 다시 불 붙듯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목회생활을 하면서 성도들이 식구 수대로 한 숟가락씩 모아주신 성미로 살다가 브라질에 와서는 그런 제도가 없는듯 합니다. 여선교회가 사서 사택에 넣어주는 쌀이 목사 가정의 식사를 위해 사용됩니다. 유권사님, 성미는 참 오랜 한국교회의 여성신도들의 전통입니다. 한국여성 신도들이 예수 믿기 전에는 “신주단지 혹은 성주단지”라고 불리던 조그마한 항아리가 부엌에 있었습니다.
 신주단지가 성미항아리로
 한국에는 집안귀신이 많았습니다. 안방은 물론이고 부엌 사랑방 대문 하다못해 뒷간에도 귀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성주 귀신은 집을 지키는 귀신이었습니다. 이 귀신에게 쌀을 바칠 항아리 이름이 성주단지 혹은 신주단지라고 불렀습니다. 한 숟가락씩 떠서 항아리에 넣으면서 가족의 건강과 출세를 위해서 성주님께 빌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된 후 부인들은 더 이상 귀신들을 섬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성주단지도 당연히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성주단지 대신 성미단지가 등장한 것입니다. 성미는 목회자와 토착전도인, 가난한 교인의 구제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905년 개성지역의 콜리어란 선교사가 보낸 보고서에는 “많은 가정 부엌에는 주 항아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매끼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곡식 한 줌씩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가 매달 말에 그 곡식을 팔아 토착전도인 생활비로 지급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1900년 초 백만인구령운동을 벌일 때 나타난 토착신앙운동이 성미운동입니다. 전도부인이나 토착전도인 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로 시작된 운동입니다.
 유권사님, 제 어머니는 지금도 성미를 모으십니다. 식구들이 적어 두 내외분의 식사를 준비하니까 그 양이 적어서 제 어머니는 당신이 이름 불러가며 기도하는 삼남매와 손자 손녀들의 몫까지 한 숟가락씩 성미 항아리에 넣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교회 가실 때 성미주머니를 가지고 가셔서 성미통에 붓습니다. 신주단지에 새겨진 십자가 전통이 성미로 100년 이상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이런 작은 정성이 계속 이어지는 교회의 목회자는 참 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는 매끼 식사기도 때마다 교우들의 손길을 위해 기도하고 성미가 한 식탁에 모여진 것처럼 성도들의 마음도 모아서 하나님 사업에 함께 동참하게 하는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저도 성미밥이 먹고 싶습니다
 유권사님, 1904년 11월 평양에서 미감리회 북부지방 사경회 보고서에 등장한 성미운동이 한 세기 한국교회 목회자 가정의 식량을 공급하는 그런 전통이 되었습니다. 개성지방에서 시작된 성미운동은 다른 지방으로 그리고 전국으로 확산되어 한국교회의 여성들의 대표적인 신앙양태의 하나로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 어머니나 권사님이 지금도 뜨시는 성미생활은 100년도 훨씬 넘은 한국교회의 선한 신앙전통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성도들은 성미를 잊고 삽니다. 젊은 성도들은 성미란 제도가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유권사님, 한국교회의 귀한 전통은 계승 발전시키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식사를 준비하면서 식구 수만큼 한 줌씩 성미통에 쌀을 넣으면서 식구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는 운동은 한국교회 어머니의 선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저도 성도들이 정성스런 성미로 살고 싶습니다. 성미로 지은 밥을 먹을 때마다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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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28 Jun 2018 05:53: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믿음이 이기네-3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93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지도자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어른이 그들에게 허리를 두 번이나 굽히는 겸손 앞에서 그들은 또 어떤 것을 배웠으며, 우리는 또 무슨 교훈을 받고 있는가? 성숙한 신앙인, 믿음의 사람은 약한자들 앞에서 허리를 굽힐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자신을 성찰해 본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 왔는가?” 아브라힘이 세 번씩이나 사라의 매장지를 허락해달라고 구할 때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쉽게 말하면 “사실은 현 시가로 은 400세겔은 되지만 값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냥 가지세요”라고....  아브라함은 헷 족속이 세 번이나 값 없이 주려하는 매장지를 정중히 거절하고 결국 그들이 말한 시세인 은 400세겔을 주고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사서 사라를 장사하였다. 남의 것을 거져라도 갖고 싶어하는 욕심이 아브라함에게는 없었으니 그의 물질관이 깨끗함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물질관리! 많이 고민하고 깊히 생각해야 할 숙제를 던져준다. 아니 물질 관리 뿐이겠는가? 시간 관리는? 생각 관리는? 믿음 관리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가 아니었는가? 그런데 나도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건만, 하나님의 은혜로 적지만 흉내라도 내듯 살아올 수 있었다는 감사함이 마음에 몰려든다. 나그네 인생임을 진심으로 받아드린 인생이라면? 어찌 겸손하지 않을 수 있으며 욕심의 종으로 살수 있단 말인가?
 김 목사님의 입술을 사용하셔서 말씀으로 우리를 만나주신 주님이 이렇게 물으신다. 너는 진정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가? 자신을 존경하고 지도자라고 높여주는 사람 앞에 허리를 굽히며 살아 왔는가? 주님이 손 내미실 때 욕심 버리는 연습에 승리하며 살고 있는가? 고린도후서 7:10절에서 내가 “해야 할 근심과 하지 말아야 할 근심”이 무엇인가 알려주신 말씀 앞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택하기로 결심했지만 실천은 어려웠다. 비행기 기체가 글을 쓸수 없을 정도로 많히 흔들린다. 그러나 히안하게도 조금도 불안하기는 커녕 어제 불렀던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찬송을 속으로 부르며 “주님 나 글 써야해요. 기체를 붙잡아 주세요” 기도를 드렸다. 놀랍게도 몹씨 흔들리던 기체가 안정을 찾았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으니 온 세상 이기네” 계속 찬송을 부르는 마음엔 불같은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며 고요한 평화를 마음에 갖게 하셨고 주안에 기쁨이 넘쳤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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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28 Jun 2018 05:41:00 +0900
(최복이 대표의 7전8기 무릎경영이야기)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몽당연필로 쓰여지길 바라며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78 최복이시.jpg
 
『최복이 대표는 이미 1994년 동시부분으로 등단하고 현대시문학에도 등단한 시인(詩人)이다. 2005년 부터는 1년에 한 권씩 시집을 냈다. 바쁜 일상 중에서도 조금씩 떠오르는 시상들을 적으며 나름의 위안과 탈출구로 삼았다. 시는 ‘나 아직 죽지 않았어. 나 살아 있어’하며 깃발을 흔드는 기수의 마음 같았다. 최 대표의 책 『고독한 날의 사색』『미루나무 길』(2005), 『사랑의 묘약』(2006), 『속깊은 편지』(2007), 『내가 두고 온 우산』(2008), 『길 위의 위안』(2009)의 다섯 권의 시집은 본죽 사업을 하며 삶에서 얻은 소감을 적은 기록이다. 점주들이 “시가 쉽다. 내 마음 같아. 위로가 된다.”는 말을 하면 뿌듯한 보람을 가진다. 특히 『내가 두고 온 우산』에 수록된 ‘삶이 나에게’는 라디오와 책 등에 인용되면서 제법 알려졌고 2010에는 임화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최 대표는 ‘얼마나 더 살면 주님 마음에 일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의 기대에 부합할 수 있을까’ 질문하고 간구하면서 묵상시집을 썼다. 그 시집이 『간절함』이다. 최 대표는 시와 시심(詩心)도 하나님이 주신 즐거운 달란트이므로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몽당연필로 기꺼이 쓰임 받고 싶다고 고백한다. 최 대표의 시는 간결(簡潔)하다. 주님 앞에 꾸미지 않은 낮은자의 기도처럼 솔직하다. 또한 최대표의 시는 간절(懇切)하다. 아직 이른 초봄 나뭇가지에 매달린 목련의 떨림처럼 치열한 삶을 지나는 자의 기도처럼 애잔하다. 그녀의 시는 마음에 간직(看直)할 만하다. 소중히 마음에 넣어 두었다가 조용히 꺼내 다시 읽으면 또 새롭다. 독자들을 위해 그녀의 시를 몇 편 소개 해 본다.
 ▣ 간절함
 얼마나 살면
 얼마나 기다리면
 얼마나 가까이 가면 닿을까
 옷자락 끝
 얼마나 소리치면
 얼마나 간절하면
 연합할 수 있을까
 영혼
 ▣ 부끄러운 시인
 어떤 언어로 그분의 애달픈 사랑을 담을 수 있을까
 어떤 시어로 그 사람들의 속 깊은 고독을 써낼 수 있을까
 어떤 단어로 그 수많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단상으로 내 가슴 바닥의 간절함을 건져낼 수 있을까
 가난한 무릎으로 그분께 나가면 진리에 닿을 수 있을까
 한 그릇 죽은 참 소박한 음식이다. 거기에는 복잡한 조리법도 없고, 다양한 재료도 필요치 않는다. 화려한 장식도 죽 한 그릇을 빛나게 하지는 않는다. 죽은 소박하지만 오랜 정성이 쌓였고, 단순하지만 꽉 찼으며, 간단하지만 든든하다. 최 대표의 시는 죽 한 그릇 같다. 하나의 시어가 나오기 까지 얼마나 꼼꼼히 골랐을까? 한 줄의 시가 나오기 까지 얼마나 오래 고았을까? 한 편의 시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이 기다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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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21 Jun 2018 02:24:00 +0900
(정찬성 목사의 복음자리 이야기)목사 사택 집들이 준비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77 정찬성2.jpg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한국은 초여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사는 브라질은 초겨울입니다. 겨울이라고 해서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겨울입니다. 아침에 약간 쌀쌀합니다. 여기사는 원주민들은 털옷에 긴 부츠를 신고 겨울차비를 하고 나옵니다. 우린 겨우 긴팔 옷을 입었을 뿐 이구요. 여름처럼 햇볕이 강한 한낮에는 겉옷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면 그뿐입니다. 여러 성도들의 도움으로 이사를 마치고 용도에 맞게 짐정리를 거의 마쳤습니다. 지난번 살던 아파트의 거의 세배쯤 되는 땅집 단독주택입니다. 이번 주일 집들이를 하려고 부지런을 떨며 점검했습니다.
 
 주일 오후 다섯 시부터 집들이
 쪽대문으로 들어오면 조그마한 마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자동차 두 대가 들어올 주차장입니다. 자동차 들어오는 문은 크고 사람 드나드는 대문은 작습니다. 그리고 현관으로 들어오면 거실입니다. 거실을 통과하면 식탁 놓는 공간과 주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복도 양쪽에는 서재와 안방 그리고 손님방이 있습니다. 방 셋, 화장실 셋이 있는 그런 집입니다. 주차장에서부터 골목 긴 복도를 따라 가면 조그마한 이층 부속건물이 있습니다. 긴 방 하나씩 아래 위층입니다. 제가 이사 오기 전에는 이층에는 탁구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집과 부속건물 사이에는 공간이 있어서 빨래도 널고 고기도 굽는 그런 도구가 있습니다. 집들이에서 처음 사용할 여덟이 둘러앉을 수 있는 긴 원목 탁자를 갖다 놓았습니다. 전에는 제 책상으로 쓰던 물건입니다. 이번 주일 오후 집들이에는 최명호, 정석윤 집사에게 고기 굽는 것을 도와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한요덕 집사님이 감독하시면 더 감사하구요. 거실에는 이은희 집사님이 초창기에 주신 6인용 소파가 자리를 잡았고 커피기구들을 거기에 놓았습니다. 식탁은 교우들이 원목 8인용 식탁을 좌정시켜서 식당을 운치 있게 했습니다. 둘이 사는 집에 늘 성도들을 초청해서 식탁을 풍성하게 하라는 무언의 압력입니다. 감사와 찬미로 그 말씀 받들겠습니다.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조그마한 미니거실이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거기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두 명이 앉을 소파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방으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에는 입구에 서재와 그리고 옆에 안방 그 맞은편에 손님방이 있습니다.
 
 집들이 관전 포인트와 기념품 십자가
 서재에는 아파트에서 살 때 좁아서 꺼내지 못했던 것들은 꺼내서 늘어놓았습니다. 방 한가운데 책상을 놓고 뒤쪽에는 벽 한 면을 서가로 앉히고 책상 앞에는 붙박이 옷장이 있어서 그 안에 책들을 넣고 문을 닫아 필요할 때 찾도록 했습니다. 교회 로비에 있던 ‘정석윤표 책상’에는 교회력에 따른 강단색 조견표, 생일자 명단, 교회학교와 성인성도 명단, 꽃꽂이 헌신자 명단, 생일자 명단 등이 서재 앞 책상 가림대에 쭉 붙어있고 책상 위에는 늘 뽑아보기 좋게 사전들과 각종 성경, 성구대사전과 국어대사전, 연필꽂이, 큰 모니터, 피라시카바 지도 등이 책상 주변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면을 이어서 제가 브라질에 왔을 때부터 사용하던 ‘신헌순표 책상’을 붙여놓아서 프린터와 필요한 책들을 펼쳐놓고 쓰도록 그렇게 배치를 했습니다.
 유권사님, 이번 이사하면서 횡제한 사람은 제 아내입니다. 그 흔한 화장대 하나 없이 욕실 세면대 주변에 화장품을 놓고 살았던 아파트에서 해방되는 기념으로 화장대를 마련하기로 한 내 스스로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풍금같이 생긴 콘솔을 늘 생각했습니다. 오르간 연주가 끝나면 건반덮개를 닫는 것처럼 그렇게 생긴 중고가구 콘솔 하나를 사서 안방에 놓아주었더니 너무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소박한 행복을 생각합니다. 유권사님, 이번 주일에 있을 집들이 관전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집들이 방문 기념 선물은 한국의 빌립공방에서 김명원 권사가 만들어 준 얼룩무늬 목걸이 십자가로 준비했습니다. 나가실 때 거실 왼편 고가구 탁자 위 쟁반에 있습니다. 하나씩만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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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21 Jun 2018 02:23: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믿음이 이기네-2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71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곡조는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라는 옛 노래 가락처럼 부르시면서 “찬송가 가사만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린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주님 앞에 가실 때까지 부르셨던 찬송이기에 마음에 이토록 와 닿았으리라.... 찬송을 부르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기도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브라질 북부 아마존지역인 마나우스에 선교를 다녀온지 몇 일 밖에 안되었기에 피곤도 하지만, 마나우스에 가기 전에 감기를 알아온 터인지라 육신적으로도 염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쌍빠울로에서 브라질 동북부 헤시삐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거기서 밤 뻐스를 다시 타고 8 시간 이상을 달려 빠라이바주에 있는 빠또스에 도착한 후에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도 바빠지고 어깨도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빠또스 그곳의 더위는 섭씨 40도를 웃도는 가장 무더운 곳 중에 하나인 지역이고, 새벽 4시면 날이 밝기 때문에 그때부터 일어나 일을 시작해서 더워지는 대낮이 되기 전에 모든 일을 마쳐야 하니 정말 바쁘게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데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찬송을 부르는 나의 마음에 주님은 불같이 뜨거운 믿음을 심어주고 계셨다. 담임 김 목사님을 통해 이 찬송을 부르게 하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감격의 제사를 드리는 마음이였다. 주님은 “아무데나, 어디서나 지켜 주시겠다” 하시는데... 아골 골짝 빈들인들, 여리고 성인들, 골리앗이 서 있는 전쟁터이든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 할렐루야!!! 새벽예배의 말씀은 창세기 23장이였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가나안 땅 기럇아르바에서 127세의 나이로 수한이 다하자 아내를 사별한 아브라함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겠는가? 아내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하던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로 나아가 아내를 위해 매장지를 구하게 되고, 그들은 세 번이나 아브라함에게 간청하듯 사라의 매장지를 무상으로 내어 주고자 하였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두 번이나 허리를 굽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성경을 읽어보면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그 백성들의 하나님의 방백 곧 지도자로 존경하고 있었다.]]>
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21 Jun 2018 02:13:00 +0900
(최복이 대표의 7전8기 무릎경영이야기)부지런한 손, 따뜻한 입, 낮은 마음으로 살기를 기도하며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60 부지런한손.jpg
 
