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0분 묵상)48. 고난보다 더 큰 시험
2019/05/09 22:17 입력  |  조회수 :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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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목사(헤브론교회 담임)
 
[사도행전 14:8-18]       
 이고니온에서의 박해로 루스드라로 피신한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서 다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루스드라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기에,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처음으로 이방인에게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8절을 보면 루스드라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낼 한 사람을 준비하셨는데, 그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이 만난 앉은뱅이는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만난 앉은뱅이 치유 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베드로가 만난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가 유대인의 신앙적 무능력을 상징한다면,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는 이방인의 영적 상태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9절에 보면,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주목한 것은 바로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사람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9절에 나오는 ‘주목하여’는 성전 미문 곁에서 앉은뱅이를 바라보았던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쓰였던 단어입니다(행 3:4). 마치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그러했던 것처럼 바울도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를 주목하였습니다. 그러나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는 구걸할 수 있을까 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였지만(행 3:5),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는 바울의 전하는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에 주목하고 있는 앉은뱅이의 믿음을 바울이 본 것입니다. 9절 “바울이 말한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앉은뱅이는 말씀을 듣고 붙잡았기에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구원받을 믿음’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구원받지 못할 믿음’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얻는 믿음’과 ‘구원을 얻지 못하는 믿음’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를 믿고, 친구를 믿고, 은행을 믿습니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비행기를 타는 것도 그 교통수단이 우리를 안전하게 목적지에 데려다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매주 교회에 나가서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한다고 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받게 됨을 믿는 바로 그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어야만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 믿음으로 바울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일어섰고 그리고 걸어갑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역사를 본 이방인들 가운데 소동이 일어납니다. 11절을 보면 그들은 자기들의 방언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라고 하면서, 바나바를(제우스)로, 바울은(헤르메스)라고 외치며 제사를 드리려 합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영적으로 무지한 루스드라 사람들을 보며 깊은 슬픔과 애통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15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고넬료가 베드로 앞에 엎드렸을 때에 베드로가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행 10:26) 라고 말했던 것처럼,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 앞에 제사를 드리려고 할 때에 바울과 바나바도 동일하게 외쳤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그들은 이방인들의 환호 속에서도 변질되지 않습니다. 고난의 땅 이고니온에서도, 영광의 땅 루스드라에서도 바울과 바나바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이고니온의 고난’도 어렵지만 ‘루스드라의 영광’은 더 어렵고 힘든 시험입니다. 바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내 성공과 영광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복음과 영광을 위해서 달음질하는 주의 제자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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