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문학 산책)펄벅의 “자라지 않는 아이”
2019/02/07 21:24 입력  |  조회수 :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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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지”라는 소설의 작가로 알려진 작가 펄벅(본명:Pearl Sydenstricker Buck)은 미국인 여류 소설가입니다. 펄벅은 1938년에 미국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언론인들이 선정하는 퓰리쳐상도 수상하였습니다. 중국에 살았던 펄벅은 한국과의 인연도 깊습니다. 그녀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박진주(朴眞珠)라는 한국 이름도 지었고,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하여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새해’ 같은 한국 사회를 소개하는 소설도 썼습니다. 또 펄벅의 유지로 건립된 펄벅재단은 지금도 다문화 가정 자녀 지원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펄벅이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장애아인 첫째 딸 캐롤을 돌보며 경험한 아픔 때문입니다. 첫째 딸 캐롤은 말이 늦었고 산만하고 집중을 못했답니다. 펄벅은 아이가 이상했지만 그저 조금 이상할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답답했던 펄벅은 유명한 의사를 찾아 미국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완치를 희망하며 병원들을 헤맬 때였습니다. 어느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나오던 펄벅에게 어느 독일인 의사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제 말을 들으세요! 아주머니 아이는 정상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속지 마세요. 아이는 아주머니의 평생 짐이 될 겁니다. 짐을 질 준비를 하세요.” 그야말로 하늘 무너지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제야 그녀는 현실을 직시하며 영영 자랄 수 없는 아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펄벅은 정신을 차리고 캐롤의 장래를 위해 글자를 가르칩니다. 글자를 알면 딸이 현실을 이해하고 지능도 좋아질 것만 같아 하루 종일 딸 곁에 붙어서 글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습니다. 열심히 딸에게 글자를 가르치던 어느 날 펄벅은 연필을 쥐고 있는 딸의 손이 땀으로 흠뻑 젖은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기쁘게 하려고 너무 힘들게 글을 배우고 있구나?’ 펄벅은 다시 정신을 차립니다. 그녀는 글자나 숫자를 무리하게 딸에게 가르치는 것이 딸의 행복을 위한 길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딸이 즐겁게 놀 때 행복하게 웃던 모습을 생각하며 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장애인 학교를 찾습니다. 장애인 학교는 딸에게 행복한 만남이 가능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베인랜드 특수학교입니다. 캐롤은 평생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20세기 초 지적장애에 대한 이해도는 굉장히 낮았습니다. 당시 서양의 대다수 유명인사들은 정신지체아 자녀들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정신지체가 왜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고 그 아이와 가족들은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펄벅은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내 놓습니다.

 펄벅의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 겪은 일이기 때문에 이야기하기 더 힘들다. 오늘 아침 겨울 숲 속을 한 시간 남짓 걸어 다닌 끝에 마침내 이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들이 나에게 물은 것은 대개 두 가지였다. 첫째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하느냐는 것과, 둘째로 이런 아이를 갖게 된 슬픔을 어떻게 견뎌야 하겠냐는 것이었다. 첫 번째 질문에는 답할 수가 있었지만, 두 번째 질문은 정말 힘들었다. 떨쳐버릴 수 없는 슬픔을 인내하는 법은 혼자서 배워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내는 시작일 뿐이다. 슬픔을 받아들여야 하고, 슬픔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그에 따르는 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슬픔에는 어떤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은 지혜로 모양을 바꿀 수 있고, 지혜는 기쁨을 가져다 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행복은 줄 수 있다.” 이 글은 소설의 서두이지만, 결국 이 소설의 결론입니다.

 펄벅은 딸의 장애를 공개하기까지 30년 걸렸답니다. 그야말로 큰 용기가 필요했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아픔을 공개한 것은 자신과 같이 아픔을 겪는 장애아 가정들과 그 어머니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발간되자마자 반응이 엄청났습니다. 사회적인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장애우 가족들의 아픔이 치유 받게 된 것입니다.

 1950년 이 소설이 발표될 때 지적장애의 원인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지적장애를 수치스럽게 느꼈습니다. 이 책은 로즈 케네디가 자신의 지적장애아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정신 질환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태도를 바꾸는데 기여했다고 전해집니다. 여하간 그 시대에 지적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의 아픔을 스스로 세상에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세상을 치유하였습니다. 장애인과 가족들도 치유가 필요했지만 장애인을 경멸하고 죄인취급한 사람들도 치유가 필요했었습니다.

 이 소설은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소설을 통해 전해지는 펄벅의 경험은 정신지체아를 가진 부모들에게 위로의 메시지기도 하고 고통 극복의 지침서가 되기도 했습니다. 엄마로서 자신의 아이가 가진 장애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 사회의 편견으로 인한 아픔, 정신지체아와 함께 살아가는 실제적인 지혜들이 진솔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적인 작가의 섬세한 관찰과 묘사는 아픔을 느끼게 하고 아픈 자에게 위로와 용기가 됩니다.

 이 소설은 정신 성장 안내서입니다. 장애아동을 가지게 되면서 펄벅 여사는 세상 사람들을 둘로 구분하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기준은 슬픔을 아느냐? 모르느냐? 입니다. 펄벅은 떨쳐버릴 수 없는 인생의 슬픔을 아는 사람과 그런 슬픔을 모르는 사람을 구분했다고 전해집니다. 떨쳐 버릴 수 없는 슬픔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인생의 참된 지혜를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떨쳐버릴 수 없는 인생의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펄벅은 섬세한 상황 묘사로 장애아 자녀를 둔 어머니의 처절한 아픔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라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퍼렇게 멍든 가슴이 이 소설에 비쳐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처절한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성숙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고통 극복 안내서입니다. 이 소설은 삶의 고통을 간접 체험케 하며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여 고통을 극복하는 지혜를 갖게 합니다. 이런 점에서 소설 “자라지 않은 아이”는 독자들의 다양한 고통과 아픔을 극복하게 하고 자라게 하는 자기 개발서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필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기회를 얻어 고통을 객관화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소설을 통해 감춰둔 아픔을 공개할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픔은 내어 놓을 때에 완전한 치유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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