최복이 대표의 휴대폰에 그의 남편은 김철호라는 이름 대신 ‘수호천사’로 저장되어 있다. 최 대표 스물에 만난 그 사람이 지난 30년 곁을 지켜줬다. 풍요로운 날도 있지만 가난하고 힘든 날도 변함없이 남편은 최 대표 인생의 멘토이자 친구로 있었다. 서로 다름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며 역할 분담을 통해 가정과 기업을 이끌어 왔다. 최 대표에게 남편은 피할 그늘이자 든든한 지원군이고 변함없는 팬이다.
 최 대표는 일찌감치 ‘남편은 어머님 것’이라고 인정하고 남편과 살림 등 모든 주권을 시어머니에게 드렸다. 최대표가 서른여섯이 되던 해에 남편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면서 그때야 비로소 홀로 되신 시어머니의 심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서른여섯에 혼자된 후, 서천장, 한산장 등을 포목장수로 돌아다니면서 1남 4녀를 키워내신 분이다. 억척스러운 면도 있지만 그것이 시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을 들게 했다. 그 후로 시어머니가 말씀하시면 이치에 안맞아도 무조건 ‘예’하고 순종하였다. 아들 못 낳는다고, ‘여자가 잘 들어와야 사업도 집안도 잘 되는데...’하며 구박받으며 속앓이 하던 시간도 있었지만, 차츰 시어머니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자 시어머니도 최 대표를 딸 이상으로 편하게 대해주셨다. 5년을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두 분을 모시다가 2011년 시어머니는 선암(돌아다니는 암)으로 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기도만 하셨다. 그것이 최 대표 부부에게는 살아갈 에너지이고 가장 큰 유산이고 삶을 헤쳐나갈 동력이 되었다. 최 대표에게 시어머니는 어떤분인가? 시어머니는 끈질긴 기도와 가정을 위해 헌신적 희생을 보여 준 모범 답안 지 같은 분이시다.
 최 대표에게는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든든한 세 딸이 있다. 어려운 시절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지만 주님이 딸들을 키워주셨다. 큰 딸은 하나님이 알아서 키워주셨다. 연세대 심리학과를 나와서 미국 버클리대 유학 후 대기업 기획실에서 근무하다가 좋은 짝을 만나 결혼했다. 독립심이 강해 결혼 준비도 스스로 했고, 가족 중심의 작은 전통 결혼식을 올렸다. 나이 서른의 큰 딸은 예쁜 딸 하나를 낳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에 따라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둘째 딸은 최 대표의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이다. 최 대표가 고생할 때 가진 아이라서, 세 딸 중 가장 작고 예민했다. 하지만 선교원 다닐 때부터 스케치북에 빠져 살 만큼 그림을 좋아했다. 걱정했지만 다행히 뉴욕대에 입학을 하고 6개월 만에 적응을 했다. 그 후 콜롬비아 대학원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면서 활발한 작품 활동과 전시회를 열었다. 작은 키지만 둘째의 삶은 당당하고 힘이 넘친다. 막내인 셋째 딸은 출산일까지 새벽기도를 다닌 후 낳은 아이라 그런지 믿음이 좋다. 큰 언니를 따라 미국에서 미션스쿨 중고교를 다니다 한국에 와서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 자격을 얻었다. 엄마의 기업을 돕고 싶다며 호텔 외식 경영학을 배웠지만, 더 공부하겠다는 의지로 한동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살갑고 활동적인 최 대표의 셋째 딸은 미국의 기부문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장학금 전액을 생명의 전화에 기부하기도 했으며, 토요일이면 입던 옷을 정리해 시설에 기증도 하고. 한번은 어느 기차역에서 휠체어 장애인 체험을 해 보고는 경사와 계단 등 개선점을 찾아 리포트를 제출하기도 했다. 또한 자주 편지를 써서 최 대표를 응원해주는 사랑스러운 딸이다. 바쁜 일상으로 인해, 어미로서 딸들을 잘 보살피지 못했지만, 최 대표가 반드시 챙긴 교육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말씀교육이었다. 아이들에게 시편, 잠언, 복음서를 노트에 쓰게 했다. 그것은 방학 때 마다 방학 숙제보다 더 강조하며 지킨 교육이다. 결국 유대인들의 쉐마 교육처럼 말씀 교육과 기도의 지원이 오늘날 사랑스러운 딸들로 자라게 한 것이다.
 최 대표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는 이유가 ‘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은 더욱 선명해졌다. ‘오직 무릎’으로 라는 기치를 들고 살아가는 최 대표는 영성 관리를 위해 5가지 원칙을 세웠다.
 ▣ 영성관리 5가지 원칙
 1. 토요일은 하나님과 가족과 데이트하기
 2. 성경은 분기별 1독으로 1년 총 4독하기
 3. 성경 쓰기와 외우기
 4. 외운 말씀으로 묵상하고 기도하기
 5. 출근 전 기도, 출근해서 Q.T와 기도, 퇴근 후 기도
 원칙을 소중하게 여기는 최 대표의 성실함 쌓여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고 친밀한 영성을 유지하는 터전을 만든것이다.
 ▣ 최 대표가 고백하는 네 가지 키워드.
“①하나님의 뜻 ②하나님의 때 ③하나님의 방법 ④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 최 대표 오늘의 소원 기도
“부지런한 손 따뜻한 입 낮은 마음으로 주님과 이웃을 더T(†)he 사랑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4 Jun 2018 03:38:00 +0900
(정찬성 목사의 복음자리 이야기)공원의 일본식 정원 앞에 앉아서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59 정찬성2.jpg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지난 주간에는 우경호 선교사가 다녀갔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일본인 농장에 가서 단감을 한 보따리 사왔다고 합니다. 사모님이 그 단감을 썰어 말려서 감 말랭이를 만들었습니다. 잘 익은 단감과 감 말랭이를 한 보따리 들고 왔습니다. 당신 사역지인 이따베바에서 비포장으로 삼십분쯤 들어가면 수만 평의 감농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브라질 전역에 고급스런 단감이 공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걸 사다가 사모님이 감 절편을 켜서 말리고 당도가 훨씬 높아진 한국식 감 말랭이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 이민농부들이 생산한 단감이 브라질 장악
 일본인 농업이민의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농업이민자들을 끝까지 관리하고 그들에게 농기구, 농업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그들이 정착한 곳의 흙을 분석해서 적합한 농사를 위한 품종까지 추천하고 농업기술을 전수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이미 그들이 정착한 땅의 모든 흙들을 분석한 자료를 제공하고 그 정보를 일본 정부가 갖고 있다고 합니다. 농업이민 2세 3세들은 이미 고급 공무원, 시장, 판검사, 의사 등 브라질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해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저희 동네 옛 철도역사 자리 시민공원 안에 일본식 정원이 있어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는 것만 봐도 일본인들의 정착을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시의 대표적인 공원 한편에 연꽃이 만발하고 비단 잉어와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일본 풍 가로등과 연못을 넘나드는 다리가 세워진 그런 인공 연못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부럽습니다. 일본인들이 일찍이 정착한 것은 우리가 다 잘 아는 일이어서 브라질의 일본인 소유의 땅이 일본 영토만큼이나 크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일본인들이 농업이민을 와서 땅을 불하받고 정착한 지가 10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유권사님, 제가 한국이민관련 자료를 읽다가 일본인 이민관련 자료를 함께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인 가운데 초창기 한국인들의 이민에 보증을 서는 일에 앞장선 이가 있었습니다. “이다”할아버지는 한국인들이 집을 얻을 때나 이곳에서 무슨 보증을 서야 한다면 앞장서서 주선했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쌀가마니를 전해주는 그런 선행을 한 국적은 일본인이었습니다. 교포사회를 연구하는 이들의 인터뷰나 역사적 증언에 의하면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후 일본에 간 한국인이 일본 국적으로 브라질에 이민 와서 정착한 후 한국인 가운데 여러 이민 온 이들의 정착을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라질 이민은 참 여러 가지 경우입니다. 당신과 같은 처지의 일본인 신분으로 이민 온 초기 한국 이민자, 해방 후 한국전쟁 포로들 가운데 중립국을 택해서 브라질에 온 반공포로 출신 이민자들,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공식적으로 이민 온 이민자들이 초창기 이민자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남미 의류산업이 한국인 손을 떠나면 속수무책
 아마존 지역에 땅을 얻어 농업이민을 온 이들이 아리랑 농장을 건설하고 고군분투 했지만 농업이민이 성공한 케이스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민 온 한국인들이 브라질에 정착해서 도시를 장악하고 의류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졌으나 미래세대를 준비하는 데는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분만 벌써 네 가정이나 역이민으로 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상파울루에서 성공한 이들의 자녀들이 의대, 법대, 공대 등 주류사회의 진입장벽을 넘는 코스로 갔으나 졸업한 후에 대부분이 공무원 연봉보다 훨씬 많은 부모님들의 의류사업을 물려받아 주류사회 진입 쪽 보다는 경제적인 동물이 되는 쪽을 선택했고, 브라질을 미국이나 캐나다 진입의 순환코스로 생각한 이민자들은 브라질에서 돈 벌어 미국으로 다시 이민을 떠나는 바람에 남미 의류사업의 후발주자인 볼리비아 인들, 중국인들의 먹이 사냥에 속수무책이라고들 한탄입니다.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서 이민사회가 나갈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 시급한 실정이라고들 하는데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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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4 Jun 2018 03:37: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믿음이 이기네-1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54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비행기 기체가 무사히 이륙하고 비행이 시작되자 선교여행을 떠나기 전 일들이 생각난다. 칠흙 같은 밤 아직 모든 만물이 깊히 잠든 시간에 주님은 잠을 깨우셨다. 시계 바늘은 새벽 두 시 반을 가르키고 있었다. 언제나 깊은 밤에 잠에서 깰 때면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깨우셨다고 생각하고 지나오게 하신터라 먼저 주님께 기도를 드리고 달력의 오늘이 9일이므로 잠언 9장을 읽고나서 딴에는 조용히 이것 저것 집안 일을 하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새벽기도 시간에 맞추려면 아직도 두 시간은 족히 남아 있기에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본다. 그 옛날 친정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새벽에 일어나시는 엄마에게 “왜? 매일 새벽에 일어나시느냐”고 질문하는 나에게 “얘야 새벽에 하는 일이 얼마나 마딘줄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동백 기름을 발라 반들 반들 윤기나는 새까만 쪽찐 머리에 비녀를 꽃으시고 고운 한복이 발에 끌릴까봐 치마를 살짝 올려 허리를 찔끈 동여매시고 사쁜 사쁜 다니시던 엄마의 모습! 이젠 다시는 볼 수 없어도 그 때 그 모습 생각만 하는데도 보고 싶은 마음이 몰려오고 가슴이 찡하고 울렁댄다.
 4시 반이 되자 잠을 깨고 일어나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교회로 향하는 남편과 함께 교회로 가는 기쁨! 오늘 새벽에는 무슨 말씀으로 우리를 만나 주실까? 말씀이 있는 곳에서 드리는 예배가 기다려지는 이 설레임! 경험한 자는 알 것이다. 예배가 시작 되었고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찬송을 함께 불렀다. 얼마나 많이 불렀던 찬송인가? 헌데 오늘 따라 마음에 불덩이가 떨어진 것 처럼 뜨거워진다. 그리고 이 찬송은 친정 부모가 브라질에 오셔서 4년을 계시는 동안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제일 먼저 엄마에게 가르쳐드리고 함께 불렀던 찬송이기에 그 당시 엄마와 마주 앉아 예배를 드리던 그때를 다시 생각나게 하였다.
 찬송가 가사는 매번 바뀌어도 곡조와 음정은 어머니 자신만의 독특한 작곡으로 항상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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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4 Jun 2018 03:30:00 +0900
(캄보디아 선교편지)2018년 3, 4월 선교소식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44 캄보디아.jpg
 
우리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소망으로 하루 하루를 복되게 살아가기를 축복하며 선교소식을 전합니다.    
 부활절과 캄보아 새해
 캄보디아에는 새해가 3번(인터내셔날새해, 중국새해, 캄보다아새해) 있다고 여러번 이야기 하였습니다. 올해는 새해가 4월 14일(금)-16일(주일)이어서 주일날 결석을 많이 하여 출석인원이 3/4이 빠져 예배가 썰렁하였습니다. 캄보디아 새해가 부활절과 겹치면 준비한 부활절축하예배가 진행하기 어려워 집니다. 크리스마스는 어느 정도 알려 졌는데 부활절은 아직 깜깜입니다. 올해도 캄보디아 새해인 쫄츠남 앞에 무너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선교는 성령님이 하셔야 된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유치원 Spacial Me 영어교재
 3월에는 영어 교재 프로그램인 Spacial Me 세미나에 참석하고 와서 4월부터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교재인데 선교 보급판 교재를 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달에 1권을 가르치는데 저희는 45일에 한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제가 칼라 인쇄를 하여 아이들이 좋아하고 알파벳 ABC를 배우고 영어 단어를 배우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약혼감사
 저희 교회 전도사님이 지난 4월9일에 약혼식을 하고 나서 약혼녀와 함께 선물을 가지고 인사를 왔습니다. 좋은일이 있을 때 사람이 오래 살다보면 이런일도 있네 라는 말을 하는데 저도 이곳에서 사역을 하다 이런 일이 있어서 가슴 뭉클하는 감동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선교사역을 하면서 너무 계산적으로 받기만 하려고 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 알게 모르게 상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뿌린 복음의 씨앗들이 열매를 맺어 다음 안식년 때는 더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지금까지 저희와 함께 복음의 씨를 뿌린 분들게 감사를 드립니다.  
 캄보디아 프놈펜쎈타
 프놈펜에 학사와 유치원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려고 기도하며 장소를 2017년전 3월부터 찾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알아본 것 가운데 적당한 곳을 놓고 기도하던 중에 계약을 하기로 결정하고 법적 절차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다음주에 법적 문제가 없으면 계약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역을 하도록 기도부탁을 합니다.   
 캄보디아 선교현황
 지금까지는 선교사역이나 비자와 운전면허를 받는데 제한이 없어서 사역하는데 도움이 되었는데 4월부터 노동허가를 받은 다음에 비자와 운전면허를 신청하도록 법이 변경되어 불편하게 되었고, 사역에 제한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캄보디아가 첫째는 전산망이 구축되어 가고 있어서 이민법과 노동법을 제도화 하여 세금을 받기 위함이고, 둘째는 1067년 8월 8일 설립된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중 1999년에 10번째로 가입한 캄보디아도 ASEAN에 준하는 법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중국의 경제 원조와 함께 중국사람들이 캄보디아정부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이 입국하여 문제를 일으켜 법적인 제제를 가하기 위함입니다.      

박창환, 박정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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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7 Jun 2018 03:00:00 +0900
(최복이 대표의 7전8기 무릎경영이야기)“가족 딸린 바울들이 울고 있다. 선교사들을 도우라”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40 가족딸린.jpg
 
하나님께서 최복이 대표에게 주신 특별한 마음은 아픔을 공감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아픔에 함께 하는 용기도 주셨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본사랑재단>으로 열매 맺었다면, <본월드미션>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묵묵히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들의 파트너로 세워졌다. 본월드미션은 세계 2만7천 선교사들의 건강과 환경을 보살피며 사역에 협력하고 있다. 특히 선교사들의 케어와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그 분들을 위해 전용 숙소를 제공하는 일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200여 명의 선교사 자녀들(MK, Missionary Kids)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또한 심신이 아파서 잠시 귀국한 선교사님들에게는 건강검진, 치유상담(영성훈련센터) 등 그때그때 선교사님들의 형편에 맞춰서 돕고 있다.
 기독교리더 양육을 위해 이스라엘 성지순례여행을 후원하거나 캠퍼스(차세대) 리더 성지영성훈련 프로그램도 지원하고, 그 나라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서 보내주기도 한다. 사역지원은 선교지의 사역에 따라 교회, 학교, 병원 짓는 일에 참여하는 일이다. 아울러 선교사님들의 힐링을 위한 로뎀나무 캠프, 사모동행 캠프, MK캠프 등으로 영육의 필요를 살펴서 공급하고 있다. 선교사 파트너십은 (21세기형, 신개념) 비즈니스 선교 사업을 말한다. 특히 파트너십은 해외사업에서 잠재가능성이 상당한 매우 중요한 축이다. 최 대표는 본 브랜드를 통해서 선교사님들이 효율적으로 사역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었다. 하나님께서 본월드미션의 사역을 위해 김경자 목사(본월드미션 사무총장)을 보내 주신 것은 최 대표에게는 큰 힘이며 위로였다.
 본사랑재단의 첫 사업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고아를 돕는 사진전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의 전시장을 대관하여 두 선교사가 사진을 가져오셔서 전시가 진행되었다. 두 사람은 여비도, 묵을 곳도 없이 사진전에 나오는 주인공인 ‘제바’라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다. 게다가 한 사람은 허리디스크가 너무 심각한 상태였다. 최 대표는 이들을 친정어머니가 오빠 집에 머물러 가셔서 마침 비워있던 아파트에 머물도록 해주었다. 식사는 아파트 밑에 있는 본죽에서 식사하도록 했다. 모금을 위한 사진전이어서 초청장 발송 등 많은 것들이 준비되었지만, 정작 모금이 거의 안 됐다. 더구나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다시 선교지로 돌아가는 선교사의 뒷모습을 보며 최 대표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 저건 뭘까? 누군가 기다린다 해도 내 몸이 망가졌는데 저리 총총히 돌아가는 건...’ 이후로도 이렇게 저렇게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일이 생기면서 그 분들의 수많은 아픔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한국에 와도 머리 둘 곳 하나 없어 친구 집이나 찜질방을 떠도는 독신의 여자 선교사들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으로 연세대 앞에 오피스텔 여섯 칸을 사서 하나님께 드렸지만, 3개월 동안 단 한 명의 선교사님도 오지 않았다. 새 집에 좋은 방이 비워 있는 것이 안타까워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번호를 알려 주며 쉬라고 했다. 본사랑 재단과 연결된 분 중에 세브란스 병원에 소아암 아이를 데리고 올라온 부부가 있어서 거기서 머무르라고 했지만 아무도 거기서 자지 않았다. 그러다가 선교사 한 분이 머물고 난 뒤 부터는 선교사들이 연이어 묵고 가는 것을 본 최 대표는 첫 3개월 동안 오롯이 선교사들만의 숙소로 드리지 않은 것을 회개했다. 하나님은 오직 선교사와 그 가족을 위한 전용 숙소와 쉼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본월드하우스’를 만들고 다른 용도로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인천공항에서 20분 거리, 화곡역 1번 출구와 가까이 마련한 스무 칸짜리 본월드하우스의 방은 10~20평 정도로 작아도 선교사들의 만족도가 높다. 방 마다 말씀과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식 사진이 걸려 있어서 방에 들어서면 눈물이 난다고 한다. 재래시장도 가까이 있어서 1~2만원이면 사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 다 살 수 있다고 좋아하신다. 최 대표는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밟는 중에 기업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사를 위한 복지관을 발견하고 감동을 받았다. 사회복지사들은 장애인과 치매노인과 같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돌보다 보니 정작 본인들이 다 소진되고 탈진된 상태였다. 박한 월급에 헌신만 요구하는 인신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는 복지사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선교사들이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분들을 케어하는 사역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이었다. 한번은 최 대표가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중에 아주 구체적인 음성을 들렸다. “가족 딸린 바울들이 울고 있다. 선교사들이 울고 있다. 그들을 도우라. 그들을 도우라”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선교사들을 보살피라는 본월드미션의 정체성을 정확히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앞으로도 (사)본월드미션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자원을 확보하고 매장을 활용할 것이다. 본사랑은 사회공헌과 NGO기구로서 가난하고 낮고 쓸쓸하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구제하고 사랑을 전하는 일을 할 것이며, 본월드미션은 선교기업으로서 전 직원이 기독교인이며,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선교사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또 연초에는 금식기도를 하고 영성일기를 쓴다. 직원 한 명 한 명이 비니지스 선교사와 같은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이처럼 해외법인인 본월드와 함께 본사랑와 본월드미션은 하나님이 열어주신 세 가지 통로이다.  
 선교사 자녀 캠프
 태국,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지에서 열린 세계선교사대회에 강연자로 가서 많은 선교사들을 만났을 때에, 선교 후원이 줄어들고 지원도 끊어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일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즈니스 선교는 마지막 대에 하나님의 꿈이자 대안이며 선교사님들과 함께 이룰 큰 비전이다. 비약해서 표현하면 물질의 우상 맘몬 신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전쟁을 선포하는 위험한 선교이다. 하지만 한 손엔 빵을 한 손엔 복음을 들고 가는 선교사님들의 발걸음에 본월드미션의 비니지스와 선교를 융합한 비즈너리(business+missionary)는 선교사들의 사역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최 대표는 본월드미션을 통한 사역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이 일하십니다. 나는 단지 그 분의 손에 쥐어진 플러그 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 안에서 성령 충만한 가운데 Plug in God, Plug in Jesus 하면 된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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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7 Jun 2018 02:54:00 +0900
(정찬성 목사의 복음자리 이야기)누구든지 오셔도 주무실 방이 있습니다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38 정찬성2.jpg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저는 요즘 브라질에 와서 처음 이사준비로 분주합니다.
이사를 준비 하면서 이방인으로서의 외국인임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겁 없이 하는 일상적인 일이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사를 하려고 하니까 제약이 참 많습니다. 요구하는 것도 많고 그래서 브라질 이사에 대한 관행을 공부하게 됩니다.
 이사 갈 사택, 계약하고 열쇠를 받아
 이사 갈 집을 찾는 것부터 부동산 회사와 계약하고 이사하기까지의 과정은 한국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사 준비를 하면서 힘이 들었던 것은 보증인을 세워야한다는 데서부터입니다. 교인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 보증보험 같은 제도를 알아봤으나 그런 제도가 있기는 한데 절차가 복잡하다고 기피합니다. 저는 제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구 영주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기 전화 인터넷 등등도 이전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 이름으로 내는 전화요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근거로 전기 상하수도 인터넷 등을 가급적이면 브라질 영주권자 정찬성으로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목회를 계속하려면 브라질 시민으로 살 준비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법인과 브라질 시민으로 자리매김해서 브라질에서 선교하는 목사 브라질을 선교하는 목사로 한발 더 나아가는 계기가 이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이사는 교회 법인 담당자인 이상열 집사 이름으로 계약을 하고 내 집을 갖고 있는 오승렬 집사가 보증을 서서 땅 집으로 셋집을 얻어 가지만 다음에는 법인관계서류를 보강하고 교회가 건축되고 법인등기가 되면 그런 불편함으로부터는 해방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권사님, 아마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도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더 애정의 눈으로 한국인 체류자를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있습니다. 유권사님, 결국 제 이사문제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일단 집을 계약하고 열쇠를 받았습니다. 이제 이사를 가면 되는 일인데 세를 살다가 이사를 가게 되면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이사 올 때처럼 ‘고쳐달라 칠해달라 바꿔달라’는 요구에 응해야 하고 거기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미리 사진을 찍어서 계약서에 부쳐두고 쌍방이 확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겁먹은 제 아내는 계약서를 보고 확인할 뿐만 아니라 계약서 사진에 없는 부분 중에 갈라지고 터진 부분을 더 사진 찍어서 계약서에 붙여두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영구영주권 서류 준비할 차례
 사람 사는 사회니 그 관행을 존중해야겠지만 너무 필요이상으로 날치는 것은 좋지 않아보여서 주의를 주었습니다. 유권사님, 드디어 브라질에 와서 이년 반 만에 아파트를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누가 손님으로 오셔서 주무실 손님방이 생겼습니다. 선교사님들이 멀리서 오셔도 우리 집에서 주무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삿짐을 싸면서 보니 짐이 엄청 늘었습니다. 돈 주고 산 것이라고는 침대 하나뿐인데 소파도 생겼고 커피 전용 장도 생기고 책꽂이 책상이 서재를 만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유권사님, 이사 가서 정리 한 후 한번 오셔도 좋을듯한데 너무 연세가 있으셔서 오실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누구든지 오시면 함께 묶을 수 있는 방이 생겼고 서재와 거실이 넓어졌고 그리고 탁구장도 하나 생겨서 제 개인적으로는 참 좋습니다. 이제 영구영주권 서류작업을 마무리해서 신분보장을 확실히 하는 것이 선교의 기초라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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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7 Jun 2018 02:51: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6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33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기다려도 비가 그칠 낌새는 보이지 않아 우산 하나에 둘이 팔짱을 꼭 끼고 걷기를 시작했다. 비오는 날 어둠마저 한 몫을 하니 보행로를 못찾아 풀밭 가장자리를 걸으면서, 궁상을 떠는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호텔방의 물을 안먹는 것과 호텔밥을 안먹는 것을 거의 철칙으로 지켜 왔지만 비오는 날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웬 은혜인가? 불평이 안나오고 함께할 수 있는 남편이 있어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 하는데 하나님이 감사하는 나의 중심을 보셨는가보다. 어떤 자가용 하나가 우리 앞쪽에 멈춰 서드니 우리가 도착하길 기다리다가 창문을 열고 운전대에 앉은 한 50십대의 중년 여자가 차창을 열고 얼굴을 내밀며 “가이드가 필요합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비를 맞아 춥기도 하고, 갈길은 아직 멀므로 나는 단번에 “예쓰”라고 답을 해버렸다. 그 여인은 우리를 호텔 앞까지 데려다 주었고 우리는 축복을 빌며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하고는 헤어졌다. 우연인가? 누군가가 우연이라 말한다면 난 단호하게 노라고 대답 하리라.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겠다”고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셨다는 사실에 손톱만치도 의심치 않는다. 주님이 보내셨음을 난 확실히 믿는다. “하개하심”,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지도하시리라”는 말씀이 능력으로 현실화된 사건들이 우리 생애에 얼마나 많았던가?
 할 수만 있으면 민폐를 줄이려고 애썼지만 오 집사 부부는 우리를 참으로 선대해 주었다.
 떠나기 전날 밤 아주 맛있는 일식으로 배를 불려 주었고 꼬찌아교회 사모님의 수술비용 삼분의 이를 감당해 주었다. 어서 캘거리에 가서 브라질 베데스다교회의 선교부 재정장로님께 수술비를 보내주라고 할 생각을 하니 넘 감사하고 마음이 바빳다. 거의 말이 없는 오 집사님은 그 시간도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아마도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예쁘고 똑소리 나는 부인 강 권사님의 지헤로운 말과 행동에는 소망이 묻어나고, 결혼한 딸 리아의 태가 열리기를 그리고 아들 빠올로와 제임스의 배우자를 위한 기도제목을 받아 안고 아쉽게 우리는 그들을 떠나야 했다.]]>
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7 Jun 2018 02:43:00 +0900
(최복이 대표의 7전8기 무릎경영이야기)복음과 섬김으로 이웃들의 변화와 행복을 돕는 ‘본사랑재단’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24 본사랑재단1.jpg
 
