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의 기독교 인문학 강의)최초의 역사책 헤로도토스의 ‘역사’
2021/01/22 03:22 입력  |  조회수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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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제(구약, 다리오)는 그리스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에게 항복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합니다. 분노한 다리우스는 대군을 이끌고 아테네를 공격하여 아테네에서 40여Km 떨어진 마라톤 평원에서 전투를 벌입니다. 아테네는 1만 명의 기갑병으로 페르시아 10만 대군을 협곡으로 유인해 괴멸시켜 마라톤 전쟁에서 크게 이깁니다.


 이 마라톤 전쟁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아테네 군인 페이피피데스가 마라톤 평원을 가로질러 달렸답니다. 전쟁의 소식을 기다리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우리가 승리했다. 아테네 시민이여, 기뻐하라!”는 소식을 전하고 숨을 거두었고, 페이피피데스가 달린 42.195Km를 기리며 마라톤 경기를 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될 때 언어학자 이셀 브레얼 교수가 쿠베르탱 남작에게 이 고사를 전함으로 올림픽의 마라톤 경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마라톤의 유래는 인류 최초의 역사책인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통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납니다. 페이피피데스는 페르시아 군이 마라톤에 상륙한다는 소식을 듣고 200Km를 이틀에 달려 스파르타에 가서 지원군을 요청한 전령입니다. 아테네의 끈끈한 동맹이었던 스파르타는 파병을 결정했으나 만월에 출전하지 않는 다는 전통(혹, 종교적 이유) 때문에 파병을 못하고 아테네와 기타 동맹 도시국가 연합군이 피르시아 군을 물리칩니다.    


 인류 최초의 역사책으로 알려진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기원전 440년경 작품입니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가 이 책의 제목으로 사용한 ‘히스토리아’는 원래 ‘조사’, ‘연구’란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헤로도토스가 책 제목으로 사용하면서 이 말이 역사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헤로도토스는 인간의 관습과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고대 근동역사를 조사하고 연구해서 인류 역사의 불멸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전 9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전쟁의 실상을 기록할 목적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페르시아전쟁은 당시 근동의 패권국가인 페르시아 제국과 아테네를 중심으로 결성된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 사이의 전쟁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사이지만 전쟁이야기만 국한된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인 이집트, 에티오피아 그리고 여러 민족들의 인류학적 그리고 민족학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알려집니다. 헤로도토스가 여행한 여러 지역의 문화, 풍습, 역사도 폭넓게 다루었습니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에 정통했습니다. 페르시아는 성경에서 등장하는 파사입니다. 페르시아는 키루스 2세(구약, 고레스)가 세운 나라입니다. 고레스왕은 인간의 기본권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였고, 군인들에게 점령지 주민들을 약탈하거나 위협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또 그는 점령지를 개발하려는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구약 에스라서의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을 제국으로 세운 왕은 ‘다리우스’(구약, 다리오)입니다. 그는 페르시아를 동쪽으로는 인도, 서쪽으로는 그리스 영역까지 침범하여 고대의 가장 큰 제국으로 키웠습니다. 그를 이은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구약, 아하수에르)는 아테네와 벌인 `살라미` 해전에 패하고 패망의 길로 갑니다.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가 크세르크세스 1세의 왕비입니다.


 헤로도토스는 ‘역사’를 기술하면서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증언과 전해들은 풍문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런 역사 기술이 사실과 다르고 내용에 편향적인 시각이 들어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루키아노스는 헤로도토스를 거짓말쟁이로 비난합니다. 학자들도 헤로도토스가 자신의 여행한 범위를 과장했다고 주장하며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평가절하한 학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고고학과 문헌학의 발달로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사실임이 차례로 드러나면서 헤로도토스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습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역사학과 인문학에서 소중한 자료로 인정을 받게 되고 헤로도토스도 역사의 아버지, 인류학의 아버지로 인정받습니다.


 헤로도토스는 터키의 해안도시 할리카르네소스 출신입니다. 그는 약 30세에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등지를 여행한 것으로 추측되며 이 여행기간 중에 자료를 꼼꼼하게 수집,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남긴 사료를 통해 그는 상당히 개방적인 세계관과 타민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었고 타민족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함에 있어서 존중과 균형을 잃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자료는 역사적으로 상당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2권에서 이집트 문명에 관하여 자세한 기록을 남기는데 고대 이집트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헤로도토스가 본 강대국 페르시아가 망하는 이유는 초심을 잃은 페르시아의 오만과 인권의식의 부재로 봅니다. 고레스 왕 이후 왕들이 정복국의 문화를 멸시하고 그리스 같은 약소국을 깔보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반면 아테네를 위시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인권과 자유를 지키려는 맹렬한 저항으로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시대의 큰 가르침입니다. 오늘도 인권을 멸시하지 않고 자유를 보장하는 기관과 조직이 건강하게 세워지는 것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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