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현 목사(샬롬교회 담임)
[본문 : 요한복음 11:17~57]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다니 마을로 가십니다. 그곳에 마중 나온 마르다를 만나십니다. 마르다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시는데,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마르다에게 설명하면서 물으십니다. 마르다는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하고서 마르다는 마리아를 조용히 부르러 갑니다. 마리아가 급히 오는 것을 보고서 위로하던 유대인들이 무덤에 가는 줄 알고 따라갑니다. 마리아도 역시 마르다처럼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한탄스럽게 이야기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가 우는 것과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비통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르다 가족과 유대인들이 울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비통해 하시면서 우셨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사랑하시던 이들의 슬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믿음 없음으로 인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는 말 곧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라는 말을 들으시고 비통해 하시면서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이 누구신지에 대한 바른 앎이 없음으로 해서 여전히 불신하고 비난하는 이들로 인하여 주님께서 비통해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에 도착하셔서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을 치워놓으라고 하자, 마르다는 벌써 죽은 지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시면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면서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매, 수족을 동여 맨 채로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이 사건을 본 유대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바리새인에게 가서 알립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열어서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합니다. 예수님을 그대로 두면, 백성들이 다 믿을 것이며,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백성을 위한 희생물로 삼자고 하자, 모두가 동의하여,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합니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데, 그들은 ‘우리 백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자신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 혹은 구원자라도 되는 듯이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과 아버지께서 아들의 말씀을 그대로 들으시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종교적인 논리와 자신의 자리 안위를 위해서 백성들과 로마인들을 핑계로 삼아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다’라고 하심으로, 백성들로 하여금 당신이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임을 믿고 따르게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끊임없이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누리기 위함으로 결코 믿음의 자리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은 내가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기득권, 종교적인 논리, 혹은 경제적 논리에 묻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믿음은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