‘본죽’이 세계로 확장되며 2020비전이라는 구체적인 꿈과 방향을 향해 나아갈 때도 최복이 대표의 마음에 떠나지 않는 하나의 관심이 있었다. 그것은 노숙자들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동병상련의 아픔을 통해서 심어주시고 역사하신다. 어느날 본사가 있는 종로에서 최 대표는 평소 좋아하는 국화빵과 붕어빵을 나누고 있었는데, 평소 눈에 자주 띄던 사람들이 인사동 도로 가에 누워 있고 정차된 차들은 빵빵거리는데, 도심 정비 사업의 명목으로 길가의 노점상들과 구청 직원들이 부딪혀 난리가 난 것이다. 생계가 달려 필사의 저항을 하는 그들을 보며 최 대표는 지난날 500원짜리 호떡을 팔며 거리를 전전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숨이 막히며 자신도 모르게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저 사람들 어떡하죠? 몸도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데 어떻게 해요...’최 대표는 본죽을 처음 시작했을 때 길 건너에서 밥생명공동체가 노숙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봉사도 하고 밥생명공동체에서 봉사를 하는 분들이 매장에 와서 식사하고 가도록 했다. 그 작은 시작이 본사랑 재단의 시초였다. 차츰 더 많은 노숙인들을 섬겼으며, 본죽에 입사하는 신입사원은 일주일씩 노숙인 식당에서 봉사하게 했다. 먹을 것으로 복을 받았으니 못 먹는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갓 피플이 굿 피플이고 갓 파트너가 굿 파트다(God people is Good people, God partner is Good partner) 직영으로 연 종로구 ‘본죽’ 계동점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매장 수익의 전체를 노숙인을 돕는 D매장(donation, 기부매장)으로 삼았다. 이 후 대학로에서 시작한 점심 봉사를 부평역과 천안역까지 넓혀 주셨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철저히 드리는 마음이 생기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라”(마 22:21)의 말씀에 순종하는 십일조와 감사헌금에 대한 분명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2007년 초반 최 대표는 신문기사에 소개된 빌 게이츠의 부인 멜린다 게이츠가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세워 폭넓은 선행을 펼친다는 보도에 큰 감동을 받았다. 물론 최 대표는 그 전까지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섬김의 자세로 매장 하나에서 나오는 수익 전체를 노숙인을 위해 돕거나, 회사에 받은 월급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교회를 산발적으로 후원하거나 찾아오는 사람도 도왔다. 하지만 더 큰 섬김과 실천을 위해서 기업 차원에서 본격적인 섬김의 사역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최 대표는 남편(김철호 본죽 회장)에게 신문 기사를 보여줬더니 너무 귀한 사역이고, 남을 위해 퍼주기 좋아하는 최 대표에게 어울리는 일이라며 응원해줬다. 최 대표의 남편은 휴대전화에 ‘멜린다 최’라고 등록하면서 동기 부여를 해줬다. 보건복지부에 재단 설립을 위한 신청서를 냈지만 허가가 쉽지 않았다. 기업에서 운영하는 재단이다 보니 탈세 등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하며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3년을 기다리며 최 대표는 기도를 많이 했다. 하지만 일이 진척되지 않아 2009년 초에는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재단의 이름까지 ‘본사랑’으로 주셨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으며 기도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동기에서 설립하는지 그것을 제출하면 허가를 검토하겠다는 조건부 허가 통보가 왔고,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해 온 몇 가지 일들과 왜 그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제출하니까 최종 허가서가 나왔다.
 사단법인 본사랑의 이사장으로 취임식을 하던 날, 남편은 본아이에프 수입의 10%를 (사)본사랑에 기부해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사단법인 본사랑은 이러한 외조로 지금까지 순항중이다.
 “본사랑죽”은 “이 땅에 굶는 아이들이 없게 하라. 내 희망은 아이들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세계 곳곳에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을 받는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죽 제픔이다. 따라서 “본사랑죽”은 유통기한 1년으로 분말로 된 제품이며, 이동과 보관이 용이하다. “본사랑죽”에 뜨거운 물이든 찬물이든 부으면 죽으로 호환되어 떠먹거나 우유처럼 병에 넣어 마실 수 있게 했다. 또한 (사)본사랑은 500명의 본죽 점주, 협력사 그리고 직원과 일반 개인들까지 함께 참여하고 있다. 본사랑죽과 본도시락 지원, 식자재(쌀, 김치, 고기류)지원, 소아암 아동과 장애아동 수술지원, 쪽방촌 문화교실, 새터민과 다문화 가족 지원, 다문화 청소년 글쓰기 대회, 지역사회(반찬, 조손가정, 장애인 축구) 후원과 자원봉사 등 낮고 먼 곳으로 섬김의 지경을 넓히고 있다.
 쪽방촌 사람들에게 문화 복지를 누리게 하면, 이분들이 자존감도 되찾고, 재활의지와 삶의 질도 높아 질것이라는 기대에 첫 문화공연을 열었다. 성악가가 나와서 오페라 명곡과 아리아를 불렀는데, 청중과 교감하는 한 시간의 공연은 감동과 눈물과 박수의 바다였다. 공연을 진행하던 최 대표도, 초대받아 공연을 한 성악가도 그리고 13명의 청중 모두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등대교회 문화교실’은 지금까지 40회를 맞이했다. 최 대표는 이후 2012년부터는 장애인 댄스대회를 통해 상금을 후원하였고, 이후 2015년에는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팀을 만나게 된다. 그 축구팀을 위해 차 한 대와 활동비를 지원한 계기로 본사랑 G7 축구단과 인연을 맺으며 돕게 된다.
 섬김의 사역은 더욱 확대되어 네팔, 케냐,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서  2380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다. 예산이 없어 공사가 중지된 학교를 다시 짓고, 교회가 운영하는 양로원을 보수하는 등 주님이 맡기신 ‘작은자(小子)’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후 하나님은 인도차이나 5개국에 신학교 설립 프로젝트에도 헌신하게 하셨다.
 지난날 최 대표가 겪은 인생의 고통과 밑바닥 같은 삶은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아 긍휼의 사역을 하게 하신 놀라운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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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24 May 2018 20:14: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5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217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출애굽기에 “마라의 쓴맛”에 대한 말씀에 곁들여 선교보고를 하고 예배가 끝나 오래 부르짖고 싶었으나 본 교회 담임 목사님이 어깨를 가벼이 치시며 따라 오라기에 기도도 속시원하게 못한 채 교회를 빠져 나왔다.
 지나치는 선교사를 선대하는 목사님의 사랑을 받고, 성경공부를 시키기 위해 다시 교회로 들어가서야 하기에 우리는 간단히 아침을 들기 위해 팀홀톤을 택했다. 거기서 비로서 브라질 현지인 교회를 짓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이 강권하셨던 일을 강권사를 통해 듣게 되었다. 원래 브라질에 살고 있던 그들이 급하게 캐나다로 재 이민을 가게 되는 그들만의 특별한 사정으로 인해, 브라질에서 살던 집은 물론 그들의 소유인 또 다른 집 두 채도 고스란히 놓고 캐나다로 급히 재 이민을 가게 되었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토론토에서 건축사업을 하던 그들은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가고 그들의 소유인 집들은 입주 허락이나 계약도 없는 입주자들이 여러 명이 들어와 살고 있었으므로 집세는 말할 것도 없고, 전기세나 물세가 체불된 채 쌓여져 갔다. 그런데 브라질은 희안한 법이 있었다. 누구든지 빈집에 들어가 살다가 2년만 지나면 집 주인이 법적으로 그들을 쫓아내는 일이 쉽지가 않고, 불법으로 들어가 살고 있는 사람의 소유가 되는 법이 있어서 소유주가 바뀔 위기에 놓였었다고 했다. 어떤 노력은 안했겠는가? 그들 부부는 벌써부터 그 집을 팔아서 브라질 선교에 투자하고자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기도하고 있었으나, 현실은 어긋난 상황으로만 치닫고 있었으니 믿음으로 참고 견디기에는 너무나 다급한 상황이였다고 했다.
 그동안 브라질에 사는 친구를 통해서 또 현지인에게 부탁하기도 하면서 집을 팔려고 백방 노력을 하던 중에 오 집사 부부가 의논하기를 그중 집 한 채를 팔아주면 쌍파울로 한국촌에 있는 집 한 채는 거져 주겠다고 어느 믿을만한 현지인에게 약속을 했다는데... 하나님은 드디어 브라질 그 사람을 통해서 해결을 해 주셨던 것이다. 약속대로 한국촌에 집 한 채는 그 현지인에게 주었고, 서원한대로 집을 판 금액은 우리 베데스타교회의 선교지인 빼르남부꼬주 꼬찌아라는 시내에서 동 떨어진 아주 열악한 곳에 위치한 부락에 교회를 지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해로울찌라도 지키라”는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간증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중심을 아시면서도 사람의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름도 분명하게 카르쳐 주셨다.
 그들 부부가 남모르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곳 저곳에 하나님의 것을 돌려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이런 동역자를 붙여주심을 감사했다. 우리부부가 기도하던 꼬찌아 교회 담임목사인 다빗목사의 아내인 사모가 10월 23일에 두 번째 아기를 출산하기 위해 드는 비용 때문에 벌써부터 남편 김 목사에게 부탁을 했었다는 것과 김 목사님이 삼분의 일은 부담했으나 나머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음을 털어 놓았다. 기도하면서 그들이 건축한 교회 사모의 일이고 보니 용기를 내어 오 목사님 부부에게 말을 건네고 기도를 부탁했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 집사의 아내인 강권사가 삼 사십분을 자동차를 운전하여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로 와주었고, “와사비”라는 일식 부페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하고 휘치라는 곳에 내려 주었다. 그곳에서 물어물어 지하철을 타고 다운타운 단다스라는 곳에서 내렸다. 여기는 이턴 백화점과 베이 백화점이 연결되어 있어서 눈요기라도 하고 좀 걸으려고 시골서 갓 올라온 촌 사람처럼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리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앉을 자리 밖에 안 보이니 역시 나이는 나이인가 보다라고 생각이 든다. 청년처럼 빠릿빠릿하게 걷고 있는 남편을 보며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감사치 않을 수가 없었다.
 한 일이라고는 팀홀톤에서 스프 하나와 커피 한 잔을 든 것이 고작이고 한 두어 시간을 걸은 것 뿐인데 벌써 오후 4시가 넘어버렸다. 저녁은 아직 이르고 해서 휜치로 와서 한국식품을 찾아 저녁으로 먹을 김밥을 사서 들고 버스를 타고 숙소 가까운 곳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빗발이 쎄게 퍼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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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24 May 2018 20:04: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4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94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나도 모르게 나온 첫 마디가 “아니 권사님은 특별 유전자를 가지셨수? 어쩜 더 젊어졌수!”하니까 사모님두요 하며 응수 한다. 대접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정말 나두 그렇게 보였으면 하는 소망 사항을 실상으로 붙잡고 싶은 나 역시 여자임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인사를 나누고 복잡한 주차장을 돌고 돌며 빠져 나와 하이웨이 길을 들어서니 가슴이 탁 트인다. 시간이 이미 5시를 눈 앞에 두고 있어서 숙소를 들리지 못하고 예약 장소인 식당으로 향했다. 브라질 꼬찌아 현지인 교회를 지은 강 권사님 남편인 오 집사님도 그리고 그들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 부부도 그곳으로 오신다 했다. 한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지만 가져온 커피랑 전해줄 책이랑 구별해서 챙기고 나니 알맞게 시간을 쓸수가 있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자리로 들어가 보니 이미 모두 도착하여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46세의 잘생긴 목사님과 아름답고 멋진 사모님은 한 쌍의 보기 좋은 그림처럼 잘 어울리는 커풀이다. 요즈음 젊은 사모님들은 너무 예쁘다며 오래 전 만났던 사람들처럼 익살섞인 대화 속에 무르익어가는 선교지에 대한 이야기하며 특히 아마존에 대한 이야기들이 밥 맛을 돋구는 듯 했다. 오 집사 부부가 담임목사님께 브라질교회 건축에 관하여 아직도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고 해서 은밀하게 선교의 크고 작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아는 우리 부부는 그들의 겸손한 마음은 알지만, 개인적으로 했다고 해도 그것은 그 교회가 한 것이므로 사실들을 목사님께 털어놓았다. 이것은 교회가 선교의 비젼과 꿈이 더 커지기를 바라는 지나가는 선교사의 작은 마음에서 였으리라...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혼 사랑임을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심부름꾼인 우리 부부를 늦게 들어온 종이라 일을 많이 주신다며 서로의 주안에서 궁색하지 않은 풍성한 대화 속에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주님을 자랑할 수가 있었다. 새벽 예배 설교를 하기로 하고 헤어져서 숙소로 돌아와 많이 먹은 댓가를 운동으로 풀어야 했으니 세상엔 값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무엇이던지 과하면 안된다고 늘 남편에게 말을 들으면서도 순종 못한 댓가를 치루면서 나의 이와 같은 영의 모습은 없는지 고민해 보게 된다. 4시 반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고 강 권사의 가이드를 받으면서 교회에 도착했다. 유난히 겨울엔 늦게까지 어두운 캐나다의 고속도로지만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은 여전히 몸속의 순환도로 처럼 숨결을 따라 더러운 탄산까스를 뽑아내주고 신선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마시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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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7 May 2018 02:33:00 +0900
(최복이 대표의 7전8기 무릎경영이야기)늦고 손해보고 되돌아가더라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경영하라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83 늦고손해.jpg
 
