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섭 장로(주임재 히즈교회)
저희들이 그곳에 도착한 1월은 한 여름 더위였습니다. 42년 전 브라질로 직행(이민)할 길이 없어 빠라과이를 거쳐 가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빠라과이 아슌시온에서 며칠을 머무는 동안 어린 딸아이가 열이 나고 몹시 아파 참 슬펐습니다.
어렵사리 쌍빠울로에 도착하여 조마조마한 이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서투른 바느질을 하다가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웅켜 쥐고 김약국을 찾아와 치료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보았다......”는 몇 주 전 남미복음신문 <브라질 한인이민역사조명> 기사를 보면서, 그 시절 제가 겪었던 기억을 새롭게 떠올렸습니다.
그 때는 모두가 그랬었지요. 그저 젊음과 패기 하나로 맨 땅에 헤딩하는 식이었으니까요. 살아야 한다는 치열한 의식 하나로 버틴거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때가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어둡고 외로워 교회를 찾았고 거기서 빛과 소망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겪었던 어렵고 힘든 상황들이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사는데 값진 경험으로 자산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름도 잊었지만 익숙했던 거리들, 그리운 얼굴들이 있습니다. 초창기 시절 뿐 아니라 거기서 살았던 11년 동안 저희들에게 베풀어 주신 잊을 수 없는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내 마음의 고향, 브라질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김우선 목사님, 신숙자 선교사님께 안부드리며,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