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수 목사(사랑의교회 담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열쇠 중에 하나는 믿음의 열쇠이다. 이 열쇠로 천국 문을 여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열쇠를 주셨는데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기도의 열쇠를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는 길이다. 자녀 된 우리는 기도할 때에 속에 있는 목마름이 해결되어지고 더 성숙되어 진다. 또한 기도는 사태를 역전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기도 쉬는 것을 여호와 앞에서 범하는 무서운 죄로 여겼다.(삼상12:23) 기도하는 것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기도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며 응답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한다. 기독교 역사에서나 성경 안에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은 인물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만방에 증거하고 선포하였다.
본문의 다니엘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다니엘이 메데 왕국의 총리로 세워져 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때 그 나라 다리오왕은 그 3명 중에 다니엘이 민첩하고 뛰어나므로 그를 수석 총리로 세우려 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세계는 늘 정적(政敵)들이 있다. 다니엘에게도 정적들이 생겼다. 그러나 그 정적들이 그의 흠을 잡으려고 조사해 보았지만 흠이 없으므로 결국 그들이 찾아낸 것이 다니엘의 신앙생활, 다니엘의 기도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상한 한 법을 만들어 왕의 도장을 받아 발표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인 즉은 30일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굴 속에 넣는 법으로 그 누구도 취소를 못할 법령이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다(10절)
나만의 기도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다니엘은 대 제국의 국무총리로 매우 분주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만의 기도시간을 소중하게 가진 자이다. 그것도 하루 세 번씩 기도하였다. 기도는 시간 많은 사람, 능력이 없는 연약한 사람, 잠이 없는 노인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과 복의 근원되심을 믿는 자, 기도의 응답을 확실히 믿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믿고 구하면 하나님이 분명히 응답해 주신다.(약1:6-7)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약5:16)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지금도 기다리고 계신다.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 하는 시간을 갖은 것처럼, 베드로와 요한도, 예수님도 자기만의 기도시간을 갖은 것처럼 우리도 생명보다 귀한 나만의 기도시간을 반드시 갖고 살아가야 하겠다.
그 어떤 환경과도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다니엘은 당시 총리였다. 그것도 왕에게 절대 신임을 받는 신하였다. 그런데 자기 정적들이 자기를 제거하려고 묘략을 꾸며 기도를 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 진 것이다. 이런 음모를 다니엘이 다 알고 있었고 왕이 반포한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혀 이제는 왕도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도를 했다. 정적들이 자기가 기도하는 것을 지켜보려고 스파이를 세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30일 동안만 기도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거나 기도를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환경과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만약에 그가 그들의 계략을 피하기 위해 기도를 멈추었다면 생생하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어 기도를 안 한다. 돈을 믿든지, 자기를 믿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믿지, 그러다가 자기 뜻대로 안되면 시험에 든다. 그래서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막 14:38절)라고 하신 것이다. 주님을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친 베드로 그 때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된다. 우리도 지금 마음으로는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시험들 것 같지 않지만 기도로 무장을 하지 않으면 시험을 이기지 못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을 이길 능력이 생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에 다니엘이 다리오 왕을 믿었다면 그는 기도하기 보다는 왕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억울함을 호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왕보다도 하나님을 더 신뢰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사람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결국 사막의 떨기나무같이 저주를 받을 것이나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는 강변에 심어진 나무처럼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렘17:5-7절) 사람이나 환경과 절대로 타협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주께 무릎을 꿇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기도하는 일에 목숨 걸어야 한다.
다니엘은 왕의 조서에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그 조서 내용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명령을 어기면 사자굴 속에 들어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는 기도시간을 지키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다시 말하면 기도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고지식해 보이고 융통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기도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유일한 길임을 알고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고 거기에 자기 인생을 걸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도 응답에 대한 분명한 확신 때문이었다.
국가, 교회, 가정에 산재해 있는 문제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얼핏 보면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주인이시기에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이런 사람은 기도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 기도 시간에 내 인생의 승부가 결정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능하심과 일하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다니엘이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믿음의 선진들이 기도로 불가능한 일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내며 승리의 깃발을 꼽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듯이 우리도 기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다니엘이 정적들의 음모대로 사자굴에서 죽었는가? 아니다. 다니엘은 살아서 느브갓네살 왕과 벨드사살 왕 그리고 다리오 왕 모두 3대 왕을 섬겼다. 왕조가 다 달랐다. 그런데도 국가가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다니엘은 인정을 받고 총리로 세움 받았다. 이렇게 다니엘이 형통한 사람이 되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도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주께 무릎을 꿇는 시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다니엘은 기도하다 죽음에 던져졌으나 살았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기 때문이다.(단6:22) 그러나 다니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자들은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되었는데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곧 그들을 움켜서 뼈까지도 부서뜨렸다.(단6:24)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 살아계심이 천하에 전파되게 된 것이다. 벧전4:7절에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라고 요구하신다. 마지막 때인 지금은 기도하기가 점점 어려워져가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도, 세상의 문화도 삶의 환경도 기도하기 어려운 때를 만난 것 같다.
이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을 쳐 근신하며 기도해야 할 때이다. 기도하는 길 외에는 살 길이 없다.
대한민국과 한국의 교회가 온 세계가 부러워 할 만큼 발전하고 부흥한 것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기도했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오늘의 내가 있음도 누군가의 기도 때문이라 확신한다. 신학교 다니던 시절, 고국에서 목회하던 시절, 조금만 늦으면 삼각산도, 청계산도, 도봉산도 앉아 기도할 자리가 없을 만큼 인산인해로 모여들어 조국 통일과 조국의 내일과 섬기는 교회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성도들로 넘쳐났다. 그 시절이 너무나 그립다.
우리는 다니엘처럼 고국을 떠나 먼 타국에 와서 사는 자들이다. 이민 생활 속에 교회도, 가정도 얼마나 많은 문제가 많은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가 문제되지 않는 길이 있으니 주께 무릎을 꿇는 길이다. 우리 모두 나의 기도생활을 한번 진지하게 점검해보자. 그리고 다니엘처럼 기도의 승리자들이 되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