한국에서 잘되는 브랜드라는 자신감은 최복이 대표로 하여금 해외로 눈을 돌리게 했다. 2004년도쯤 미국 LA에 가서 월셔가에 좋은 자리를 얻어 매장을 열었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부터 식재료를 공급하는 부분까지 한국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 한국에서와 같은 맛을 내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한하나 해결책을 찾으며 드디어 오픈하는 날 <한국일보> LA지사에서 많은 기사를 내 주어 초반 출발이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들이 속출했다. 한국인을 채용하지 못해 외국인을 주방인력으로 고용했지만, 한국인들처럼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한국에선 2명이면 충분한 일들이 5~6명이 하는 것도 힘들어 하는 것이다.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문제나 주방을 운영하는 방법도 한국과는 너무 달랐다.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오픈하는 기쁨도 있었지만 무거운 마음도 있었다. 한국인 매니저에게 매장을 맡기고 한국으로 돌아온 내내 계속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마조마 했던 사건이 터졌다. ‘헬스’라는 위생 점검반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후드 배기량이 기준치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그 날로 문을 닫게 했다. 위생에 그렇게 신경을 쓰고 준비를 해서 자신이 있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후드 배기량의 문제로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후드를 고치고 재접수를 하면 검사가 나온다고 기다렸지만, 몇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6개월간 월세는 꼬박꼬박 나갔고, 언제 오픈할지 모르니 직원들도 출근해서 대기했다. 많은 손실이 생겼다. 그 후 다시 허가가 났을 때는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 무렵 최대표의 시누이 부부가 LA매장을 맡아 보고 싶다는 이야기에 걱정반 기대반 하며 맡겼지만 2년 가까이 무척이나 고생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후 시매부가 앓아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가봤다. 영어도 안되는 상태에서 법률문제, 시장보기, 매장 운영 등을 책임지다 보니 스트레스와 우울 상태에 짖눌린 것이다. 일단 시누이 부부가 운영하던 매장을 다른 적임자에게 맡기고 딸 둘만 남긴채 시누이 부부를 돌아오게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시누이 부부가 방에서 죽은채로 발견된 것이다. 그 때 온 가족이 받은 충격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최대표의 남편은 본인이 가라고 해서 여동생 부부가 그렇게 되었다며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당시 일본 매장도 오픈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라 어쩔 수 없이 일본매장을 오픈 하였다. 일본 아카사카에 일본 본사를 세우고, 이어 신주쿠, 오오쿠보에 차례로 매장을 열었다. 미국에서의 시행착오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의 직원들을 보내고 매니저 한 명만 일본의 한인교민을 세웠다. 일본 매장은 상당치 잘됐다.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는 매장으로 알려지면서 금새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3년이 지나 건물 계약을 잘못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기업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며 세웠지만 일본 진출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미국에서의 크나큰 상처와 일본에서의 아픈 경험에 ‘해외매장 진출’의 꿈을 접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 꿈을 포기 하지 않도록 하셨다. 그 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이어 말레이시아, 베트남, 북경을 다니며 준비하고 오픈했다. 특히 중국에서의 오픈도 쉽지 않았다. 중국에 온 신경을 쏟을 무렵 한국에서 터진 ‘불만○○’ 사태는 한국에서 보다 해외로 촛대를 옮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같았다. 2013년 본아이에프에서 분리된 주식회사 ‘본월드’는 국내사업과 해외사업 분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 이뤄 놓은 기업에서 편하게 대접받던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출발점에 서있는 초라함마저 들었다. 많은 직원들이 함께 하기를 회피했지만, 그래도 자원한 10여명의 직원들과 첫 예배를 드리며 많이 울었다. 하지만 얼마 후 하나님은 최대표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꿈을 꾸게 했다. 일본 사업일로 출국을 위해 인천공항을 걷다가 섬광과 같은 비젼을 보여주신 것이다. “해외사업은 인천공항 같은 역할이야. 아, 거거였구나. 맞아. 그래!” 최대표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지고 직원들을 위로 했다. “우리는 지금은 터를 닦고 있지만 머지않아 인천공항처럼 세계를 무대로 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감사함으로 나갑시다.”
 여전히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중국 재계에서 수위 안에 들던 대기업과 업무협약을 진행하다가 그들의 어이없는 요구에 사업진행을 멈췄다. 하나님은 중국에서 대기업을 등에 업고 일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모시고 직접 그 땅에서 경영을 하도록 이끄셨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여기저기 캐리어를 들고 수 없이 왕래하면서 하나님은 최대표에게 선교사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해주셨다. ‘선교사님들이 어린 자녀들 데리고 더 낲설고 더 외진 곳에 가서 자리를 잡으며 얼마나 답답하고 혼란스러우실까? 그래도 나는 선교사님에 비하면 더 좋은 환경이 아닌가’작은 아파트에서 여직원들과 함께 생활하며 최대표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캐리어 안에 몇 가지 단촐한 짐들을 보며 그 동안 살며 누린 것들이 군더더기처럼 느껴졌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야, 상해 좋다, 진자 좋아, 나 여기 온 거 축복이네, 너무 감사하다” 하나님은 최대표에게 작아짐을 통해 오히려 크고 광활한 중국을 품게 하는 꿈을 주신 것이다. 중국에서 하나님이 하나하나 계약을 넓혀 가시며 길림, 연길, 호북성, 산둥성, 장춘, 하얼빈 등 상담의 열매들이 맺혀간다고 생각될 무렵 우리들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계약들이 위법의 소지가 있음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사람들로 위법을 하면서 일을 추진할 수는 없었다.
중국에 먼저 가맹점 두 곳을 열었는데, 중국은 매장들이 1년이 지나야 가맹점 사업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그 전의 계약이 모두 무효계약이 된 셈이다. 눈을 감고 넘기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신뢰받는 기업이고 무엇보다 기도로 세워가는 기업을 그렇게 이끌 수 없었다. 늦고 더디고 손해가 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기업을 세우는 것이 맞았다. 다시 중국 전역을 다니면서 계약서를 회수했다. 헛짓 같아 보이는 일이었지만 그런 일들이 오히려 계약자들에게 신뢰를 얻게 했다. 하지만 해외 사업의 난항을 겪으며 최대표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여기서 해야 하는 게 맞나요? 어쩜 계약부터 이리 힘들까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마음이 생겼다. 그것은 첫째, 최대표 본인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하던 모습이 발견되었다. 둘째, 사랑이 없었다. 그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한국에서 잘나가는 브랜드라는 으스대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간 것이다. 셋째, 목표와 목적이 뚜렷하지 않았다. 넷째, 허세와 과시, 명예욕이 있었다. 결국 최대표는 해외사업도 다시 신앙의 터전위에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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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0 May 2018 20:48: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3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77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이젠 보통 소금이라도 담아서 써야지 별수 없군!”이라며 중얼댄 것이 바로 몇 일 전인데... 지금 내 눈 앞에 있다니... 늘 다니던 공항이고 탑승을 위해 항상 걷던 길인데 하나님은 언제 이곳에 갖다 놓게 하셨다는 말인가? 물론 기도도 하지 않고 그냥 입속으로 중얼거렸던 말의 응답이라면? 하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날마다 드리는 기도를 어찌 이루어주시지 않으시겠는가? 믿음을 키우시려고 끝없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을 경험하는 순간마다 믿음의 벽돌을 하나씩 더 올려놓게 하신 그 하나님을 어찌 찬양 안할까? 할렐루야!!!!!!
 비행기는 이미 자기의 본분을 다하며 푸른 항공을 나른다. 이제 토론토에는 무슨 일이 우리를 기다릴까? 믿음 안에서 가슴이 벅차오르며 나의 입가엔 진정한 감사의 날개가 나른다. 4시간 가량 지나서 예정시간 보다 약 10분 정도 연착으로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다. 캘거리 보다는 날씨가 조금은 따듯한 듯 했지만 하늘이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으니 회색빛 하늘 마저도 나의 밝은 마음을 조금도 흐리게 하질 못할 만큼 감사와 기쁨이 충만했다. 4년 만에 만나는 오 집사의 아내인 강 권사님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어쩌면 세월을 꺼꾸로 거슬려 올라 가는것 처럼 59세의 나이를 갖지 않은 듯 40대 초반이라 해도 안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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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0 May 2018 20:39:00 +0900
(최복이 대표의 7전8기 무릎경영이야기)본죽의 경영은 ‘기도경영’ 본죽의 가치는 ‘선한 그리스도인의 가치’-下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65 2316_4378_2228.jpg
 
하나님은 점점 기업의 체질을 바꾸셨다. 기업 운영측면에서 전에는 고객인 가맹점에서 수익이 창출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맹점, 소비자 그리고 직원들까지 모두 고객으로 보고 전체적인 시스템과 사람을 바꾸게 하셨다. 가장 가까이 있는 직원들을 중요한 동역자로 여기고 그들을 바르게 세워야만 가맹점과 가맹점의 소비자에게 하나님의 가치가 흘러간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최대표는 성경적인 6대 핵심 가치를 세웠다. ①경쟁보다는 ‘협력’ ②성공보다는 ‘사명’ ③개인보다는 ‘우리’ ④계약보다는 ‘약속’ ⑤이윤보다는 ‘가치’ ⑥빨리보다는 ‘멀리’ 하나님은 당장의 돈보다 궁극의 가치를 향해 나가는 ‘가치경영’을 이루도록 하신 것이다. 가치가 분명해지니 기도는 더욱 강렬해졌다. 매일 새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오전에는 점주 교육과 회의, 점심때는 본점 4층의 오피스텔 방 하나를 기도실로 썼다. 12시에서 2시 무렵 그곳은 최대표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거나 쓰고, 성경 쓰기나 기도편지를 쓰는 워룸(war room:원래는 ‘전시 작전상황실’이지만, 영적으로는 영적인 전투를 위한 ‘기도실’)이 되었다. 최대표의 워룸은 기업을 바르게 이끌어가는 ‘경영전략기획실’이나 다름없었다. 그 사이 기업의 직원들이 변화되었다. 매장 관리자였던 SM(Store Manager)의 역할이 변화됐다.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사장들에게 싫은 소리만 하고, 매출만 치근대는 역할이 아닌, 사장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그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매장의 활성화를 위한 ‘가맹점 행복 도우미’ 역할을 하도록 하니, 일이 즐거워지면서 각 매장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배송기사들도 예우를 해 주기 시작했다. 그들의 일에 어울리는 TM(Transport Manager)이라는 직급을 붙여주고 그들의 명찰을 달아드리고 회식 자리도 만들고 교육하며, 새벽 4시 직원들과 커피를 가지고 대접하고, 겨울에는 텀블러를 제작해서 선물했다. 배송 중 다치면 병원비도 지불하며 한 가족처럼 모셨다. 결국 하나님의 경영 방법은 옳았다.“선한 가치관, 탁월한 역량, 범사에 감사” 아침마다 외치는 본죽인의 상이자 구호이다. 본죽인으로 사명과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각 매장에서 일하는 주방 직원들의 호칭까지도 ‘주임님, 대리님, 과장님’ 부르며 존중해 주었다. 하나님은 최대표를 통해 크리스천의 선한 영향력이 무엇인지 기업을 통해 보이셨다. 그 은혜로 2014년 고용노동부에서 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대상을 수상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렇게 최대표의 손을 잡고 해외 시장으로 이끄셨다. 일본, 중국, 미국에서 ‘본죽&비빔밥’은 외국인들에게도 한식 No. 1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으며 인정받게 하셨고, 국내에서도 빛나게 하시면서 ‘본죽&비빔밥’은 글로벌 브랜드가 된 것이다.]]>
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3 May 2018 22:45: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2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58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터어키” 올해는 터어키고기 한 점 못 먹겠다는 작은 불평도 그냥 넘기지 않으신 하나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던 불평에도 응답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의 작은 불만에도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케 하시는 응답에 가슴이 뭉클했다. 훌륭한 만찬에 설탕처럼 단 대화가 계속되었고, 딸을 의대에 보내는 의료선교의 꿈을 품은 김 목사님 가족의 설래임과 남편 김 목사님의 브라질 선교의 긴 여정에 대한 크고 작은 이야기들 나누며 우리 모두는 웃음이 멎을 줄을 몰랐다. 몸에 앤돌핀이 넘쳐나는 듯 주안에서 우리는 넘 기뻤다. 김 목사님이 우리와 함께 유럽여행 한 번 하고 싶다면서 우리부부의 계획은 어떤지 알고 싶다고 물어왔다. 우리 부부는 고맙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일단은 꿈을 접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김 목사님은 우리부부가 사는 캘거리 에어카나다에서 11월부터 근무하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에드먼톤 공항에서 캘거리 공항으로 옮겨온 것이 왜? 그렇게 기쁜지 펄쩍 뛰었다.
 김 목사님은 자신이 함께 가면 우리부부의 비행기표까지 무료로 갈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부부가 이곳 캘거리에 있는 동안인 11월 초쯤해서 유럽 여행을 같이 갈수 있도록 시간을 내겠다고 했다. 아니 이게 웬 은혜란 말인가? 오래전부터 꿈은 꾸워왔지만 실현할 수 없었던 유럽 여행이 실현되다니... 하나님께서 내년이면 우리부부가 선교의 길을 걸어온 20년의 긴세월 속에 그냥 마음에 품기만 했던 꿈일 뿐, 기도는 해본 기억이 없는데.... 정말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찬송이 흘러 나왔다. 생각만 해도, 마음에 품기만 해도 꿈이 현실로 이루게 하시다니... 지난 날의 걸음마다 싸이고 싸인 이런 유의 간증속에서 한 없이 들려주시는 한마디는 “사랑한다 아무개야”라는 말과 욕심 버리고 포기하면 꼭 이루어 주시면서 욕심 버리는 연습에 익숙하려는 다짐을 하게 하신다. 얼마나 영혼을 사랑하시는지 마음을 열어 보여 주심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믿음이 약해지는 날 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토론토에 사는 오 집사님 부부를 만나 브라질 선교에 동역해주기를 부탁했드니 브라질에 교회당을 건축했다. 그래서 건축한 브라질교회 교인들의 마음을 전하고 또 그가 다니는 교회도 방문하여 말씀도 전하게 되어 우리부부는 토론토로 가기 위해 캘거리 비행장에 도착했다. 수속을 마치고 59번 탑승구를 찾아 걸어가다가 길 중간에 간이 상점에서 노오란 뚜껑의 작고 예쁜 항아리 모형의 소금 케이스가 눈에 띄었다. 잠시 후에 생각이 났는데 이것은 민정집사가 준 바로 그 소금통이였다. 나는 캘거리 YMCA에서 운동을 하고 싸우나에 들어갈 때 소금을 온몸에 바르기도 하고, 얼굴에 마사지를 하고 머릿속에도 바르면서 내가 사용하던 그 소금이 바닥이 보이고 다 떨어져 가기 때문에 혼자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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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3 May 2018 22:31:00 +0900
(최복이 대표의 7전8기 무릎경영이야기)본죽의 경영은 ‘기도경영’ 본죽의 가치는 ‘선한 그리스도인의 가치’-上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44 본죽의경영.jpg
 
본죽 매장이 500개 가까이 늘어났을 때에 최복이 대표의 건강이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직접 주도했던 가맹점 오픈 일정도 미루게 될 정도였다. 최대표는 기도했다. ‘아, 이제 혼자 하면 안되는 구나. 이러다가 못 일어나면 인수인계 조차 불가능하겠어. 직원들에게 위임할 때가 왔어’ 그렇게 본브랜드연구소에서 본교육센터까지 확장하고 교육, 메뉴 만들기, 오픈 지도하기 등 역할을 분담하고 오픈교육, 관리교육, 재교육까지 일을 분담하니 회사는 1,000억 대 회사로 성장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매장을 열겠다고 몰려들수록 최대표의 마음의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그 돈이 어떤 돈인가?’ 눈물 어린 사연들이 묻어난 돈으로 시작하는 소자본 생계형 창업이니 절대 잘못되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이 최대표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에 너무 연연하다 보면, 돈 버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 망하게 된다. 더구나 슬로푸드인 죽은 은근하고 뭉근하게 천천히 끓여야 하는 인내의 음식이 아닌가? 저 멀리 달아나는 돈을 쫒기보다 손님을 중심으로 최대한 잘 섬겨드리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본죽 가맹점 점주 가운데 기독교인은 30~40%에 지나지 않지만, 최대표는 본죽 1,500여 가맹점 사장님들에게 기독교적인 선한 가치인 사랑과 섬김 그리고 자기희생을 이야기 했다. 또 그들을 위한 기도문을 보냈다. 그러자 그 아름다운 의미를 아는 가맹점 사장들에게 공감을 이루었다. 다른 기업의 대표들 같았으면, 가맹점이 많아지는 것이 내심 즐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대표는 달랐다. 매장이 700개를 넘자 너무 가깝게 차려진다 싶을 정도로 가맹점들이 촘촘히 들어섰다. 법적으로 문제 없는 거리이기는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매출이 떨어질까 하는 사장님들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눈에 보인 것이다. 직원들과 심각하게 토론도 나눴다. 매장간 거리에 아직 큰 문제가 없고, 기업이 성장하다 보면 모든 가맹점을 100% 만족시킬 수 없다는 논리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기도할 때 마다 모든 매장의 사장님들의 얼굴들과 각자의 사정이 마음에 걸렸다. 그 와중에 2010년에는 상복이 터졌다. 지식경제부장관상(2007), 중소기업청장상(2008), 대한민국 CEO대상 고객만족 경영부분 수상(2009), 지속가능경영대상 중소기업대상(2010), 한국프랜차이즈대상 대통령상(2010)을 수상하며 연일 언론의 관심과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잘나갈 때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매장이 많아지니 가맹점주들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충수를 두기 시작했다. 최대표는 미처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1년 11월 소비자 고발성 프로그램인 ‘불만○○’을 통해서 두 개의 영업점에서 일어난 비위생적인 실태가 폭로되었다. 매출은 반토막 나고, 기업의 신뢰와 쌓은 노력들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최대표는 잠을 설치면서 밤새도록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전국 가맹점주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모두들 본사 탓으로 돌렸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상황을 뚫고 나갈 방법을 깨우쳐주셨다. “가맹점 오픈 금지, 리뉴얼 중지 그리고 물건값과 물류비 할인”이었다. 기업으로서는 뼈를 깍아내는 아픔이지만, 상호 신뢰가 회복되면서 상황이 수습되었다. 그러다가 2015년 ‘추적 ○○’의 보도로 또 한 번 열병을 앓았다. 한 임원이 퇴직 후 ‘본&○○’ 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우리의 노하우와 가맹점을 상대로 영업하는 것에 경고를 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번에는 최대표 부부가 악덕업주처럼 왜곡되어 방송이 된 것이다. 사실무근, 부풀림, 이미지 추락, 불이익 속에서 충분히 법적인 대응을 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관련자들을 만나 선대하고 품게 하셨다. 이 일은 결국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어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기업의 이미지를 더욱 신뢰가 가게 만들었다. 2016년에는 9년 연속 소비자웰빙지수 1위 기업과 함께 소비자평판지수 1위 기업이 된 것이다. 기업이 기틀을 잡아갈 무렵 최대표의 남편은 기업 운영의 일선에서 물러가고 최대표에게 대표직이 위임되었다. 최대표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하지만 최대표는 하나님께서 기업을 맡기기로 작정하고 항상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기도하고 메모했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요? 이 일은 어떻게 진행할까요?” 하나님은 그 때마다 그 일들이 풀어지도록 열어주셨다.]]>
기자 | 오피니언>특별> Wed, 25 Apr 2018 23:20:00 +0900
(만성훈장의 사자성어)입이저심:入耳著心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38 z6ncjmYl7QHFNPTD9jKPc2Pr7s2I53IM.jpg
 
