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선 목사(베데스다교회 원로)
파라과이 한인 이민자 브라질에 입국하여 불법체류자가 됨
1975년 파라과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영빈관에서 파라과이 대통령에게 만찬을 베풀어 주었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인들을 외국으로 이민을 보내 이스라엘 민족들과 같이 그곳에서 풍요한 삶을 살면서 여유가 생기면 조국인 한국으로 달라를 송금하여 조국의 부흥과 발전을 돕게 하려는 이민정책을 권장할 때였다. 그래서 이민자의 여권 수속이나, 신원조회는 최대한으로 빨리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해당 부서에 하달해 놓고 있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파라과이에서 한인들을 이민자로 받아줄 것을 파라과이 대통령에게 요청하였더니 기꺼이 허락을 했다. 그리고 양국 간의 협약을 맺은 후에 이민을 모집하였다. 1970년대의 한국은 지금과 같이 발전하지를 못하여 국민들의 삶은 어려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좁고 가난한 한국을 떠나서 넓고 풍요한 나라에서 살기를 원했다. 그런데 제일 선망의 나라는 미국이었지만,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웠다. 그래서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이민을 가서 남한 땅의 74배나 되는 넓은 땅에서 제품을 하면서 돈도 벌고, 풍성한 과일을 먹고, 주말이면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싼또스(Santos) 바다로 나가서 즐거운 주말을 보내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남미 브라질로 이민을 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1972년을 기해서 농업이민을 포함해서 정식 이민은 막혀 있고 단지 브라질에 거주하는 가족의 초청으로만 이민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같은 남미이며 브라질의 바로 인접국인 파라과이라도 가겠다는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이 파라과이로 이민신청을 했다. 그리고 약 5,000여명이 되는 사람들이 비자를 받고 브라질 쌍빠울로 공항을 경유하여 1976년 1월에 파라과이 아슌시온 공항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실망이 너무 컸다. 지금은 700만 인구가 된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500만도 안되는 인구를 가지고 있었고, 시내에는 고층 건물이 많지도 않지만, 정부의 종합 청사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