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목사(익산봉곡교회 담임)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이사는 오고 말았으니, 다시 백령도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 한 번이라도 직접 와서 확인해 보았더라면 아마도 부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밤을 지내고 교회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교회는 블록벽돌로, 지붕은 스레트로 건축한 24평 정도의 낡은 건물이었고, 목회자 사택도 9평짜리 블록벽돌로, 지붕은 스레트로 지은 작은 건물이었다. 백령도 교회와 너무나 대조적인 형편이었다. 마을을 둘러 보았다. 그런데 교회가 세워진 마을도 역시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니 30여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가 자립을 하지 못하고 미 자립 교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교회 형편상 소망이 안 보이는 교회였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신중하지 못한 자신의 결정을 탓하여 보았지만 이미 결정된 현실이었다. 청빙절차를 밟을 때 소개하시는 목사님께서 교회에 부임하면 최소한 3년은 시무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셨다. 교회에서 그러한 조건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이유는 그동안 목회자들이 2년에서 3년 정도 밖에 시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히 이번에 부임하는 목회자도 잠간 머물다가 떠날 목회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최소한 3년은 시무를 해야 한다고 조건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시무하였던 대부분의 목회자는 전도사님들이셨다. 신학교를 다니는 동안 시무하셨다가 졸업과 동시에 다른 교회로 임지를 옮겼기 때문에 목회자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부임하기 바로 전에 사역하셨던 목회자는 목사님이셨는데 교회에서 목사님은 처음으로 시무하셨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은 전도사님이셨다. 목사님은 부임하셔서 평생 이 교회에서 목회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만 6개월 정도를 시무하시고 러시아 선교사로 떠나고 만 것이다. 그러니 최소 3년은 머물러 달라고 조건을 제시 하였던 것이다. 중간에서 소개하시는 목사님 체면도 있었고 육지로 사역지를 옮겨야 했기에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속된 말로 울며 겨자 먹기 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와 같은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좀 더 나은 조건의 교회가 임지로 나오면 교회를 옮겼을지도 모른다.
 목회자도 사람인지라 희망이 전혀 안 보이는 곳에서 3년을 지내야 한다는 것이 상당히 심적인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교회 주변에 큰 마을이라고 있으면 희망이 있지만 마을도 작았고, 그렇다고 발전 가능성도 전혀 보이지 않는 지역이었으니 소망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3년이란 약속을 하지 않았었다면 벌써 임지를 옮기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약속을 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목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속으로 그래 3년만 견디어 보자. 그리고 3년이 지나면 좀 더 나은 교회로 옮겨야지 라는 계획을 세우고 3년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시간 때우기 식으로 목회를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어찌 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노회 선배 목사님들과 좋은 유대 관계를 맺으면 임지를 옮길 때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선배목사님들과 교제를 하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기회 있는 대로 노회 목사님들과 어울리는 일에 더 신경을 썼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마을인지라 전도할 대상도 별로 없고, 교인이 적은지라 심방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혹시 전도하기 위해 함께 가자고 하면 성도들이 먼저 저 사람은 절대로 교회 나올 사람이 아니니 갈 필요가 없다고 포기를 해버렸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전도할 용기까지 없어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와 같은 모습으로 허송세월을 몇 년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변화가 없는 시간들이 지나나고 있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