입이저심(入耳著心) : 귀로 들어온 것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붙힌다는 뜻으로, 남에게 들은 내용을 마음속에 간직하여 잊지 않을때 쓰는 말이다. 이번 한국방문에서는 오랜세월 연락이 두절되었던 친구와 재회를 하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었다. 내가 기억하는 젊은 시절의 모습위에 초로의 모습이 포개지니 끊어진 세월이 많이 길었음을 실감한다. 갓 결혼하여 꽃다운 모습이 연상되던 아내의 최근 사진을 보여줄 때는, 오랜 삶의 애환이 얼굴에 보이는듯 하여 운우지정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아내를 위하는 삶이 되자고 권하였더 입이저심으로 받겠다고 한다. 권면이나, 충고를 받고서 긍정적으로 대답할때 “알겠어” 또는 “알았다니깐” 처럼 가볍게 응답하는 것 보다, 왠지, 진지하게 받아 들이는 응대의 언어가 고마워지지 않겠는가? 순자의 권학편에 이렇게 가르친다. “귀로 들어가서 입으로 나오는 것이 소인의 학문이다. 입과 귀 사이는 네 치일 뿐이니 어찌 일곱 자의 몸에 채우겠는가”, “그러나,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으면 그대로 마음에 삭히나니 신체에 정착하여 인격을 높이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느니라” 무슨 말인가? 도량이 좁은 사람은, 들은대로 즉시 말할뿐 자신을 수양하는 양식으로 두지 않으나, 학식이 높고 어진 사람은 들은대로 마음에 담아서 자신의 학덕을 높히고 행동으로 나타낸다는 말이다. 논어에 기록된 술이 제32장을 보면,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학문이라면 내가 남만 못하겠는가? 그러나 군자답게 몸소 실천하는 데는 내가 아직 충분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느니라. 학문은 배워서 입으로만 하는게 아니라 몸으로 실천해야 진정한 배움인 것이니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쉼 없이 자신을 향상시켜라.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이 되어라. 君子之學必日新(군자의 학문은 반드시 하루를 새롭게 한다),日新者日進也(하루를 새롭게 함은 날마다 진보하는 것이다), 不日新者必日退(날마다 진보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날마다 퇴보한다), 未有不進而不退者(진보하지도 않고 퇴보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唯聖人之道無所進退(오직 성인의 도만은 진보도 퇴보도 없다), 以其所造者極也(이는 도가 극치에 있기 때문이다)”
  만성훈장
[출처:www.koreabrazil.net]]]>
기자 | 오피니언>특별> Wed, 25 Apr 2018 23:11: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1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36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매년 찾아오는 추수 감사절이지만 어쩌다 아주 드물게 캐나다에서 보내게 될 때가 있다. 그럴때면 카나다 캘거리에 사는 막내 아들이 터키를 구어 우리 부부를 초청해 주었는데... 올해는 우리 부부가 브라질에 있는 동안에, 작은 아들이 추수 감사절에 이미 친구 집에 초청을 받아 응하기로 했다는데 우리 부부가 캘거리에 연락 없이 도착 한 것이다. 약속을 물리고 부모와 함께 하지 못하는 마음을 헤아려 편안하게 다녀오라 했지만 한편 마음 속으로는 은근히 속이 상했다. “여보 올해는 터키도 한 점 못 먹겠네요”터기는 별로 즐기지도 않으면서 한 말속에 숨어있는 섭섭한 마음을 누가 알겠는가?
 저녁 녘에 뜨리힐에서 유학생 목회를 하는 김 목사님 사모님의 전화를 받았다. 내일 캘거리에 있는 딸네 집에 오는데 우리 부부를 저녁초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우리집에서 저녁을 먹자 하고, 사모님은 궂이 오라하고 싱갱이 끝에 우리가 김 목사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을 뿐 아니라 브라질에도 한 번 왔다 간터라 함께할 시간도 있었을 뿐 아니라 꾸밈없는 김 목사님 부부의 환한 마음이 맑게 비추일 때마다 혈육과 같이 느껴지곤 했다. 김 목사님은 Air Canada에서 일을 하는 연고로 우리부부가 선교지에 갈 때마다 비행기 표를 살때 활인하는 혜택을 주어 선교의 동역하는 목사님 부부다. 우리 부부를 부모와 같이 섬겨주며 기쁨으로 선교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다 했다. 김 목사님의 아버님도 목사님이시며, 부부가 맑고 착한 냄새가 나는 분들이다. 그밤이 지나고 남편 김 목사님은 찾아갈 김 목사님의 집 주소를 가지고 혼자서 미리 가는 길을 찾아두었음을 후에야 알았다. 어쩐지 당일에 벌써 가 보았던 길처럼 익숙하게 집을 찾아 내는 것이 이상했다 했더니....  집 앞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던 김 목사님의 환영을 받으면서 삼 남매와 사모님과 서로 껴안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집에 편리하게 꾸며진 부엌에는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
기자 | 오피니언>특별> Wed, 25 Apr 2018 23:06:00 +0900
(최복이 대표의 7전8기 무릎경영이야기)하나님이 붙여주신 이름 ‘본(本)죽’ 허름한 골목에 간판을 걸다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23 본월드미션4.jpg
 
고난이 어째서 축복인지 알아가자 최복이 대표의 마음에 다시금 꿈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 꿈이 있어야 해......’ 사실 꿈이기보다는 간절함에 가까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70만원 받던 요리학원 일 자리조차 사라진 상황에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마음만 간절했다. 어느 날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조그만 가게 하나를 하면 좋겠어. 그러면 당신이 사업이나 다른 일로 다시 일어나는 동안 가족이 먹고 살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러자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 죽집 해 볼래?” 죽집이라는 말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소자본에 열정만 있다면 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죽집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시장 모퉁이 죽집, 오랜 전통이 있는 죽집, 여의도와 충무로의 죽집.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여기저기 앉아 죽을 먹고 있었다. ‘아니 이런 고급 손님들이 끼니 대신 죽을 사 먹는 구나’ 그리고는 어디선지 모를 근거없는 자신감에 회심의 미소를 띠며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그럼 죽집 한번 해 볼래” 최대표는 가장 먼저 친정엄마에게 달려갔다. 어려서 잣죽, 깨죽 등을 쑤어 할어버지께 드리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의 비법은 단 한마디 “죽은 가마솥에 쒀야 제맛이지” 막막했다. 손바닥 만한 주방에 가마솥을 걸기는 무리였다. 아득한 마음에 지인의 소개로 종로구청 앞 ‘보름달’이라는 전통찻집을 찾아갔다. 그러고 석 달 가까이 설거지와 서빙을 하면서 죽 쑤는 법을 배웠다. 여기저기 데고 베이기 일쑤였다. 하지만 전통죽의 기본은 배웠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먹고 나면 허전한 죽이 아니라 한 끼 식사가 될 만큼 든든한 죽, 환자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보양죽, 다이어트와 여성을 위한 미용죽, 아기들에게도 마음 놓고 먹일 수 있는 죽. 최대표에게 죽은 한 끼 대용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한 끼 이상이었다. 현재 <본죽>에서 인기가 있는 해물죽, 김치죽, 호박죽 등은 그냥 만들진 것이 아니다.
 2002년 2월 무렵 경동시장을 돌아다니며 좋은 늙은 호박을 골랐다. 4월쯤 되니까 늙은 호박 한 통에 5~10만 원에 약호박처럼 팔렸다. 궁리 끝에 늙은 호박 대신 단호박으로 대처해 보고 여러 가지 요리법을 시도했다. 숱하게 맛보고 다시 또 쑤기를 반복한 끝에 누구에게도 내 놓아도 자신 있는 마음에 구역예배를 드린 후 어머님과 구역식구들에게 첫선을 보였다. 그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런 죽은 처음 먹어본다. 너무 맛있어서 자꾸 손이 간다”  그렇게 최대표는 매일 죽을 실습하고 가족은 평가단이 되어 메뉴가 하나씩 구체적인 레시피를 입기 시작했다. 최대표의 주방은 작은 R&D센타(research and development 연구개발센터)가 되어갔다. 그렇게 작은 주방에서 지금 <본죽>의 중심 메뉴인 15개의 죽들이 탄생했다. 현재는 국내 유명 세프를 모시고 본브랜드연구소를 통해 더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죽들이 개발되지만, 초창기 작은 주방의 15가지 메뉴가 현재 본죽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작은 주방의 기적. 하지만 그것은 사실 말씀의 기적이다. 최대표는 만드는 내내 최대표의 입에 말씀이 떠나지 않게 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메뉴와 맛은 나왔는데 이제 가게 이름이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기도 중에 주님께서 본(本) 이라는 단어를 보여주셨다. ‘죽의 기본, 건강의 기본’이라는 의미나 ‘본래의 맛을 고집하는 원조나 처음’ ‘오리지널’ 같은 의미가 들었다. 주님은 본죽이 지켜야 할 기업 정신 ‘건강을 채우는 죽그릇’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최대표도 나중에 알게 됐지만 본이라는 말은 국제적으로도 좋은 의미가 많았다. 이태리어나 불어로는 ‘좋다’ 라는 뜻이고, 비슷한 영어의 발음의 본(bone뼈대), 본(born탄생) 이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여기에는 복음적인 의미가 숨어 있었다. 어느날 한 크리스챤 사장님이 본(本)의 숨은 뜻을 풀어주면서 “십자가에 사람 인(人)자가 있고, 그 밑에 십자가(十)자가 하나 더 있는 형상이네요. 큰 십자가 밑에 사람이 작은 십자가를 지는 꼴(本)이니 본죽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하나님께 받은 이름을 건 본죽 1호점인 이화동 사거리 후미진 골목 허름한 38평 2층 상가였다. 하지만 그곳은 뭘 해도 장사가 안 되는 자리로 유명했다. 지나가는 동네 할머니가 한창 가게를 열 준비를 하는 우리에게 “여기서 장사하다 망한집이 벌써 세 번째여. 으슥하니까 그냥 술집이나 혀” “새댁이 죽집 할거라고? 아픈 사람이나 죽 먹지 누가 죽을 사 먹어? 여기저기 식당마다 죽을 끓여주는데” 현실은 그랬다. 하루에 열 그릇 안팎으로 팔리는 상황이 되자 손님 한 사람이 예수님 같았다. 맨발로 뛰어가 손님을 맞이하며 온갖 “손님 어떻게 해드릴까요? 간을 빼드릴까요? 소금을 더 넣을까요? 누가 드실건가요?” 절박하지만 사실 이것은 훗날 본죽 경영의 중요한 마인드가 되었다. 아침 6시 출근, 7시 전단지, 돌아와 청소며 재료 준비, 점심 때 손님 받고, 오후엔 또 동네스티커와 전단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간절히 주는 전단지가 외면되어 버려지면 그냥 밟혀지지 않도록 다시 줍고 닦아 또 돌리고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죽집이라고 허름하게 하지 않았다. 전문 카페이상의 인테리어에 양질의 재료와 정성에 어울리는 값. 그리고 돈이 아깝지 않을 양과 맛을 고수해 나가니 점점 입소문이 나서 50그릇, 100그릇이 되었다. 점점 몰려드는 손님에 요리의 기본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상황 매뉴얼도 작성했다. 그러나 모든 상황마다 주님께 기도하며 사업을 이끌어 나가자 개업한지 7개월이 지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송이 되었다. 방송의 도화선을 타고 얼떨결에 가맹점 사업이 시작되었고, 가맹점을 하겠다고 오는 분들에게 최소한의 가맹비만 받고 노하우를 전수하니 오픈하는 매장마다 다 대박을 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마다 하나님은 최대표에게 기도하게 하셨다. 그 때 마다 하나님은 땅을 흔들어 기반을 튼튼하게 하시는 분이셨다.]]>
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9 Apr 2018 21:27:00 +0900
(만성훈장의 사자성어) 차시환혼:借尸還魂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17 z6ncjmYl7QHFNPTD9jKPc2Pr7s2I53IM.jpg
 
차시환혼(借尸還魂) : 죽은 영혼이 다른 시체를 빌려 부활하다는 뜻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하여 자신의 의도를 실현함을 의미한다.
 옛날에 이현이라는 도사가 있었다. 그는 육체를 떠나 신선들의 하늘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는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제자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나의 육신을 이곳에 남겨두겠으니, 네가 잘 지키고 있어야 짐승의 먹이가 되지 않는다. 나는 7일 이내에 돌아올 것인데, 만일 그 때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미 신선이 되었을 것이다. 그 때는 내 시신을 화장하도록 해라.” 스승의 부탁을 받은 제자는 이현의 육신을 잘 지키고 있었는데, 6일째 되는 날 그는 어머니가 병으로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게 된다. 제자는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려면 스승의 영혼이 돌아올 곳을 잃게 될 것이고, 스승의 시신을 지키려면 효도를 다하지 못하게 될 것이니 어머니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이현의 제자가 양쪽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측근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설득을 하였다. “스승과 제자의 의와 부모와의 정을 둘 다 지키지 못할 때는, 부모와의 정을 먼저 지켜야 합니다. 하물며 그대의 스승은 이미 6일이 지났지만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신선이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는 그의 충고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스승의 시신을 화장하였다. 7일이 되어 돌아온 이현의 영혼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자신이 들어갈 육신이 없어서 환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황급히 대책을 찾다가 마침 금방 죽은 거지의 시신이 길 옆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영혼은 이현이지만 몸은 거지가 된 것이다. 수려한 미장부였던 이현이 영락없이 봉두난발을 한 거지 모습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영혼이 구천을 떠돌지 않고 새 생명으로 거듭 태어났다는데서 차시환혼의 전설이 되었다.
 회사가 부도나거나 조직이 와해될 때 어떻게 후사를 처리 하느냐 하는 반응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주저앉아 지나간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만 흘리는 유형이고, 둘째는 툴툴 털고 다른 조직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유형이다. 대기업 임원을 지내다가 어느 호텔 웨이터로 취직하여 재기에 성공한 분은 차시환혼의 전략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다.
 
만성훈장
[출처:www.koreabraz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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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9 Apr 2018 21:14: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알데이아 교회-3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15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카메라를 든 신춘인 집사님의 바쁜 샷다를 누르는 소리도 즐겁게만 들리고, 사영리 전도지를 들고 거리를 나선 청년들의 가정방문 중에 있었던 작은 이야기들이 쌓여가는 동안 선교의 일정은 끝났지만 금번 우리부부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소리는 그동안 복음을 위해 순종한 이들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회는 크게 부흥한 것은 아니라도 알차게 영적으로 부흥하고 있었다. 주일예배가 끝나고 핼렌이라는 성도가 달려왔다. 남편 김목사에게 하는 말이 자신은 가끔 교회를 나왔었다고 했다. 오늘 설교를 듣고 확실하게 예수를 영접했다며 그 기뻐하는 모습이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건가? 그녀는 기쁨을 이기지 못해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남편 앞, 옆을 차지하고 불쑥 나온 배도 자랑스럽게 여기며 만면의 웃음이 가득하다. 제발 이 구원의 감격이 변질되지 않기를 비는 마음이다. 이 기쁨과 감동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한 젊은 부부가 다가 왔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단다. 이제부터 자신들이 교회봉사를 더욱 열심히 하겠다며 주의 종 앞에 궂이 나와 결심을 이야기 함은 성령님이 시키심이 아니겠는가? 할렐루야!!! 주님이 브라질에 세우신 교회마다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면서 브라질에 많이 약해있던 보수 장로교회가 많은 교회들을 통해 살아나게 하셨음을 의심치 않으며 숙소로 향했다. 쌍파울 베데스타교회의 현 담임목사님과 온 교우들의 후방의 기도가 선교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실감을 하면서 역시 선교는 기도의 무릎의 열매임을 확신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당뇨로 20년이 넘게 병마와 싸우는 나로써는 후방의 기도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음을 안다. 섭씨 40도가 넘는 저지대인 브라질 동북부 빠라이바주 빠또스 브라질 장로교회의 담임인 오스말 목사가 1개월 반 동안 병원에 입원을 하게되어 남편 김 목사님이 한 달 반 동안 그 브라질 교회에서 목회를 당당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에 주님의 도우심을 생각하게 된다. 그곳에서 4번의 식사대접을 제외하고는 거의 라면과 현미밥 지은 것으로 가지고 간 밑반찬에 의지 해야 하는 당뇨환자가 건강하게 45일 간의 사역을 담당했음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후방의 기도의 덕이 아니라고 할건가? 현장의 수많은 사연으로 울고 웃는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같은 마음으로 그들의 마음이 되어지는 순간마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 모든 순간마다 주님의 마음과 눈이 되게 하신 성령님의 은혜는 슬플땐 슬픈대로, 기쁠땐 기쁜대로 행복했다면? 은혜가 아닌가? 병이 결코 나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심도 후방의 기도가 아니겠는가? 특별히 남편 김목사님도 설교할 때 자신도 모르게 포어는 물론 누군가가 자신과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며 어디서 오는 힘이 주먹에 쥐어지고 하나님의 돕고 계심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동안 나 자신도 전과 같지 않게 성령의 역사하심을 보며 많은 은혜를 받았을 뿐 아니라 선교지에 오기전 3주를 내리 감기몸살로 74년만에 얼마나 앓았는지 처음 병원신세를 지고 쏘민과 닝겔로도 다 추스리지 못한체 떠나 왔는데, 닝겔이나 쏘민도 없는 이곳에서 오히려 치유되어 쌍파울에 돌아가다니... 주님께서 신약 구약에 성령의 보혈주사를 맞혀 주셨네. 할렐루야! 영육의 치료를 받고 돌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맞아 지난세월, 나는 형편 없었지만 주께 몸들이게 하신 봉사가 오늘까지 주신 건강의 비결이라고....” 봉사할 때 건강주시고, 바치면 더 부요케 하시고, 남을 풍요롭게 하는 자를 풍요롭게 하시는 주님이시라고 그렇게 가르치고도 또 깜빡했다니.... 남편과 함께 걸어온 세월! 주님이 주신 선교사의 길! 주님이 구름을 멈추시면 그곳에 장막을 치고, 주님이 구름을 움직이게 하시면 장막을 걷고 힘차게 걸어 가리라.... 26일 삐라시까바 3주년 창립 기념 주일에 남편 김우선 목사님의 설교를 위해 계속 기도하며 쌍파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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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9 Apr 2018 21:11:00 +0900
(최복이 대표의 7전8기 무릎경영이야기)눈물을 진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광야 수업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08 본사랑.jpg
 
