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은 경쟁을 할 때는 무섭게 짓누르는 성질이 있다. 그러나 약한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동정심을 발휘하여 도와주는 성질이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백인들의 성격은 우월주의적이고 지배욕이 강하다. 그러나 약한 사람, 불쌍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면서까지 도와주고 어려운 일을 돌봐 주는 것이 미국 사람들의 보통 갖는 성질인 것이다.
 아내가 세탁소에서 일을 할 때의 일이다. 신청일 집사의 세탁소에서 일을 했는데 내가 그 집까지 픽업을 해 주면 신 집사와 함께 그 차를 타고 세탁소에 가서 일을 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내가 신 집사 집까지 가서 아내를 픽업해 왔다. 그런데 어느 날은 내가 신 집사 집까지 아내를 픽업해 주고 왔는데 내가 떠난 다음에 신 집사 가족이 이미 세탁소로 떠나고 말았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내를 그 집에 내려놓고 확인도 않고 온 것이다. 아내는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사람이 없다. 다 떠난 것이다. 아내는 앞이 캄캄했다. 영어도 못하고 하루 종일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막막했던 것이다. 문을 계속 두드리면서 “여보세요. 여보 세요”하고 불렀다. 미국 사람이 그것을 보고 “왜 그러냐”고 물었다. 손짓 발짓해 가면서 사정을 말했다. 그 미국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이곳 저곳에 전화 해 주었다. 나는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미국 사람은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고 아주 친절하게 집까지 픽업 해 주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친절하게 잘 도와주었다. 그 사람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한번도 만난 일이 없다. 무슨 보답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또 보답을 해도 우습게 생각 할 것이 분명하다. 할 일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생 한번 만난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친절을 베풀고 자신의 모든 일을 다 희생하고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을 도와주었다. 이것이 미국의 국민들에게 흐르고 있는 정신이다.
 우리가 미국에 와서 차를 구입하기 전의 일이었다. 우리 네 식구는 걸어서 K-Mart까지 갔다. 한 시간이상 걸었으리라 생각한다. 구경하면서 계속 걸어갔다. 물건을 사고 하나씩 들고 집에 가져오려니 까마득했다. 아이들은 지쳐서 길바닥에 앉고 아내도 지쳐 있었다. 우리는 길바닥에 주저앉았고 나는 집 방향으로 가는 차에 손을 들어 좀 태워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미국 사람이 혼자 타고 가다가 우리들이 길바닥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차를 세웠다. 그가 보니 틀림없이 멀리 가야 하는 상황인데 차가 없어서 고생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미국 사람은 차를 세우더니 우리보고 타라고 했다. 우리 식구들은 그 차에 탔다. 그 사람은 우리 동네에 내려 준 것이 아니라 우리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얼마나 친절한지 야, 참 미국이 좋구나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미국 사람을 보면 좀 무섭다. 무조건 무섭다. 그들도 우리를 보면 마찬가지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서로 긴장하고 경계한다. 그러나 이 분은 참으로 친절하게 데려다 주어서 미국 오자마자 미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인들이 무섭지 않게 느껴질 때 비로소 여유를 느끼고 진정한 미국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번은 이민 온 형제들 중 한 명인 남진 동생이 직장에서 오다가 길을 잃었다. 한참 동안 달리는데 아무리 달려도 이상한 길이다. 온지 두 달도 안 되었을 때였다. 그런 사람이 프리웨이를 탔으니 영어도 잘 안 되는 판국에 캄캄했다. 동쪽으로 가야할 것을 북쪽으로 계속 올라갔던 것이다. 한 시간 정도 타고 가다가 도저히 아닌 것 같아서 프리웨이를 내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니 백인이 나왔다. 못하는 영어를 손짓 발짓 해 가면서 이야기했더니 무조건 들어오라고 했다. 전화를 주면서 전화하라고 했다. 동생은 떨리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 사람은 아주 친절하게 쥬스도 갖다주고 쿠키도 갖다주고 바나나도 먹으라고 했다. 집으로 연락이 되어서 우리가 미국 사람과 통화하고 그 집을 찾아간 일이 있다. 미국 사람들은 참으로 친절하다. 도와 달라고 하면 열심히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영어를 몰라서 가르쳐 달라고 하면 신나서 열심히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런 여유가 없다. 나 자신도 얼마든지 도와 줄 수 있는 상황인데 그냥 지나쳐 버린다. 왜 그리 바쁜지, 왜 그리 여유가 없는지 모르겠다. 남이 어려움을 당할 때 도울 수 있는 상황에서 도와 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프리웨이에 차들이 꽉 차서 꼼짝 않고 있었다. 무슨 사고가 난 모양이구나 혼자 생각하면서 천천히 차를 몰고 갔다. 어떤 사람은 빵빵거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참지 못해서 빨리 가려고 했다. 그런데 조금 가까이 가서 보니 어떤 백인 노인이 프리웨이에 떨어져 있는 매트리스를 치우고 있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나 몰라라 하고 그냥 갈 터인데 이 노인은 남이 떨어뜨려 놓은 것을 길옆으로 치웠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참으로 미국 사람들의 정신이 이런 것이로구나. 나 같으면 그랬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프리웨이이기 때문에 위험하고 또한 영어가 불편하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하면 겁이 나서 누군가 하겠지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 할아버지에게 손뼉을 쳤다. 그리고 좀 여유있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