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목사(사랑의교회 담임)
하박국서는 하박국 선지자가 기록했는데 “하박국”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포옹을 하는 자’ 영어로는 ‘embrace’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문제를 안고 씨름해서 하나님의 대답을 얻어낸 사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예언하던 시대는 유다왕 여호야김 시대였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대단히 악한 왕이었는데 25세에 왕이 되어서 11년간 통치하는 동안 악만 저질렀습니다. 이 여호야김 왕은 얼마나 악한 왕이었는지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두루마리에 적어서 그것을 읽어주면 칼로 잘라서 불에 던지며 말씀을 거부하고, 무시하고, 파괴한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 심판을 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주전 605년에 유다를 침공해서 여호야김 왕을 쇠사슬로 결박해서 잡아갔고 그때에 젊은 사람들 다니엘을 포함해서 다니엘의 셋 친구들을 인질로 잡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한 시대가 이처럼 악한시대였습니다. 그 시대의 시대상을 표현하자면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공의가 굽어진 시대’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시대에 살았던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위해서 간구한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부흥을 위한 간구는 먼저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라는 하박국의 놀람이 나타납니다. 하박국의 두려움이 나타납니다. 하박국이 왜 두려워했습니까?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습니다. 이 말씀을 영어 성경에는 “O Lord, I have heard thy speech and was afraid”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당신의 말씀을 듣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는 뜻입니다. 하박국이 놀라고 두려워한 이유는 깜짝 놀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들었습니까? 자기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기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정확한 대답을 들으려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은 기도도 안하고 기도를 안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답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이시여 이 유다가 이렇게 부패하고 죄악이 관영한데 어떻게 하나님은 유다의 죄악을 묵인하십니까? 유다의 죄악을 무관심하십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하박국서 1장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유다의 죄악은 반드시 징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납고 성급한 백성 바벨론 나라를 일으켜서, 갈대아 언어를 쓰는 이 사람들을 일으켜서 유다를 징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대답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또 문제의식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우리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우리는 유다고 우리는 주를 섬기는 백성인데 저 바벨론은 우리보다 훨씬 악한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더 악한 사람을 들어서 덜 악한 사람을 치시는 것을 그대로 보십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박국 2장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이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이 무엇이라 대답하시는지 듣기 위해서 성문에 나가서 기다리고 성루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약탈을 일삼는 바벨론은 자기도 그 약탈을 일삼는 그것으로 당하게 될 것이고 치욕을 당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박국서 2장에서 하나님께서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여 이렇게 서로 약탈을 하고 약탈도 당하고 또 이렇게 물고 물리고 치고 당하고 이런 정치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라는 또 다른 질문에서 하나님은 현실이 변화무쌍하고 정치현실이 문제가 많다고 할지라도 “오직 의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 환란과 고통과 변화하는 현실가운데서 반드시 건져 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하박국에게 대답해 주신 것입니다.
부흥을 전제 조건으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하박국은 이런 문제의식이 부흥의 전제조건이라고 말하면서 부흥을 위해서 간구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하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기도의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이였습니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사람에게 의논을 해보아도 그 사람도 잘 모르고 나도 잘 모르고 그렇게 신통한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을 정확히 주십니다.
우리가 불신자와 다른 점은 불신자는 문제가 있어도 부르짖을 대상이 없으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문제가 있든지 부르짖어서 도움을 청할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간구한 내용은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 주의 일을 부흥케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왜 응답을 못 받습니까? 그것은 나의 일을 부흥케 해달라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내 것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약4:2-3을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기도 없는 부흥은 역사의 그 전례가 없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위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흥케 해 달라고 기도하면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개인이나 사회나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도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주여 우리는 진노를 받기에 합당한 존재입니다. 부흥을 간구할 아무런 공로도 없고 아무런 의로움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죄악에 대해서 진노만 부으시는 무서운 분이 아님을 하박국 선지자는 알기에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지금 하박국이 부흥을 위해 펴고 있는 논증은 “하나님은 진노하시다가도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심을 믿고 그것을 붙들고 기도한 것입니다.“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잘 한 것이 없지만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가정은 아무 복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오니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참 자랑할 것 없고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여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 국가가 벌 받아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처럼 하박국은 하나님을 향하여 불쌍히 여겨서 부흥을 이루어달라고 간구를 하였습니다. 하박국이 근거하고 있는 논리는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속성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잘 들어 주시는 기도가 바로 이런 기도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너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는데 나는 모르겠다.”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 하면 소경도 눈뜨게 하시고 문둥병도 고쳐 주시고 죄인 중 괴수도 용서해 주시고 십자가 우편 그 흉악한 강도도 “네가 나와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하시면서 천국을 확실하게 약속하시고 보증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라고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현재 우리 교포들의 사정은 하박국 선지자가 살던 시대와 같이 풍전등화(風前燈火) 가운데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모든 문제를 가지고 나아와 하나님의 정확한 대답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나의 일”이 아니고 “주의 일”이 부흥하기를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자기의 공로를 내세우지 말고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한없는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라고 간구하여 응답 받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