기차 안에서 “주님, 저에게 재정을 주세요. 우리가 잘되면 나눠 주고 꾸어 주고 베풀며 살겠습니다”하던 눈물의 기도가 응답되었던 것일까? 주님은 예상치 못한 때와 방법으로 응답해 주셨다. 하는 일마다 마이너스의 손을 증명하던 그녀의 남편(김철호 본죽 회장)이 드디어 마이더스의 손으로 변신하게 된 때가 찾아온 것이다. 30대 초반 무렵 순식물성 수입화장품 대리점 ‘바디&뷰티하우스’가 큰 히트를 친 것이다. 대리점을 400개나 거느린 촉망받는 기업인으로 변모하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강남의 멋진 사무실과 좋은 집 그리고 카폰이 달린 고급 자가용까지 굴리게 되니 ‘잘되면 나눠 주고 꾸어주고 베풀며 살겠습니다’하며 서원하던 기도를 잊어버린 것이다. 잘살게 되었는데도 만족 못하고 더 큰 부자가 되려는 욕심은 갑작스러운 IMF에 순식간 꺼져버린 물거품이 된 것이다. 남편이 망하자 그녀도 덩달아 죄인이 되었다. ‘세금 체납자, 신용불량자의 아내, 많은 대리점을 망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붉은 딱지가 최복이 대표의 마음을 짖눌렀다. 특히 연쇄 부도의 일파만파로 거래처 직원들과 그 가정들까지 고통을 당하게 한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욕설과 원망의 쓰나미 뒤에 불면증과 실어증이 찾아왔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두려웠고 날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으며, ‘동반자살’ 하는 사람들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노숙인 행색으로 도망 다니기 바빴다. 하지만 무책임하기는 싫었다. 그렇게 4년 가까이 남은 빚을 꾸준히 갚아나간 것이다. 하지만 최복이 대표의 심리는 더욱 불안해졌다. 결국 최 대표의 남편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녀를 집사님 차에 태우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떨어뜨렸다. 의사들이 찾아와 이것저것 묻더니 갑자기 두 팔과 발을 침대에 묶고는 어디론가 옮겨갔다. 그곳은 바로 ‘정신병동’이었던 것이다. 병실에서는 먹고, 자고, 목욕하는 세 가지 일상이 반복되었다. 며칠이 지난 저녁부터 간호사가 불을 끄고 나가면 그녀는 수면제를 먹는 대신 기도했다. “주님, 애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저 이제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서 예배드리게 해 주세요” 한 달여의 정신병동 입원 치료는 굉장히 큰 상처이자 낙인효과였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돼버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수면제만 의지하며 살 수 없었다. “하나님, 오늘은 제가 약 안먹고 자볼께요” 몇 번을 다짐해도 여지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모습 속에 사실 주님은 더 가까이하셨다. 그렇게 수면제도 점점 줄어들게 하시고 단잠도 주시었다. 돌아보면 최복이 대표에게 그 시간들과 환경은 최 대표를 새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작업대였다. 하나님은 그녀의 자아를 깎아내고 새롭게 빚어가고 계신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조심스레 물었다. “여보, 우리 호떡 장사해볼래? 내가 종로에서 기술도 사사하고 자리도 좀 알아봤는데 부지런하면 괜찮겠어.” 처음엔 너무 부끄럽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숙대 근처 건물 앞에 포장마차를 갖다 놓고 준비 완료했지만, 남편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3, 4일나 걸릴 정도였다. 최 대표도 호떡장수의 아내로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루 이틀 손님들을 대하며 부끄러워할 시간도 사라지고, 단 돈 500원짜리 호떡이라도 어떻게 손님들에게 다르게 보일 수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더 큰 왕호떡, 단 것을 싫어하는 손님들을 위한 야채호떡, 식용유 대신 더 고소한 식감의 마가린까지 점점 그녀의 생업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날 새벽에 일어나 준비한 반죽을 포장마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포장마차가 보이지 않았다. 노점 단속반에게 빼앗긴 것이다. 이후에도 용업 업체가 갑자기 들이닥쳐 포장마차를 빼앗기 일쑤였다. 그렇게 매일 쫓고 쫓기는 시간이 이어질 무렵, 그녀의 가정이 어려웠던 시절 기도와 권면으로 큰 힘이 되었던 김영희 구역장님이 위암 말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유로울 때 은혜 갚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교차되었다. 최 대표가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김 집사님 꼭 만나고 싶어요. 그리고 100만 원 정도 드리고 싶어요” 짜내고 쪼개 기름 묻은 돈을 모아 한 달 여 뒤에 찾아간 병실에서 가쁜 숨을 쉬며 고통스러워하는 김 집사님의 손을 잡고 울며 서로를 위해 기도했다. 김 집사님은 평안한 얼굴로 그녀를 축복하며 말했다. “지혜 엄마 힘내! 다 잘 될 거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그리고 몇 달 뒤 천국으로 옮겨 가셨다.
 1년의 호떡장사도 접어야 할 무렵. 남편의 친구 한 분이 종로에 외식컨설팅 회사를 차리면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최 대표가 하는 일은 주방보조였다. 말이 ‘최 대리’지 설거지, 청소, 냉장고 정리, 행주 삶기, 재료 사 오기 등을 하느라 존재감도 사라졌다. 또다시 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교회에 가도 목사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내게 하나님이 계시기는 할까?’ 그 무렵 송봉모 예수회 신부님이 쓴 “고통 그 인간적인 것”, “광야에 선 인간”이라는 두 권의 책을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책을 통해 ‘인생의 광야는 기회의 시험장이고 하나님이 숨겨 둔 보물을 찾는 보물찾기 놀이터’라는 사실을 알았다. 진주조개에서 진주가 만들어지는 진리처럼 상처는 최 대표 안에서 하나씩 하나씩 진주 알갱이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당시 최 대표는 아침마다 ARS 전화를 통해 듣는 조용기 목사님의 ‘3분 설교’가 큰 힘이 되었고, 조용기 목사님의 책 “4차원의 영성”을 읽으며 묵상하게 된 민수기 14장 28절의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시행하리니”라는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부정적이고 불평불만 원망과 걱정의 언어들을 입에서 걷어내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복을 주시기 전에 이 두 가지 훈련을 통해 ‘고난의 축복’과 ‘언어의 축복’을 준비하게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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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Fri, 13 Apr 2018 19:59:00 +0900
(만성훈장의 사자성어)구십춘광:九十春光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100 z6ncjmYl7QHFNPTD9jKPc2Pr7s2I53IM.jpg
 
구십춘광(九十春光) : 글자를 풀이하면, “90일 동안의 봄빛”이란 뜻으로, 석달 동안의 화창한 봄 날씨를 의미한다.
 그런데 누군가 구십춘광의 고사성어 풀이를 “노인의 마음이 청년같이 젊다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써 놓으니 여기저기서 이를 긁어 자기의 블로그에 부쳐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더 확대된 것 같다. 청춘을 달리 말하면 사계여춘(四季如春)이라고도 하는데, 이처럼 청춘과 같은 석달동안의 봄날을 헤아리며 아쉽고 애잔한 마음에서 유래된 성어가 구십춘광인 것이지, 항상 “청년과 같은 마음을 가진 노인”이라고 확대 해석하는건 좀 오바하는 것 같다.
 추운 겨울을 지나 새로운 봄을 맞으면서 피어난 꽃이 화창한 세상을 연출하는 기간은 대략 석달 정도 된다. 그런데 왜 “석달 춘광”이라 하지 않고 굳이 날짜를 써서 구십춘광이라고 하였을까? 내 나름대로 고심을 좀 해보다가 아래와 같은 의견을 개진하기에 이르렀다. 아홉 구(九)자는 숫자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이다. 따라서 계절의 왕인 봄에다 최고의 수를 부여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고, 열 십(十)은 완전수 즉, 완전히 갖추어진 숫자라고 한다.가로로 긋는 일(一)은 동에서 서로 그어진 선이며, 뚫을 곤(ㅣ)은 북에서 남으로 내려 그은 선이기에 네방향과 중앙을 모두 갖추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자에서의 숫자 십은 완성수로 여기는 것이며, 오직 신에게 사용되는 숫자일뿐 우리 인간에게는 사용되지 않는다. 바둑이나 무술의 경지에서 아무리 뛰어 나다 해도 9단일뿐 그 이상은 없지 않겠나. 그리하여 최고의 수와 완전수를 써서 구십이라는 말을 날짜라는 숫자에 조화시킴으로써 봄을 계절의 최상격으로 올려놓고 표현한것 아닌가라는 옛 성현들의 지혜를 간파하게 된다. 맨끝에 빛 광(光)자는 직접표현이나 의미상으로 필요가 없는, “꿔다 논 보리자루”라고 생각 할지도 모르나, 어미에 광자가 들어가니 웬지 문자에 광이 나는것 같고... 봄이 오니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 가득하여 두루 다니다 보니 벌써 봄이 떠나려는 4월 중순이 되었다. 봄을 보낼 때는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무상감이 찾아 오게 되나니..... 구십춘광이란 말이 그리 즐거운 말이 아닌갑다.  
  만성훈장
[출처:www.koreabrazil.net]]]>
기자 | 오피니언>특별> Fri, 13 Apr 2018 19:44: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알데이아 교회-2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099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베데스다교회의 선교대원들은 거리 전도와 가가호호를 찾아 다니며 아이들을 내일 아침부터 시작하는 성경학교에 초청하였고, 불신자를 위해 매일 저녁에 있을 전도집회에 어른들을 초청하였다. 초청을 받은 어린이들로 인해 성경학교가 시작되는 아침 9시 전부터 벌써 예배당은 붐볐다. 참석할 어린이들의 숫자를 알 수 없는 성경학교에 참석할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매일 만들어 대는 과자봉지의 수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목이 터지게 불러대는 찬송가의 우렁찬 소리가 주님을 얼마나 기쁘게 할까를 생각하니 흥분과 기대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담임인 루시아노 목사와 부인 호세아니 사모가 그 곳에도 탁아소를 지었으면 하는 꿈을 가진 것을 알고도 아직까지 그꿈을 이루어주지 못하고 있지만 수년이 지난 오늘 알데이아 교회는 부흥되 있었고 간호원인 사모는 열심히 공부를 계속 하더니 이젠 간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어였이 간호대학 교수가 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도 네델란드에서 열리는 국제 교수회의에 참석했었다고 했다.
 주님께서 많은 브라질교회를 짓게 하셨고 섬기게 하셨으나 이렇게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진취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녀 같은 사모는 볼 수가 없었는데, 당시에 짖굳은 날씨에도 하루 몇 번이고 변소 청소를 손수 하면서 교회가 더러워 졌다고 생각되면 호세아니 사모의 손길이 벌써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교대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녀의 남다른 헌신에 반해있었고 오래도록 그 칭송의 소리가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의 헌신이 대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우리는 선교현장에서 무언가 주고 왔다는 착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실은 주는 것보다 받고 배우고 오는 것들이 더 많지 않은가 생각하게 된다. 과연 나는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살고 있는가? 고민하며 자신을 살피는 기회가 되었다.
 부족한 것이 너무 많은 부엌이지만 문선인 권사님의 지혜로운 수고의 밥상은 언제나 우리 모두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브라질 교인들이 돕고 싶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아름다운 교제의 시간들이고 잊지 못할 추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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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Fri, 13 Apr 2018 19:42:00 +0900
(최복이 대표의 7전8기 무릎경영이야기)작은 기도의 씨앗이 열방을 품은 울창한 숲을 이루기까지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086 무릎경영.jpg
 
충남 청양군 칠갑산 아래 최씨 집성촌에서 태어난 본죽 최복이 대표는 어려서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13남매가 사는 종가댁에서 자라게 된다. 종가댁답게 항상 친척과 손님들, 지나는 객들까지 항상 북적거리는 통에 종가댁 종부인 최 대표의 어머니는 항상 손님 대접하는 일에 능숙하신 모습을 보고 자란다. 또한 집에는 사당이 있고 선산에는 사찰이 있었으며, 고모 중에는 스님도 계셔서 불교적 분위기와 유교적 전통이 혼재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어려서부터 혼자 책 읽고 상상하기를 좋아해서 나중에 크면 시를 쓰거나 이야기 작가가 되겠다는 어린 소녀의 꿈은 그녀를 스무살 국문과 여대생(충남대 국문과 83학번)으로 이끌었다. 본죽 최 대표는 그곳에서 1년 선배인 김철호 본죽 회장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애인이 있다’는 소리에 선배의 어머니가 그녀를 초대하였다. 서른여섯에 혼자 되신 예비 시어머니는 서천장, 한산장 등 여러 장터를 돌아다니시며 포목장사로 1남 4녀를 억척스럽게 키워내신 생활력이 강한 분이셨다. 당시는 하룻길에 되돌아 올 수 없어 그 날 밤을 그곳에서 묵게 되었다. 새벽녘쯤 손과 발을 스치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선배의 어머니가 머리와 손을 쓰다듬으면서 자식들 이름도 부르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며 기도하고 있었다.그 새벽 최 대표는 처음으로 찬송가와 기도 소리를 가까이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따스한 사랑과 은혜로운 충격에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결심을 하게 된다. ‘나도 나중에 이렇게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어야겠다. 기도하는 아내가 되어야 겠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방학 때마다 선배집을 찾은 본죽 최 대표는 자연스럽게 예비 시어머니의 신앙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3학년 때 쯤 본죽 최 대표는 “선배, 저 교회 한번 데려가 줄래요?” 하며 부탁을 한다. 이렇게 어설픈 교회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4학년 말, 6개월 방위를 마친 그 선배와 최 대표는 결혼을 하게 된다. 양가 부모님들의 재촉도 있었지만, 새로운 삶과 환경에 대한 기대감이 스물셋 어린 신부와 스물넷 어린 신랑의 신혼의 문을 연 것이다. 어김없이 결혼은 현실이었다. 결혼후 취업 대신 선택한 ‘대학출판사’라는 첫 사업과 방문학습사업이 보란 듯이 엎어지고 이후에도 다이아몬드수입, 인삼제품 제조 판매, 목욕용품 판매 사업도 모두 망하게 된다.
 돌 지난 첫 아이를 엎고 부천에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5만원 단칸방살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남편이 벌이는 일들은 모두 실패하였다. 당시 집 근처 시장에는 작은 개척교회가 있었는데, 어린 새댁이던 최 대표는 아이를 엎고 나와 이 곳 예배당에 눈물을 쏟아 놓곤 하였다. 그러던 스물여섯살 어느날 최 대표는 김영희 구역장을 만나게 된다. 매일같이 찾아와 살펴준 덕분에 수요예배, 금요예배, 구역예배, 여전도모임, 철야기도, 산기도를 힘들어도 다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덧 자연스럽게 입에서는 찬송과 기도가 쉬질 않았다. 철야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 토요일 아침. 갑자기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기도하다가 방언을 받게 된다. 성령세례를 통한 방언을 받고부터 최 대표의 기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을 해주세요’ ‘~을 도와주세요’라는 기도는 “아버지, 제 인생을 드리겠습니다. 주님의 도구 되고 싶습니다. 저를 하나님 일에 사용해주세요” 라는 기도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 밀알이 되어라” 그 때는 의아했다. ‘겨우 밀알이라니’ 그것이 얼마나 큰 역사가 될지 그 때는 선명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전히 남편의 사업은 잘되지 않고 여전히 돈을 빌리러 다녀야 했던 어느날 지인들의 귓속말이 귀에 들렸다. “재, 또 돈 빌리러 왔다. 습관 되니까 빌려주지 마라” 지인들의 말이 돌아오는 기차 안 눈물의 기도가 되었다. “하나님, 이렇게 돈 꾸러 다니는 게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요, 이제 우리에게 복을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과 이웃들을 돕고 베푸는 선한 도구가 될게요”, “제게 재정을 열어 주세요. 우리가 잘되면 나눠 주고 꾸어 주고 베풀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상처를 미래를 위한 청지기의 꿈으로 바꾸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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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5 Apr 2018 05:50:00 +0900
(만성훈장의 사자성어)취사선택:取捨選擇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079 z6ncjmYl7QHFNPTD9jKPc2Pr7s2I53IM.jpg
 
취사선택(取捨選擇) : 받아들이거나 버릴것을 선택한다는 뜻으로, 최선의 것은 쓰고  필요하지 않거나 차선의 것은 버린다는 의미로 쓰인다.
 인류가 최초로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 때는 성경 창세기 1장의 기록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그의 종으로 만든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가진,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만일 종으로 만들어서 로보트처럼 살게 하셨다면 인간은 선택권이 없이 하나님의 종으로만 살아갈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선악과를 따먹을지, 말지, 아담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이 인류 최초의 선택이자 후손에게 내릴 비극의 결과인 것을 보면,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대한 교훈인지를 깨닿게 된다. 오래전에 어떤 제품을 선전하는 글이 있었는데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라는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인생을 살아 가면서 매 순간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작게는 오늘 하루의 일과에서 부터, 크게는 인생 전반의 길목에서 선택해야 할 문제로 고민한다. 여럿 가운데서 쓸것은 받아들이고, 불익한 것은 버리는 “취사선택”. 당나라 말기의 한유는 취사선택의 기준을 물의 흐름에 비유했다. 강물이 흘러 내려가면서 멈추지 않으면, 비록 더딤과 빠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바다에 이르를 것이니 바다에 속히 도착하려고 급히 흐르는 지류를 따라가지 말고, 완만하게 흐르는 본류를 따르라는 것이다. 이는 지엽적인 것에 한눈 팔지 말고 본령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대외관계에서 줄곧 선택을 강요 받아왔다. 과거 중국의 왕조 교체기 마다 저무는 왕조와 뜨는 왕조 사이에 양자택일의 기로에 섰으며, 원나라, 명나라 교체기에 고려는 친원, 친명으로 갈라진 결과, 요동정벌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변도 일어났다. 명나라, 청나라의 교체기에도 마찬가지로 다시 갈림길에 섰다. 우리의 삶은 이처럼 수많은 선택이 연속되어지며, 두가지를 병행할수 없는 경우엔 하나를 버려야 한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해야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일을 구별하여 취사선택한 후, 본질적인 목표에 정확히 집중할수 있는 지혜가 무엇 보다 필요한 때인것 같다.
  만성훈장
[출처:www.koreabrazil.net]]]>
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5 Apr 2018 05:42: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알데이아 교회-1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078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브라질 동북부 뻬르남부꼬주 헤씨피 공항 한 구석에 우리 베데스다교회의 선교팀인20명의 청년들이 피곤에 지처 담요나 슬리핑 빽 속에서 각가지 모양으로 잠이 들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삐죽 삐죽 삐져나온 다리하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가관이다. 체면차리고 예쁘게 보이려고 하는 것도 몰려오는 졸음 앞에는 쪽을 못쓰는 것인가 보다. 비행기에서 내린 시간이 새벽이고 보니 이미 대절한 버스가 도착하기까지는 아직도 몇 시간을 가다려야 한다. 그동안 모텔에 들어가 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김목사님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이 청년들은 알아서 시멘트 바닥에서 코를 골면서 자고 있는 청년들을 보면서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들이 선교를 준비하면서 부르짖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면서 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으신 성령님께 늘 감사하던 마음이다. 성극이면 성극, 인형극이면 인형극, 경배와 찬양 어느 것도 하나 소홀함이 없이 세상 밖의 청년들이 누리는 유혹을 물리친 그들의 땀흘리는 수 많은 세월속에 지켜본 우리부부는 주님께서 그들을 주셨기에 오늘의 선교의 열매들이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이다. 청년부장인 주호관 집사님도 청년들과 함께 잠이 들어 있었다. 잘 썪인 에바의 가루처럼 어찌 그리 잘 어울리는지... 
 헤시피시에서 떨어져 있는 알데이야 브라질 장로교회의 담임인 루시아노 목사가 벤을 구해 짐을 따로 실을 수 있는 추레일러를 달고 올 시간을 기다리며 신춘인집사님 부부와 우리부부는 담소하면서 밤을 꼬박 새웠음에도, 앞으로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선교현장의 영혼이 살아나는 부푼 꿈으로 피곤한 줄도 몰랐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화벨라의 열악한 환경에 자리잡은 알데아교회 뒷쪽으로는 비가오면 땅이 일, 이 미터나 푹 패여 있는 사이사이에, 제데로 된 건축재료가 아닌 상자나 천조각 등 이런저런 것으로 붙이고 막아놓은 허술한 집들이 강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여 쓸어질 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이곳에 아름다운 예배당이 우뚝 서 있다. 서울 평창동에 있는 조건회 목사님이 담임인 예능교회가 헌금하여 새 예배당을 건축하고 2008년 10월 11일에 많은 브라질 이웃들이 모인 가운데 봉헌하였다. 오락가락하는 비로 인해 오를대로 오른 습기도 많아졌지만, 대원들이 빨아 널은 옷들과 수건들을 널었다가도 자주 내리는 비로 인하여 걷어야 하는 일이 수 없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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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5 Apr 2018 05:30:00 +0900
(만성훈장의 사자성어)타면자건:唾面自乾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062 z6ncjmYl7QHFNPTD9jKPc2Pr7s2I53IM.jpg
 
