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의 쓴소리, 단소리)‘먹즐완박’도 감사
2021/09/23 08:08 입력  |  조회수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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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환 목사(크리스천위클리 발행인)

 

지난 21일은 추석이었다. 우리나라 최대명절 추석이 미국에서는 푸대접을 받는다. 잊고 살기 때문이다. 추석 따져볼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게 고단한 이민자들의 일상이 아닌가?

 추석의 대표적인 명절음식은 송편이다. 그러나 내게는 따로 있다. 쌀밥이다. 그 흔해 빠진 쌀밥이 명절 음식이라고? 나의 어린시절에 쌀밥은 흔해 빠지지 않았다. 겨울철에는 쌀밥이지만 봄철 보리고개를 지나면서 쌀독에 쌀은 말라가고 그때부터 보리밥이었다. 보리밥으로 한여름을 지나다 보면 손님 올 때가 그리웠다. 손님이 오면 그날엔 검은 보리밥 사이로 흰 쌀 톨이 보였기 때문이다. 가난했던 내 어린시절 시골의 여름 식단 풍경이었다. 

 그렇게 보리밥으로 한여름을 보내고 들판에 벼가 익기 시작하면 이미 세상을 떠난 나의 큰 형님은 논에서 벼를 베다가 열심히 가을 햇살에 말리곤 했다. 추석에 맞춰 햅쌀을 만들어 쌀밥으로 제사상도 차리고 추석 명절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말린 벼알을 훑어서 절구에 넣고 그걸 빻아서 하얀 쌀을 만들어 내셨다. 그리고 추석날 아침상엔 드디어 그 쌀밥이 밥상에 올라온다. 연두색 햇콩이 듬성등성 박혀 있는 그 눈부신 햅쌀밥. 그 맛을 도대체 무엇으로 형용할 수 있을까? 지구촌 여기저기를 구경 다니며 여러 나라 음식을 섭렵해 보았건만 어린시절 추석날 아침상에 올랐던 그 하얀 쌀밥에 비할 맛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쌀밥이 이젠 나를 해코지하는 불명예 식품으로 변해 버렸다. 먹고 싶어도 못먹는 신세가 된 것이다. 담당 의사가 최근 내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당뇨병 전단계(prediabetes) 환자란 병명을 안겨주었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목사님과 언젠가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조 목사님, 당뇨병의 비극은 먹는 즐거움이 끝장났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 먹는 즐거움을 빼면 뭐가 남는다고 이제 끝장이라니! 

 그런데 이를 어쩌나! 정신차리고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우선 중단해야 할 규제식품 제1호가 바로 쌀밥이었다. 지금까지 인생 살아오면서 쌀밥과 동행해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것과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탄수화물을 우선 줄여야 하기 때문이란다. 

 또 있다. ‘빵떡면’은 이제 불가식품이다. 그것도 카보 때문이다. 우리 식구들은 탄수화물이란 뜻의 ‘카보(carbohydrate)’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늘어나는 뱃살 제공자 카보 안돼! 당뇨병 제공자 카보 노 댕큐! 혈압 올려주는 카보는 절대 사양! 카보가 완전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아내와 마켓에 가면 슬금슬금 카트에 집어 넣는 게 빵이다. 팥빵. 내게 팥이 없으면 그건 빵도 아니다. 그래서 파리 바케트의 ‘몽둥이 빵’은 빵이 아니다. 그 빵도 이제 금지식품이다. 

 아내가 붙여준 내 별명은 ‘떡보’다. 난 떡을 좋아한다. 동창회에 가면 남은 떡을 슬쩍 내프킨에 싸서 핸드백에 넣고 오는 아내는 말도 없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잔다. 이튿날 아침이면 온데 간데 없다. 내가 들랑거리며 살곰살곰 해 치우기 때문이다. 그 떡보가 떡에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내 생일이면 우리 집 아이들은 내가 말을 안해도 어느 식당, 무슨 메뉴인지를 다 알고 있다. 이태리 식당, 메뉴는 해물 파스타. 중국집 우동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여도 난 이태리 식당의 파스타를 생일 음식으로 청할 만큼 좋아한다. 그 파스타와도 결별을 고해야 한다. 그럼 뭘 먹고 산다? 풀때기만 먹고 살라고?

 그런 하소연 따위로 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살고 싶으면 실천에 옮기고 죽고 싶으면 무시해도 된다. 두 가지 옵션 밖에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았다고 ‘먹는 즐거움 완전 박탈(먹즐완박)’이란 고약한 난관에 직면하게 되었는데도 싱글싱글 즐거운 것일까? 오히려 다윗의 18번 찬양시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가 입가에서 저절로 흘러나오고 있다. 내 건강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방송’이 되레 고맙기 때문이다. 

 그냥 잡식성 입맛 취향대로 먹고 살았더라면 어느 날 나는 다리를 자르고 장님이 되고 처치 곤란한 퇴물로 변해가고 있었을 텐데 하나님이 의사를 통해 경고장을 보내주셨다고 생각하니 천만다행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먹는 음식 까탈스럽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돼지고기는 그들에게 ‘먹즐완박’의 시범케이스다. 무슬림도 돼지고기 안먹기는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결식품이라고 주장하는 ‘코셔’나 이슬람의 할랄식품도 따지고 보면 모두 먹즐완박이다. 

내가 즐겨 먹는 추어탕의 미꾸라지나 장어는 코셔 식품이 아니다. 콜레스트롤 죽이는 데는 비교될 게 없다는 고등어도 물론 유대인들에게는 먹즐완박이다. 새우도 마찬가지다. 그런걸 보면 하나님이 레위기에서 이건 먹고 저건 먹지 말라고 율법으로 못 박아 놓은 먹즐완박 식품들은 따지고 보면 모두 인간의 건강을 지켜주시기 위한 그분의 섭리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먹는 음식 갖고 교조적으로 너무 깐깐하게 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집어 놓은 예수님의 명언이 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막7:16~17). 와! 주님께서 생전에 이 말씀을 실수로 생략하고 돌아가셨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돼지고기, 고등어, 추어탕, 새우튀김은 평생을 살아도 못 먹고 죽어갔을지도 모른다.

 율법을 지키기 위한 먹즐완박은 피동태지만 주님의 거룩한 성전인 내 몸의 건강관리를 위한 먹즐완박은 능동태다. 이제부터라도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각오가 생겼으니 당뇨병 할애비가 처들어와도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먹즐완박도 감사. . 한량 없는 하나님 은혜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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