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란 무엇인가?)기독교의 본질-23
2018/10/04 00:1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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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성결교회 양성환 선교사(오레곤선교교회 파송)
 
하나님으로 인한 새로운 삶-거듭남(중생, 신생, 재생)
 1. 신약성서에서 거듭남-요한복음 3:3, 5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내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누구든지 물과 영으로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헬라어에 ‘새롭게 태어나다’라는 표현에는 곧 ‘위로부터 태어나다’를 의미할 수 있다.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만이 주실 수 있는 새로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는 ‘물과 영’을 통해서 일어난다. 예수께서 죽음의 섭리에 참여한다는 외적인 표시로 세례를 받으시고, 인간의 내부로부터 변화시키는 영인 성령을 받음으로써 새로운 존재가 되심을 보여주셨다. 넓은 의미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5:17, 갈6:15)’과 ‘새 사람을 입는다(엡4:24, 골3:10 )’는 바울의 말씀도 거듭남의 주제에 속한다. 그러므로 거듭남이라는 개념은 신약성서의 전체적인 증언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을 창조적으로 새롭게 형성했다.
 2. 거듭남에 대한 웨슬레의 이해-웨슬레는 칭의와 거듭남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강조했다. 칭의와 거듭남은 동일한 내용을 말하는 상이한 표현이 아니다. 칭의와 거듭남은 시간적으로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하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구별된다. 칭의는 관계의 변화를 의미하며, 거듭남은 본질의 변형을 의미한다. 칭의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시지만, 거듭남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다. 칭의는 우리를 원수에서 자녀가 되게 하신다. 거듭남을 통해서 우리는 죄인으로부터 성도가 된다. 칭의에서는 죄의 정죄가 제거되고, 거듭남은 죄의 세력이 제거된다. 그러므로 두 사건은 시간적으로 함께 속하지마는, 본질에서는 전혀 다르다.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그리스도인의 근본적 특징인데, 그것은 믿음, 소망, 사랑이다. 거듭남의 목표는 거룩함, 곧 하나님과 일치하여 사는 삶이다. 거룩함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왜냐면 ‘거룩함이 없이는 누구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위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동시에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거듭남의 목표로 제시한다. 인간이 칭의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면, 그때 그는 그 자신 안에 평안을 찾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고, 그 행복은 거듭남을 통해 인간에게 주어진다. 당신은 거듭 나야 한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거듭날 수 없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것은, 거듭남의 선물을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거듭난 사람들이 사는 새로운 삶의 근본적인 특징 하나는,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가운데 사는 것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한 아이를 보여 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한다(막10:15/눅18:17/마18:3). 어린이들은 받아들임으로써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꺼이 빈손을 내밀 수 있다. 어린이들이 어리고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올바른 만남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된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약속이 구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축복과 일치하는 것은 놀랍다. 하나님의 나라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린이 같이 되라”는 촉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라는 초청이다. 예수께서 기도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칭호가 “아바”(아빠)는 갓 태어난 아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의 품에 기대는 것과 같다. 다른 요소는 전자와는 달리 갈라디아서 4장 1-7절에서 우리는 성숙한 아버지-자녀 관계는 성숙한 자녀들이 아버지와의 교제 가운데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아버지가 잃어버렸던 아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준 것은 성숙한 아들로 인정하는 것이며, 또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는 책임적인 동반자 관계가 본질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 두 가지 차원을 항상 함께 가지고 산다. 신약성서적으로 말해,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이며, 이는 하나님의 영이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이는 다시 ‘상속자’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미래의 영광에 참여자가 되었다는 소망과 연결된다(롬8:16-17).
 3. 정체성의 변화-거듭남의 시작은 전적으로 새로운 출발을 말한다. 하나님은 죄인을 그대로 받아들여 하나님 자신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그를 새롭게 창조한다. 그러나 옛 사람과 새 사람 사이에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 둘 속에 발견되는 나는 있는가? 루터는 이 문제를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해결했다.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갈2:19b, 20a)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나’는 간단히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대체된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인격의 교체가 아닌, 주인의 교체이다. 나는 단지 죽어 버린 것이 아니다. 율법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는 죽었지만, 이제 하나님을 위해서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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