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학 산책)Herbert Gorge 웰스의 “무덤”
2019/10/17 21:07 입력  |  조회수 :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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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인도에 매우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습니다. 왕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왕비는 결혼한 지 1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비를 잃은 왕은 너무도 슬퍼서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몇 일간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왕은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 무덤을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무덤만으로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왕은 왕비의 무덤 곁에 기념이 될 만한 것을 세워 왕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리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자신의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석수와 조각가를 동원해서 무덤의 동쪽에 자신을 상징하는 젊은 용사의 동상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그리고 또 무덤의 서쪽에 왕가를 상징하는 호랑이 동상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왕비의 무덤다운 품위가 보였습니다.

 그렇게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왕비의 무덤가를 돌아보는데 왕의 마음은 여전히 아쉽고 허전하였습니다. 왕은 왕비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내 아내가 살아있었다면 내가 멋진 별장이라도 지어 주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왕은 무덤의 남쪽에 호화로운 별장을 하나 세웠습니다.

 그렇게 남쪽, 서쪽, 동쪽을 가꾸고 나니 북쪽이 비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북쪽에 자신의 권력을 상징하는 웅장한 성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시간이 날 때마다 왕비의 무덤을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동쪽에는 자신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용사의 동상, 서쪽에는 왕가의 상징인 호랑이, 남쪽에는 재력을 과시하는 호화로운 별장, 북쪽에는 권력을 상징하는 웅장한 성이 서로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왕은 이제야 자신의 왕비에게 빚을 갚은 느낌이었습니다. 왕은 자신이 사랑했던 왕비를 위한 특별한 공원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왕은 이 공원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해외 사절단이 오면 왕은 그들을 이끌고 와서 자신의 왕비를 위해 만든 이 특별한 공원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이 궁궐을 거닐며 왕비의 무덤이 있는 공원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공원을 보면서 왕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주변은 더없이 아름답고 멋진 조화를 이루는데, 한 가지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왕비의 무덤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언짢아진 왕은 신하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봐라, 가운데 있는 저 무덤을 당장 치워버려라!” 그래서 신하들은 그 아름다운 정원에서 왕비의 무덤을 파냈습니다.

 이상은 영국의 소설가요 사회 비평가인 Herbert Gorge 웰스(Wells)의 단편 ‘무덤’의 줄거리입니다. 웰스는 문화 비평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당시 영국 사회를 풍자하며 권력과 인간의 부조리를 지적하는 장, 단편의 소설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들 중에는 당시 정치계와 종교계 기득권층의 모순과 타락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그는 또 공상 과학 소설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국내에서는 ‘우주 전쟁’, ‘투명인간’, ‘마술가게’ 등으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웰스는 1866년 켄트 브롬리 (Kent, Bromley)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사업은 실패하였고 가정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웰스와 형제들은 포목상에서 일하였습니다. 웰스는 포목상 점원, 화학 악품상 보조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 17살에 미드허스트 문법학교에서 교육 실습행 자리를 얻어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교육 실습행은 학생이면서 교사 보조 역할을 하는 독특한 위치입니다.

 충실한 교육 실습행 생활을 통하여 실력을 쌓았던 웰스는 18살에 대학에 진학합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 런던의 과학사범학교에 입학한 것입니다. 런던 과학 사범대학교에서 웰스는 유명한 생물학자 T.H.헉슬리에게 3년간 과학을 배웁니다. 웰스는 학교를 졸업한 후 얼마간 과학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문학의 길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대학에서 과학 공부와 과학교사로 보낸 세월이 훗날 그가 과학 공상 소설을 쓰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웰스는 1893년부터 단편소설을 쓰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1895년 타임머신을 발표해 큰 명성을 얻습니다. 이후 ‘모로 박사의 섬’, ‘투명인간’, ‘우주 전쟁’ 등의 과학 공상 소설들을 발표하며 성공적인 작가의 길을 걷습니다. 그는 약 100편 정도의 과학 공상 소설을 썼습니다. 아울러 웰스는 문화 비평가로 정치, 종교,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통렬하게 풍자하는 작품들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웰스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제대로 된 역사 교과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324쪽에 이르는 ‘세계사 대계(The Outline of History)’(전 3권)를 펴냈습니다. 그리고 1922년 더 간결하고 쉬운 ‘세계사 산책(A Short History of the World)’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현재도 세계사 입문 추천 도서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웰스는 현실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인권 문제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인권을 다루는 다수의 단편을 남겼습니다. 그는 1946년 런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HG 웰스(Herbert Gorge Wells)는 인도 민화를 각색하여 단편소설 ‘무덤’을 완성했습니다. 소설에서 왕이 왕비의 무덤 주변을 가꾼 것은 왕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사랑이 식어지면서) 왕비의 무덤은 주변의 아름다움을 깨뜨리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간주됩니다. HG 웰스는 비평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무섭게 변질되어 가는 당시 교회와 신학의 타락과 모순을 질타했습니다.

 웰스는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에 의해서 세워진 신학이 예수님을 몰아내는 비신화화 (demythologization)작업을 하는 것을 조롱했습니다. 아울러 예수 없는 신학이 만든 예수 없는 교회의 초라한 모습을 풍자하였습니다. 물론 예수 없는 교회는 예수 없는 신자를 양산하여 비극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와 신학에 ‘예수님의 임재’를 확인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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