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온지 얼마 안 되어서 나는 운전면허를 가졌으나 아내는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내가 운전하고 다녔다. 아내는 한국에서도 피아노 레슨을 했기 때문에 미국에 오자마자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한 사람 두 사람 모집해서 레슨을 했다. 우리 집 전화번호를 프린트해서 가위로 잘라 마켓에 붙여 놓으면 마켓에 왔던 사람들이 하나씩 찢어가서 전화를 해주었다. 그렇게 학생들을 모집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같이 다녀야만 했다는 점이었다. 불편했지만 할 수 없었다. 아이 둘과 아내와 나는 레슨을 할 때마다 같이 타고 갔다. 어린아이들만 집에 놓고 부모가 나가 있으면 불법이었기 때문에 늘 함께 다닌 것이다. 미국에는 ‘래치 키’ 어린이들이 많이 있는데 부모가 집에 없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오면 목에 걸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이런 아이들을 ‘래치 키 차일드’ 라 부른다. 이것이 불법이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이 집에 혼자 있다가 성추행을 당하거나 고통을 받는 사건이 일어난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피아노 레슨 할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피아노 레슨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다음에 했다. 그것도 가까운 동네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30분, 한 시간 이렇게 차를 타고 집을 찾아가야만 했다. 한국과 달라서 아이들이 집에 와서 레슨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학원을 제외하고는 집에 찾아가서 레슨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피아노에 관심도 없고 취미도 없지만 가정마다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게 했다. 그것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였고 더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이 학교 갔다 오면 대부분 부모가 집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부가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왔는지 숙제는 하는지 늘 전화로 확인하는 것이다. 피아노 레슨 하는 시간만큼은 집에 피아노 선생이 있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안심하는 것이다. 그래서 형편이 되는 가정은 피아노 레슨을 했다. 말하자면 피아노 선생이 아이들 케어도하는 셈이다. 어떤 때는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집으로 픽업해 주고 레슨을 하는 일도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 갔다 오는 시간인 오후 2시부터 밤 7시까지 레슨을 했다. 어쩐 집에는 두 아이씩 하기 때문에 그 두 시간은 부모가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것이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실정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레슨을 하는 동안에 나는 아이 둘과 함께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갔다. 아내를 데리러 오겠다고 시간약속을 하고 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그네도 타고 미끄럼도 타고 시소도 하고 신나게 놀아 주었다. 나중에 나는 한쪽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둘째 아이가 자지러지게 소리를 내며 울었다. 무슨 사고가 난 것이다. 달려가 보니 고추가 시소에 찢어졌다. 얼마나 놀랐는지 손으로 꼭 잡고 지혈을 하면서 안고 차 있는 데로 달려갔다. 한쪽 손으로는 고추를 잡고 한쪽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레슨 하는 집으로 가서 아내를 태우고 정신없이 달렸다. 아는 의사도 없고 병원이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다. 다행이 레슨 하는 학생 중에 치과의사의 딸이 있었는데 우선 치과로 달려갔다. 치과의사는 그 상황을 보고 얼른 아는 외과의사에게 알렸고 우리는 그 병원으로 갔다. 다행이 껍질만 벗겨져서 포경수술로 끝나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정도로 끝난 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사실, 시를 상대로 수(Sue) 해서 치료비를 받을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당시는 그런 것도 몰랐고 그럴 수도 없었다. 미국 온지 일 년도 되지 않아서 그런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놀랐는지 상상이 갈 것이다. 아내의 레슨 때문에 나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지낼 수가 있었다. 아내는 미국에서 피아노 레슨을 오랫동안 했다. 한국아이, 미국아이, 히스패닉아이 할 것 없이 가르쳤다. 지금은 안 하지만 참으로 고생 많았다. 수요일 저녁에는 아내가 집에 오자마자 저녁밥을 짓고 아이들을 태우고 30분 거리인 교회로 갔다. 나는 운전하고 아내는 차 안에서 저녁을 먹고 내 입에 밥을 넣어 주곤 했다. 아내의 위장병이 그때 생긴 것이고 관절염이 그때 생긴 것이다. 거기에다 스트레스가 많아서 먹은 것이 자꾸 체했다. 얼마나 바쁘게 지냈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교회에서 예배 마칠 때까지 교회 긴 의자에서 자고 예배 마치면 차에 태우고 왔다. 아내는 레슨을 하는 아이를 SCYMF(Southern California Young Music Festival)에 내보내서 상도 타게 했고 아이를 가르쳐서 미국대학에 들어가게 한 적도 있었다. 1년에 한 차례 학생 연주회를 가져서 아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도 했다. 월요일에는 다이아몬드 바 지역, 화요일에는 풀러톤 지역, 수요일에는 오렌지카운티, 목요일에는 하시엔다, 금요일에는 이스티 엘에이, 토요일에는 월넛, 이렇게 지역 별로 다녔다. 30분, 40분 어떤 곳에는 1시간 이렇게 드라이브를 해 가면서 레슨을 다녔다. 아내의 생애는 피아노 레슨의 생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50이 될 때까지 했으니까. 자동차 운전이 참으로 피곤하고 지치게 만들었지만, 생각하면 고맙다고 감사할 따름이다. 고생이 되었지만 그런 덕분에 다른 목회자 가정보다는 조금 넉넉하게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를 정말 따뜻하게 해 주지 못해서 지금도 늘 후회한다. 아내는 이제는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 한번 실컷 쳐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피아노 치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면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나 역시 평화로워지고 행복해진다. 지금의 이 행복을 위해 그렇게 고생하며 지낸 것이구나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지금은 나의 목회를 전적으로 돕고 있다. 성경에는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다. 고생의 땀방울들이 진주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고생을 불평하지 말자. 그것은 미래의 진주로 우리 앞에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고생은 고생할 만한 것이다. 꿈이 있는 고생이기 때문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했다. 하나님은 고생의 보자기로 축복을 싸서 보내시는 경우가 많다. 마찰이 없이는 보석이 빛나지 않는 법이다. 값을 지불해야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늘 생각 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고남철 목사(나성충신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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