타면자건(唾面自乾) :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인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인다.
 당나라의 측천무후 때이다. 그녀는 중국 역사상 여제로서 약 15년간 전국을 지배하였는데, 임금인 고종이 죽자, 아들인 중종과 예종을 차례로 즉위시키고 섭정을 하면서 독재권력을 휘둘렀다. 이렇게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기 위하여 탄압책을 쓰는 한편, 유능한 신흥관리를 많이 등용하고, 명신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여 정치를 담당시켰기 때문에 천하는 그런대로 잘 유지되었다. 그 무렵, 측천무후의 유능한 신하 중에 누사덕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성품이 온후하고 관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무례하더라도 그것을 자기의 잘못으로 여겨 남을 탓하지 않고 오직 정사에 바른 처신으로 임해 당대의 명상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았다. 하루는 그의 아우가 대주자사에 등용되어 부임하려고 할 때였다. 그는 동생을 불러 “우리 형제가 다 같이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만큼 남의 시샘도 크다고 보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한 시샘을 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하면 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동생이 “비록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결코 상관하거나 화내지 않고 잠자코 닦겠습니다. 만사를 이런 식으로 사람을 응대하여 결코 형님에게 걱정이나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동생의 대답을 듣고 누사덕은 다음과 같이 훈계했다.“내가 염려하는 바가 그것이다. 만약 남이 네게 침을 뱉는다면 그것은 너에게 화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침을 닦아 버린다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되어 그는 틀림없이 더 크게 화를 내게 될 것이다. 침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르게 되니, 그런 때는 웃으며 그냥 침을 받아 두는 게 제일이다”
 살다보면 상대방에게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것을 참지 못해 큰 문제로 비화되는 일이 종종 있으며,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중의 하나가 “그때 조금만 참을걸…” 이라는 말이다. 고통스러운 인내 없이는 용서와 포용이 불가능하다.
  만성훈장
[출처:www.koreabraz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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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Wed, 28 Mar 2018 20:46: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거룩을 준비하라-4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060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예수 믿는데 왜 되는 것이 없느냐고, 시집 잘못 같다며 우리 부부를 그렇게 미워하면서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던 내 큰 오빠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희 애들을 보고 너희부부를 보니까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성경책도 사드리고 그렇게 기도 했건만 “내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겠다”는 말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 영혼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며 준비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말만 살아 있는 구경꾼이 있다. 여기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자. 나는 구경꾼이 아니고 준비된 자인가? 아무도, 누구도 365일 동안을 살면서 행여나 “너는 준비가 안된 자이지만 나는 준비된 자다”라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아무도 자유치 못하기에 상대를 가르치는 손가락은 하나요 셋은 나를 가르친다는 말이다. 무슨말인가? 그래서 경건은 연습으로 선행도 훈련으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라 한다. 주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가지지 포도 나무가 아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이 아니기에 포도나무로 착각 하지 말고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지 않는가? 과연 내가 포도나무에 잘 붙어 있는지 날마다 순간마다 말씀의 거울을 들여다 보아야겠다.
 가끔은 불신앙과 어두움과 부정적인 상태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긍정적이요 오직 믿음 안에서 온전히 서 있는 줄 착각하는 상대를 우리는 왜? 순간적으로 싫어하게 되는가 생각해 본다. 이유는 그 상대에게서 똑같은 내가 보이고 말씀과 행동이 다른 내가 바로 그이니까 결국은 그가 아닌 나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롬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아웅 다웅하던 불신앙의 옷을 벗어 던지고 이제는 “준비”하는 삶으로 거룩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 처럼 거룩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그 답을 찾아보고 싶다. 그 답은 “왜? 내 맘대로 해야 돼? 하나님 맘대로 해야지!”가 아닐까?  큰 오빠가 제주도에 작은 별장을 가지고 계셨다. 자주 그 곳에서 묵으면서 친분이 있는 분들과 골프를 치셨다고 했다. 워낙 남존여비 사상이 몸에 배어 있는데다 믿음이 없으신 오빠가 골프장에서 아내의 친구가 있는데서 자기 아내를 향해 큰 소리로 나무라고, 자기의 마음대로 명령하고 자기의 의지대로 행동했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큰 새언니의 친구가 언니에게 다가서며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 했다. “우리 시 아버님도 항상 신 회장처럼(오빠를 지칭)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셔서 자신이 별명을 부쳤다고 하면서, 성씨 다음에 이름을 빼고 지맘대로 한다는 뜻으로 “지맘” 이라 부쳐서 “박지맘”이라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더란다. 신 회장도 원식이라는 이름을 빼고 그 자리에 “지맘”을 부쳐서 혼자 몰래 “신지맘”이라고 부르면서 위로를 받으라면서 장난스럽게 언니에게 말을 하더란다. “신지맘” 나의 새 언니는 그렇게 길들여져서 아무렇지도 않았었지만 듣고 보니 정말 오빠가 지맘대로 했더라고 하면서 시누이인 나에게 웃으며 전해준 말이다. 언니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빠 이름 바꿨어 고모. 신지맘으로” 너무나 맞는 말이여서 언젠가 베데스다교회 여전도회 헌신예배에서 이 사건을 이야기 하며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지맘”으로 바꾸어 불러보라고 했던 생각이 난다. 우리는 즐겁게 까르르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이지맘, 정지맘......”이라 불러보았다. 나의 오빠만 신지맘이였을까? “왜? 내맘(지맘)대로 해야돼? 하나님 맘대로 해야지!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내맘대로 살던 지난날의 신지맘이라는 이름이 과연 언제나 완전히 버릴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는 지맘대로 살면서 하나님 맘대로 사는 줄로 착각하는 한 결코 거룩을 준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서 쓴 웃음을 지어 보는데 뻐쓰가 빠또스에 도착했다. 새벽 3시 반에 조착한다더니 새벽 4시 반에 도착했다. 결국 9시간이 걸렸다.이제부터 주님이 무슨 일을 예비하셨을까? 기대하면서.... 좀 쉬어야겠다. 그리고 이제부터 온생을 거룩을 준비하며 그리스도의 침묵을 실천하고 살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꿈을 꾸어야겠다.
 마 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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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Wed, 28 Mar 2018 20:33:00 +0900
(캄보디아 선교편지)2018년 1, 2월 선교소식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045 축도 2.jpg
 
우리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소망으로 2018년을 복되게 살아가기를 축복하며 선교소식을 전합니다.  
 크리스마스 구제
 우리 구주 예수님이 오신 크리스마스 축하예배 때 드린 특별헌금으로 매년 쌀을 사서 이웃을 돕는데 올해도 제1교회, 제2교회 이웃 어려운 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도와줄 이웃들을 학생들이 추천을 하고 주일날 교회로 오라고 초청을 하여 학생들이 나누어 줍니다.  이런일을 통해 이웃 사랑과 예수님 사랑, 교회의 사명과 예수믿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섬기는 삶을 실천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축구와 선교전략
 2017년 11,12월 선교소식에 유치원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선교전략으로 학교가 참 좋은 전략이라고 소식을 드렸습니다. 학교외에 지금 캄보디아 남학생들에게 통하는 선교전략으로 축구가 있습니다. 보통 컴퓨터교실이나 영어교실에는 여학생이 80-90 퍼센트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학생들도 여학생이 대부분인데 축구를 통해 6,7학년이 남학생이 많이 출석하고 있습니다. 축구와 무에타이(태국 킥복싱)가 T.V.를 통해 방송 되기 때문에 남학생들에게는 축구가 좋은 선교전략입니다. 학교,영어,컴퓨터, 그리고 축구라는 선교전략을 갖게 되었습니다. 선교전략이라는 씨를 뿌리고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성령님의 능력으로 구원 받고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방
 이웃에 사시는 92세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심방을 가서 위로하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캄보디아는  모계 씨족사회로 마을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을에 신부쪽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여 살고 할머니가 가족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불교를 믿으니 불교식으로 장례식을 하니 화장을 합니다. 한국 사람들 같이 슬퍼하며 곡을 하지 않습니다. 또 교인이 일년동안 키운 소와 패물을 팔아서 새 오토바이를 구입하고 감사하여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고 초대하여 축복기도를 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탈렌트마켙
 교회에 주일날 빠지지 말고 나오라고 출석상을 주고, 성경 암송을 장려하기 위해 3달에 한번씩 탈렌트마켙을 하는데 아이들이 마을에서 볼 수 없고 프놈펜시장에서 파는 물건을 보고 아주 신중하게 물건을 골라서 시간이 제법 걸립니다. 학생들 마다 점수가 달라 헉생 한명당 한명의 도우미가 물건을 고르는 것을 도와 줍니다.
 사역지와 기도  
 프놈펜에 학사와 유치원을 하면서 교회를 개척하려고 기도하며 장소를 2017년전 7월부터 찾고 있는데 지금까지 알아본 것 가운데 적당한 곳 3집을 놓고 가격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역을 감사와 기쁨으로 사역할 곳을 결정하도록 기도부탁을 합니다.   
 *. 프놈펜에 쎈타구입을 위하여 기도바랍니다.
 *. 쌘타 사진 3개를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박창환, 박정아 선교사]]>
기자 | 오피니언>특별> Wed, 21 Mar 2018 21:47:00 +0900
(만성훈장의 사자성어) 만화방창:萬化方暢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040 z6ncjmYl7QHFNPTD9jKPc2Pr7s2I53IM.jpg
 
만화방창(萬化方暢) : 화창한 날씨에 만물이 나서 자란다는 뜻으로, 따뜻한 봄날이 되니 온갖 생물이 나오고 꽃피운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고사성어를 흔하게 들어본적이 있었을까? 그렇다. 1960년초에 들었던 유행가 “차차차”에서 찾을수가 있다.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화란춘성 만화방창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당시에 크게 유행하여서 유원지나 흥겨운 자리에 가면 합창을 하며 춤을 덩실덩실 추었던 곡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과 “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이어지면서 한참 “새마을 운동”으로 가난을 벗어나고자 땀을 흘리던 시절이었으니,  “차차차”와 같은 대중가요는 당시로 말하면, 불온가요의 수괴 쯤 되는 금지곡이 되어서 차츰 잊어지게 되었는데 새삼, 가사를 살펴보니 하나도 나쁜 말은 없고, 구구절절 옳은 말 뿐이다. 그런데, 왜 늙어지면 못논다고 했을까? 여러 이유 중에 첫번째는 건강 때문일 것이다. 육신이 여기 저기 쑤시고 아픈데 어디 놀러가자 하면 반가울리 없고, 다리가 후둘거려서 힘이 없는데 산천경개 좋은 곳을 어찌 구경하러 다니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고,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염병할수 밖에... 놀러가기 좋은 젊은 나이에는 경력과 지위가 낮아 박봉으로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힘겹고, 중년기에는 업무가 늘어, 사회적 지위와 대인관계가 더욱 넓어져서 할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으며, 게다가 삶의 질을 높히고 내집마련, 자식 교육등의 현실이 여행충동을 발산할 기회를 억누른다. 이런 저런 사정이 평생동안 자신의 동반자가 되기 때문에 번번히 다음기회로 미루던 끝에 어느덧 노년에 이르게 되고, 그리하여  시간과 돈의 사슬에서 마침내 자유된 몸을 가졌을때는 쇠약한 몸뚱이만 남았음을 돌아 보게 된다. 그러니, 평생의 삶을 통한 후회 중, 젊어서 여행하지 못한 후회가 등수안에 들게 되지 않게 하려면, 지금이라도 여행계획을 적극적으로 설계하면 좋겠다.
 만성훈장
[출처:www.koreabrazil.net]]]>
기자 | 오피니언>특별> Wed, 21 Mar 2018 21:42: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거룩을 준비하라-4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038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난 한 번도 석양에 사라지기 전의 햇빛을 유심히 본적이 없었다. 마치 그 빛을 보는 순간에 “맞아 우리도 주님께 가기 전 생애의 가장 밝은 빛이 되야 해....”마지막 그 빛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지막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도록.... 석양에 사라진 햇빛이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내일 또 그 빛을 다시 비추는 것처럼....
 우리가 마지막 비칠 수 있는 선한 행위가 사람은 다시 볼 수 없어도 후세에 밝게 비춘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했는데 아주 오래 전 시 어머님이 생전에 계실 때 내게 하신 말씀이 떠 오른다. “얘 신 선교사야 너의 엄마 이몽술 권사님 같은 사람 없어 얘.... 얼마 전 교회 식구 중에 집에 불이 나서 교인들이 불타는 집 앞에서 안타깝게 발만 동동 구르는데 옆에 계시던 네 엄마가 안 보이더라구... 좀 있으니까 새 이불과 전기 밥솥을 사들고 오셨드라고.... 우리 모두가 감동했어 얘... 왜? 그 손가락 없는 전도사 있잖아? 그 여자는 시도 때도 없이 네 엄마에게 차비달라, 학비 보태달라 생활비 달라면서 무슨 자기 은행인 줄 아나봐! 그때마다 너의 어머니는 손을 펴시는데 정말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이 맞아”하시면서 좀은 나의 친정 엄마가 못마땅 하신 듯이 말씀 하셨다. 선한 일이 좋다는 것을 모두 알고는 있지만 행위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말이라면? 이 화재사건을 보는 청중 속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다. 구경꾼이 있었고 어려움을 당한 그들을 위한 준비꾼이 있었다는 말이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 것인가? 자신에게 묻게 하던 사건이다.
 나의 친정 어머니는 1975년도에 브라질 딸네 집인 우리 집에 오셨다가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마주 앉아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전하면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말씀을 받아들이셨고 성경 말씀을 들으신대로 삶으로 옮기심을 보아왔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잘사는 자녀들이 용돈을 드리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교회뻐스 사는데 또 피아노를 구입하는 헌금을 하셨다. 그리고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이조 삼조를 드리시는 어머님께 “그렇게까지 안해도 된다”고 했다가 호되게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주의 종들이 심방을 오시면 한 번도 빈손으로 돌려 보내시지 않는 모습도 잊을 수가 없고, 세상을 떠나가시기 전 찾아뵈러 가면 옷이며 가방이며 신발이며 아끼시던 물건들이 자취를 감춘 것을 보고 물으면 “내가 살아있을 때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낫지 죽은 다음엔 받는 사람들이 기분나쁘지 않아?“ 하시면서 웃으시던 “엄마”그분이 살아 생전 믿음 안에서 정말 잘하신 일이 있다면? 죽음을 정말 잘 준비하셨다는 사실이다. 히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시어머님의 진심어린 칭찬속에 준비된 친정 엄마의 선한 행위의 열매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향기가 남아 후세를 사는 내게 “준비” 라는 단어를 심어 주셨다. 세상적으로 잘 사는것? 잘 되는것? 복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 때문에 예수가 필요 없는 사람들을 본다. 눈에 보이는 것 좀 없어도 우리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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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Wed, 21 Mar 2018 21:39:00 +0900
(만성훈장의 사자성어) 삼강오륜:三綱五倫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015 z6ncjmYl7QHFNPTD9jKPc2Pr7s2I53IM.jpg
 
