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의 기독교 인문학 강의)인문학으로 읽는 바울 생애(27) 바울을 심문한 벨릭스 총독 소개
2021/09/23 08:11 입력  |  조회수 :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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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이 천부장과 백부장의 호위를 받으며 가이사랴(Caesarea)로 이송됩니다.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Claudius Lysias)는 유대인의 폭동을 막고, 로마시민권자 바울을 보호할 의도로 이송을 결정했습니다. 유대인 폭동은 당시 로마 정부의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천부장은 자신의 친서(親書)와 함께 바울을 총독 벨릭스(Felix)에게 보냅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총독 벨릭스(Felix)를 만납니다. 벨릭스는 사도행전에만 등장하는 인물입니다(행23:24,26; 행24:3,22,24,25,27; 행25:14). 펠릭스는 원래 글라우디오 황제 어머니 안토니아 집안의 노예였습니다. 그는 노예에서 총독까지 된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그의 출세는 글라우디오 황제(행18:2) 총애를 받았던 그의 형 팔라스(Pallas) 덕분이었습니다. 척 스윈돌 목사는 팔라스(Pallas)가 글라우디오와 네로 황제의 재무장관이었다고 전합니다.

 

 유대 총독 벤티디우스 쿠마누스(Ventidius Cumanus)가 유대인의 미움을 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유대 지도자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갈등을 겪자 로마에서 그를 불러 살피는 중에 또 다른 죄를 발견하고 글라우디오 황제가 그를 해임합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 아들 요나단은 쿠마누스 후임으로 벨릭스(Marcus Antonius Felix)를 요청해 벨릭스를 유대 총독으로 임명합니다. 

 

 벨릭스 이름의 뜻은 ‘행복’인데 그는 탐욕 때문에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벨릭스는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을 제거하려고 암살자까지 동원한 잔인한 인물’로 평합니다. 그는 탐욕의 화신이었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벨릭스가 ‘노예의 마음을 가지고 왕의 권세를 휘둘렀다’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가 했습니다.

 

 벨릭스는 악명 높은 총독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벨릭스 후에 유대를 다스렸던 알비누스(Albinus)총독은 전임자 벨릭스가 뇌물을 받고 반란에 가담했던 죄수들까지 풀어주었다고 불평했습니다. 남아있는 모든 역사자료들이 벨릭스의 부정부패에 대해 의견이 일치합니다. 성경은 벨릭스가 바울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음을 알면서도 바울에게 뇌물을 기대하고 그를 계속 붙잡아 두었다고 기록합니다(행24:26). 이는 벨릭스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일치하고, 그의 인간 됨됨이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벨릭스는 양심이 없는 기회주의자였다고 척 스윈돌은 강조합니다. 벨릭스는 치안을 위한다며 강도로 분류된 400명을 죽입니다. 아울러 벨릭스는 ‘시카리(Sicarii)라는 강도단에 의해 대제사장 요나단이 살해된 사건 배후 인물로 지목되었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요나단이 벨릭스가 총독이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었습니다. 벨릭스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노예 출신 벨릭스는 3명의 왕실 출신 여인들과 결혼했습니다. 폴란드 출신 죠지 펠릭사(Zony Feliksa)는 “벨릭스의 아내들(The wives of Felix)”이라는 논문에서 벨릭스의 세 아내를 설명합니다. 그는 타키투스 자료를 인용하며 벨리스의 첫 아내는 톨레미왕조의 마지막군주인 클레오파트라7세의 손녀(혹은 증손녀) 모레타니아의 드루실라(Drusilla of Mauretania)라고 합니다.

 

 벨릭스 둘째 아내는 헤롯대제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이자 헤롯 아그립바 2세의 누이동생 드루실라입니다(행24:24).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처형했고 베드로를 투옥한 사람이고, 가이사랴 극장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연설을 하고 하나님 진노로 죽었습니다(행12장). 헤롯 아그립바1세는 세 딸을 두었는데 둘째 딸이 베니게, 막내가 드루실라입니다. 드루실라의 언니 베니게가 친형제 아그립바 2세(행25:23)의 아내입니다. 권력을 탐했던 헤롯 가문의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미모와 발랄한 성격으로 유명했던 드루실라는 어린 나이에 소아시아의 콤마게네(Commagene) 왕자 에피파네스(Epiphanes)와 약혼했고, 15세에 수리아의 작은 왕국 에메사(Emesa)의 아시수스(Azizus)왕과 결혼했습니다. 벨릭스는 결혼한 드루실라에 반해 그녀를 설득했습니다. 드루실라는 아시수수왕과 이혼하고 벨릭스의 둘째 부인이 되었습니다. 벨릭스가 유대총독으로 부임 전 사마리아 사령관 시절에 드루실라를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드루실라는 유대의 정세에 밝았습니다. 벨릭스 총독이 바울을 재판할 때에 드루실라는 유대교인과 그리스도교인의 분쟁에 대해 잘 알았을 것이고, 아마도 바울에 대한 산헤드린 지도자들의 분노와 고소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남편 벨릭스에게 이런 내용을 자세하게 알려 줬을 것입니다(행24:22). 그래서 벨릭스는 바울의 결백을 알았습니다.

 

 당시 벨릭스는 ‘피의 대학살’을 통해 유대인들의 폭동을 진압한 사건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탐욕과 폭정을 일삼던 벨릭스는 결국 유대인 지도자들의 진정서가 황제에게 전달되어 총독에서 물러나 로마로 소환 당했다가 폼페이로 유배당했습니다. 성공회 지도자 F. W. 파라(Farrar)는 “벨릭스가 노예 중에 가장 사악했으며, 모든 시대에서 가장 악했으며, 모든 도시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었다.”라고 정리했습니다. 

 

 요세푸스는 드루실라와 벨릭스는 아들 아그립바를 낳았다고 합니다. 벨릭스, 드루실라 그리고 아들 아그립바는 별장의 도시 폼페이로 유배당했습니다. 경관, 맑은 공기, 그리고 좋은 시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휴양지였던 폼페이로 유배된 것도 형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폼페이 화산이 터졌습니다. AD 79년 8월 24일에 벨릭스 일가족은 화산에 덮여 몰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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