삼강오륜(三綱五倫) : 세가지의 강령과 다섯가지의 인륜이라는 뜻으로, 유교에서 지켜야 할 도덕지침을 일컫는다.
 삼강오륜의 유래는 이렇다. 중국 전한 중기의 대표적 유학자인 동중서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삼강오상설을 논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사회의 기본적 윤리로 존중되어 온 것이다. 그리하여 이는 지금도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윤리, 도덕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민족정신에 크게 영향을 끼친 삼강오륜은 국가 기강의 철학이요, 사회 구조의 원리요, 가정 윤리의 근본이다. 삼강이란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사랑의 본보기와 행동의 리더십을 발휘하여야 하는 철학의 정립이다. *군위신강:임금은 신하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덕목이 있게 신하와 백성을 다스려야 하고 신하와 백성은 충성으로 보필 하여야 한다. *부위자강:아버지는 아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함으로 내 아들이 또 내게 효도를 하는 것이다. *부위부강:남편은 아내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참으며, 양보하며, 사랑하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오륜이란  한 나라의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그리고 친구간의 의리를 명시한 국가와 가정과 사회를 운영하는 기본 도덕률이다. *군신유의:임금은 신하와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며, 신하와 백성은 충성으로 보필하여야 한다. *부자유친: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여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를 하여야 한다. *부부유별:남편은 바깥일을 보고 아내는 집안일을 본다는 뜻이다. *장유유서:어른과 아이 나이에 따른 사회질서를 정립하는 철학이다. 어른은 젊은이를 사랑하고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여야 한다. 이는 우리 동양 도덕의 미덕이다. *붕우유신:친구간에 지켜야할 의리와 믿음을 중시하는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이다. 모든 상관관계가 믿음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정립한 철학이다.
 세상이 변하여도 교훈의 말씀은 변하지 않나니, 자신의 덕업을 위해서는 물론이요, 자식이 사람된 기본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의도에서 삼강오륜을 가르치고, 그 뜻을새겨야 할것이다.
만성훈장
[출처:www.koreabrazil.net]]]>
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5 Mar 2018 01:08: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거룩을 준비하라-3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9013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부부 사이에 다툼은 성숙한 자가 져주는 대신에 미숙한 자가 이기기 마련이건만 주위를 돌아보면 거의 모두가 나는 이기지 못했다고 아우성이다. 이긴 것을 오히려 불편해 해야하고 마음 아파하며, 졌다는 사실을 기뻐할 수 있는 성숙함이 가정과 교회와 개인에게 가득하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빠또스로 가는 버스 안에는 모기 때문에 에어컨을 많이 춥게 틀어 놓는다. 에어컨 때문에 홋이불을 덮어도 덜덜 떨리는 8시간의 여정이다. 생각하니 끔찍했다. 몇 년 전에 청년들과 신춘인 집사 부부와 선교여행을 갈때였다. 버스 안이 너무 추워서 문 권사가 어디서 구했는지 홋이불을 갖다가 덮어준 고마움도 잊을 수 없다. 열대지방에서 유독 한 겨울을 만나야하는 긴긴 밤이라고나 할까? 허기야 그 주위는 쎌떵 사막지방이여서 낮과 밤 기온의 차이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잔뜩 겁먹고 추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단단히 준비하고 버스에 올라 탄 탓인지 그때 같은 그런 추위가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아마도 승객들의 불평으로 에어컨을 조금 높게 켜놓은 것 같다. 그럼에도 승객 모두가 홋이불을 준비해 머리까지 푹 쓰고 잠을 청하고 있다. 버스를 타기 전에 쌍파울에서 가지고 온 맛있는 주먹밥에 오이를 고추장에 찍고 컵라면까지 곁들여 식사를 마친 후에 화장실에서 두꺼운 옷으로 갈아 입은터라 준비된 자의 평안함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추위를 대비하여 준비한 자는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고, 신랑을 맞을 준비가 된 자는 등과 여분의 기름을 들고 주님 맞을 생각에 얼마나 기뻤을까?라고...
 나는 늘 묵상하며 고민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 요한계시록 20장 6절에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라는 말씀에 이어 둘째 사망을 언급하고 있는데 믿는자라면 누구나 첫째 부활에 참예하기를 원할 것이다. 늘 생각하기를 어떻게 하여야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 하는데.... 성경은 분명히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가 복이 있고 거룩하다고 한다. 거룩 거룩! 열 처녀의 비유에 대해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왔다. 그중에 요한계시록 해설의 대가이신 이미 세상을 떠나신 고원용 목사님의 설교 중에 한 부분이 나의 마음을 터치했다. 열 처녀가 모두 등과 기름을 준비했지만 그중 다섯 처녀는 한 손에 등과 다른 손에 여분의 기름이 담긴 그릇을 준비해서 양손이 다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셨다. 고로 두 손에 등과 여분의 기름을 든 다섯 처녀는 두 손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먹고싶은 것도 못먹고 모기가 물어도 쫒지도 못하고 상대가 때려도 맞기만 하는 말하자면 자신의 소욕을 따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도 하셨다. 반대로 다른 다섯 처녀는 한 손에만 기름담긴 등을 들고 한 손은 자유로 움직일 수가 있었으므로,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먹고 싶으면 먹고 모기도 쫓고 자신의 마음 가는대로 할 수 있었을 것이라 했다. 절제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살았던 다섯 처녀와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까닭에 꼼짝도 못하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수 없었던 다섯 쳐녀를 생각해 본다. “준비” 여분의 기름을 (성령충만) 준비한 그 준비가 그들을 육신의 소욕대로 살지 못하도록 꽁꽁 묶었다면? 우리도 첫째 부활에 참예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겠다고.....생각한다.
 성령 충만이란? 말씀에 길들여진 자, 말씀의 노예가 아닐까? 말씀에 꽁꽁 묶여서 경건의 연습으로 거룩을 준비하는 자일 것이다. “너희를 부르신 자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추상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잊지 않고 거룩을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어두컴컴해진 창밖에 하늘을 처다 보았다. 이리저리 흩허진 옅은 구름 사이로 은빛나는 하이얀 달님이 숨박꼭질을 하듯이 얼굴을 내어 미는듯 하더니 곧 바로 구름속으로 숨어 버린다. 아주 동그랗고 작게 보이는 달님이 나타날 때마다 연한 은빛 옷을 입은 구름은 수줍은 신부 같지만 그로인해 주위는 엷은 빛으로 잠시 밝아지는 듯 하다가 달님이 숨으면 다시 어두어지곤 했다. 한참이나 달님과 데이트를 하다가, 해시피에서 택시를 타고 시외 뻐스 정류장으로 올 때 노을에 사라지기 전에 보았던 햇님이 생각났다. 얼마나 색이 붉고 강열한 빛으로 이글이글 마지막 불을 뿜는 것과 같았던지... 나는 그 햇님을 보며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 있으면 석양너머로 사라질 햇님이 왜? 저겋게 강열한 빛을 비추는가? 라고...]]>
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15 Mar 2018 01:04:00 +0900
(추모사)지구전도전쟁 총사령관이셨습니다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8999 이정근.jpg
이정근 목사(미성대 명예총장)
 
그래함 목사님, 단잠을 주무시듯 하나님의 품에 평안히 안기셨군요.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시며 하늘나라로 이사 가셨네요.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는 순간 우리 코리안들은 누구나 1973년 5월 서울 여의도집회를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립니다. 110만 명 넘게 모인 마지막 집회는 기독교 역사 이래 최대집회가 되었고 구원받는 영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모멘텀이 되었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은 그래함 목사님을 우리 민족 구원을 위한 특별대사로 파송하셨습니다. 그래서 미국교회가 파송한 의료선교사 딸로서 평양에서 공부한 루스 벨(Ruth Bell) 양과 결혼하게 하셨습니다. 성경과 교회를 박살낸 북녘 땅에 가서 김일성에게 성경을 선물하셨고 김일성대학교 젊은 학생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때가 차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래함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로스앤젤레스 법원 건물로 달려갔습니다. 31세 되시던 해에 열렸던 전도집회 장소였습니다. 지금도 기념동판이 있기에 목사님 시신을 뵙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당시 흥청거리는 도시, 술주정뱅이들이 우글거리던 동네였답니다. 전도집회 성공이 어려웠다면서요. 허지만 마침내 해 내셨습니다. 당초 4주 동안 하려던 집회가 8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성령의 큰 역사가 있어 엄청난 회개와 영접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지구복음화의 큰 횃불 점화식이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그 때부터 복음전도자 사명에 온 몸을 던져 자신을 불태우셨습니다. 빌리그래함복음전도협회(BGEA)를 조직했습니다. 이 단체는 미국의 모든 조직 중에 70주년이 되는 오늘까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은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도 가장 힘찬 박수를 받는 모범단체로 평가됩니다. “오직 영혼구원이라는 제일목표에만 철저히 헌신한다. 전도집회는 현지교회들과의 적극 협력을 통하여 진행하고 현지교회의 건강화를 위하여 공헌한다. 전도집회에서 결신한 사람들은 그들의 주거지에 가까운 교회에 정착하도록 한다. 이 전도집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모범이어야 하며 따라서 사소한 부도덕성도 용납하지 않는다. 재산/재정/물품은 부정이나 낭비가 전혀 없도록 하며, 완전공개하고, 절대정직과 최대효율 원칙 아래 관리한다.”
 이런 원칙을 엄격히 지켜 단체 운영 그 자체가 삶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아름다운 설교가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선한 싸움 다 싸우시고, 달려갈 길 다 달려가고, 믿음을 굳게 지키셨다는 확인도장입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부끄러운 교회지도자들(갈3:3) 때문에 목사님의 행동설교가 더욱 큰 감동과 은혜가 되고 소금과 빛이 됩니다. 
 그래함 목사님은 누구보다도 지구마을 전도전쟁을 지휘하시는 총사령관이셨습니다. 그리고 전도전쟁 수행을 위하여 전면전과 총력전을 펼치시며 앞장서서 진두지휘하셨습니다. 185개 국가의 큰 도시들에서 복음전도집회를 가지셨습니다. 2억명 넘는 심장에 복음의 씨앗을 직접 뿌리셨습니다. 인쇄매체, 책 출판과 보급, 전파 미디어, 영상미디어, 영화제작과 보급, 인터넷, 사회통신망 등 모든 도구를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효과적이고도 대량적으로 송출하셨습니다. 세계 각국의 최고통치자를 만나 함께 기도하고, 국가조찬기도회를 창설하심으로 신앙의 자유 폭을 크게 넓히셨습니다. 로잔 등지에서 각 국 교회 대표적 지도자들을 모아 국제복음전도대회를 주도하시고 ‘로잔 언약’ 선언과 전도전략 실천으로 ‘지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자’(Let the earth hear His voice.)고 함성을 지르신 것은 실로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민족에게’(마28:19, 행1:8)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전명령을 십자가 지고 실천하신 선교전략들입니다.
 목사님도 참석하신 플로리다성경대학 졸업식 전날 급우 친교모임에서 한 여학생이 이런 예언을 했다면서요. “하나님은 시대마다 지도자를 선택하셔서 어두운 세상의 큰 빛이 되게 하십니다. 루터, 웨슬리, 무디 같은 분들이지요. 그런데 우리들 가운데서 이 같은 지도자가 출현할 때가 찼습니다.” 그 예언이 그래함 목사님에게서 확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래함 목사님, 다음 세기에는 목사님 같은 전도자가 코리언들 가운데서 나오도록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온 지구에 흩어진 한인이나 한반도 남북에 흩어져 사는 한인 가운데서 말입니다. 목사님께서 뿌려 놓으신 ‘한 알의 밀’이 아닙니까.
 * 성시화운동 본부 주최로 미주평안교회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목사 추모예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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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8 Mar 2018 19:47:00 +0900
(만성훈장의 사자성어) 선참후주:先斬後奏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8998 z6ncjmYl7QHFNPTD9jKPc2Pr7s2I53IM.jpg
 
선참후주(先斬後奏) : 먼저 목을 베고 나중에 진상을 윗사람에게 아뢴다는 뜻으로, 일처리를 먼저 한 후 내용을 상부에 보고할 때를 말한다.
 후한(後漢)시대, 이 시대의 지배 세력인 호족들이 도읍인 낙양을 뒤흔드니, 관리들은 그들의 횡포를 그저 숨을 죽인 채 보고만 있었다. 그 즈음 동선이라는 관리가 낙양의 현령으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자기 관할하에 처리하기에 껄끄러운 사건을 맞게 된다. 호양공주의 하인이 허세를 부리며 사람을 죽인 사건인 것이다. 호양공주는 광무제의 누나였으니 그 권세에 눌려 이 사건을 수사하기가 어려웠다는데... 얼마후, 호양공주가 수레를 타고 외출을 한다는 정보가 동선에게 들어왔다. 물론, 살인 용의자인 하인도 공주를 수행하는 행차에 끼여 있다고 하여,  동선은 직접 나졸들을 데리고 범인의 체포에 나섰다. 이윽고, 공주의 수레를 만나게 되자, 동선은 공주에게 범죄자의 범행을 말해주고,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으로 범인의 목을 베어 버렸다. 깜짝 놀란 호양공주는 노기등등 하여 그 길로 궁전에 들어가 황제를 만나 조금전에 있었던 일을 고하니, 황제인 광무제는 크게 분노하면서, 사람을 처형하고도 보고를 하지 않은 동선을 문책하고, 그를 사형에 처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동선은 조금도 나약해 보이지 않고, 이 사건에 대한 논리를 조목조목 정연하게 아뢰니 광무제도 어쩔 수가 없어 더 이상 추궁하지 못하였다고 하는데서 선참후주가 유래한다.
 선참후주와 같은말로 선매후설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청도관에서 태권도 선배들이 지어낸 말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와 같은 후배들의 기강을 잡을때 종종 이 말을 사용했던 고교시절이 기억 난다. 느닷없이 집합 시켜 놓고 구타에 가까운 빳다를 치기 시작하였지만, 우리는 선배가 무서워서 무엇때문에 때리는지 감히 묻지를 못하였다. 먼저 때려 놓고 나중에 설명한 이유는, “정신이 해이”라는 애매모호한 지적이었다. 기합을 주며 선매후설을 말할때는 속으로 “귀신은 저 인간을 안잡아 가나” 그랬지만, 단체생활에서의 위계질서를 잡는 그 당시의 보편적인 수단이었으며, 그로인해 정신일도하여 수련하였으니 어려운 운동을 계속 이어갈수 있는 동기였다고 생각된다.
만성훈장
[출처:www.koreabrazil.net]]]>
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8 Mar 2018 19:46: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거룩을 준비하라-2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8994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대낮의 뜨거운 열기를 단숨에 몰아내는 싱그러운 바다 바람을 폐속 깊히 담고 싶어서 복식호흡을 몇 번 하고는 관광객들이 누리는 복을 단 한 시간에 다 누린 것처럼 대서양의 신선한 내음을 가슴에 듬뿍 담고 감사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선교지를 방문할 때마다 이것 저것 나누고 싶어 가방을 채우다 보면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엔 80을 바라보는 남편에게는 무리가 되어 무거운 짐을 들고 옮기다 보면 팔이 아파온다고 했다.
 남편 김 목사님이 왼쪽 어깨 밑에 팔을 주무르기에 물었다. “많이 아파요?”, “무거운 짐들을 무리하게 들었나보오” 칼슘이 몸에 49퍼센트로 필요량의 훨씬 못 미치는 남편에게 무거운 짐을 과분하게 맡긴 것이 마음이 아팠다. 나도 75세의 나이고보니 자신도 모르게 꾀가나서 은근히 남편이 들어 주기를 기다리곤 했던터에 짐을 끌고가는 남편의 뒷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짐은 무겁다고 느끼면서도 죄짐은 보지도 못하고 감각조차 없이 무디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죄짐을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영적 깨우침이 있기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택시가 이미 시외버스 정류장에 다달았다.
 시외버스 정류장이 해시피 시내에서 무려 40분이나 소요되는 거리에 있어서 모두들 불편하다고 한다. 택시 요금이 턱없이 비싼 값이지만 짐이 많아 전철을 이용할 수 없는 우리는 택시 안에 달려있는 가격이 표시되는 기계소리가 마치 골리앗의 큰 키처럼 가격이 오를 때마다 시간을 멈출 수도 없고 가는 시간을 부뜰어 매고 싶어진다. 빠또스행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섰는데 우리 차례가 왔을 때는 이미 표가 거의 매진되어 남편과 함께 앉을 자리가 없었다. 8시간이나 되는 기나 긴 시간을 밤새도록 모르는 사람과 옆에 있어야 하다니...
 부부가 늘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상대로 만드신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리라. 서로 약점을 보안하며 사랑하고 아끼면서 다툼을 통해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사랑과 용서를 배워가며 톱니바퀴가 서로 잘 맞아 돌아갈 때까지 깎기고 낮아진다. 기업으로 주신 자녀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가는 훈련장인 작은 가정으로부터 교회라는 큰 가정으로 우리 부부를 옮기신 하나님의 뜻은 교인들에게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보게 하시려는 주님의 가르치심이리라 믿는다.]]>
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08 Mar 2018 19:41:00 +0900
(만성훈장의 사자성어)문방사우:文房四友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8974 z6ncjmYl7QHFNPTD9jKPc2Pr7s2I53IM.jpg
 
문방사우(文房四友) : 선비의 방에 있는 네가지의 벗이란 뜻으로, 서예나 수묵화에 필요한 종이, 붓, 먹, 벼루 이 네가지를 일컫는 것이다.
 약 20여년전의 일이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드는 시기였는데 우리의 친목모임에서 퉁소를 부는 친구가 있었다. 더운 여름날 모시한복을 입고 대청마루에 앉아서 퉁소를 부는 모습이 얼마나 멋들어져 보이든지... 그러자 다른 친구가 자기는 지금 색소폰을 배우는 중이라고 한다. 우리의 화제는 자연히 “멋진 취미생활”이 되었고, 기왕에 취미생활을 가지려면 노년에 이르러서도 멋진 모습으로 계속할수 있는 부분을 나열해 보기로 했더니, 공예, 서예, 사군자, 수묵화, 열대어, 분재, 화초, 댄스, 퉁소, 섹스폰, 수석, 골동품수집 등이 올랐으며, 그중에서, 나는 서예를 선택하고 즉시, 직장이 가까운 서예학원에 등록한것 까지는 좋았는데, 고작 40분 남짓한 시간동안 붓글씨 쓰기연습을 하기 위하여 미리 2~30분간이나 먹을 갈아야 했으니... 먹을 가는 시간이 따분하여서 빨리 갈아버리려고 힘주어서 갈면 벼루에서 먹물이 넘치고, 손가락과 팔은 쉬 지쳐서 차츰, 짜증이 나서 그만둘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먼저 선생님께 이렇게 여쭈어 보았다.“선생님, 화방에서 갈아 논 먹물을 파는것 같은데…그걸 사다가 쓰면 안될까요?”,“안되요, 먹을 가는것도 수련이오” 단호한 어조로 거절을 하고 만다. 선생님은 먹을 가는 행위가 얼마나 심신수련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먹은 가는 동안에는 소나무의 은은한 묵향이 많이 나오므로 머리가 맑아진다. 정신을 집중하여 갈면 먹물에서 잘 갈아진 정성이 드러나며 글이 번지지 않고 잘 써진다. 먹을 가는 시간 동안 어떤 글을 어떻게 쓸것인지 생각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갈아 앉혀서 글쓰기가 신중하게 준비된다.
 그후로, 지금까지 글을 쓸때면 서두름이 없이 벼루에 먹을 천천히 갈아서 사용하게 되었는데, 어쨋든 노년에도 취미생활을 지속할수 있는 종목으로 서예를 선택한 것은 잘한 결정이였다. 종이(紙), 붓(筆), 먹(墨), 벼루(硯), 이 네가지의 문방사우(文房四友)만 준비되면 고매한 취미를 쉽게 시작할 수가 있다. 시작은 반이니까.
만성훈장
[출처:www.koreabraz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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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22 Feb 2018 21:19:00 +0900
(신숙자 선교사의 선교편지)거룩을 준비하라-1 http://nammicj.net/n_news/news/view.html?no=8969 신 선교사 사진.jpg
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해시피 숙소에서 12시에는 나가야 하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해시피에서 빠또스로 가는 뻐스는 하루 한 번 저녁 8시 반 밖에는 없다고 한다.남편이 후런데스크에 사정해서 2시까지 나가기로 하고 예배를 드리고 그날의 몫인 성경과 잠언을 읽고 기도를 마친 후에 해시피에 말씀을 전할 교회들과 주의 종들과의 약속을 재 확인하는 전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얼마 안 걸어서 대서양이 눈 앞에 펼쳐지고 이미 관광객들을 유치하려고 모래사장에 큰 파라솔과 의자들이 가즈런히 놓여저 있었다.
 쉬지 않고 출렁이는 바다 물결은 작은 파도에도 은빛 같은 날개를 펄럭이는 듯 춤을 추며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같았다. 비키니의 각양 각색의 남녀가 뚱뚱하면 뚱뚱한대로 날씬하면 날씬한대로 한껏 폼을 잡고 마치 반나의 횃숀 쑈가 세계적인 관광도시의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위풍을 드러내고 있었다. 예닐곱 살쯤의 여자 아이가 파도가 밀려 올 때마다 퐁당 얼굴까지 파도 속에 파묻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했다. 얼굴까지 퐁당 물속에 잠기는 아이를 보면서 늘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하면서도 얼굴은 남겨 놓거나 아니면 아예 몸통을 드러내고 있는 영적인 내 모습과 비교해본다.아버지와 엄마를 꼭 닮은 붕어빵 가족들이 눈에 띈다. “어쩜 저렇게 똑 같을까? 이왕이면 우리도 예수님을 꼭 닮은 붕어빵이 되고 싶은데....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힘쓰고 애쓰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던 주님을 정말 닮고 싶은데...성경은 주님을 꼭 닮은 믿음의 선진들을 얼마나 많이 소개하고 있는가?
 욥 8:8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이 말씀은 내 생애에 지표가 되어 성경 안에 수록된 인물은 물론 살아 있는 신앙인들에게까지 관심을 갖고 배우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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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오피니언>특별> Thu, 22 Feb 2018 21:03:00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