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
브라질은 뒤쳐져 있지만 발전하는 나라다. 부조리가 곳곳에 있지만 합리적이기도 하다. 안되는 것 같지만 진행되고 있다. 빠르진 않지만 가고 있다. 되는 것도 없지만 안되는 것도 없다. 불공평한 것 같지만 최고의 법전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현재에 있지만 미래도 보인다. 미래에 있지만 과거에 머물고 있다. 모든 것이 섞여 있다.
사회학자 플로레스탄 페르난데스(1920-1995)는 1967년 프랑스 저명한 잡지 Les Temps Modernes에서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은 다양한 역사·사회적 시대를 동시에 살아간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가 교차되고 혼란스러워서 단순한 방법인 공간 이동을 통해서 한 역사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동할 수 있다.”
1920년 상파울로에서 태어난 플로레스탄은 20세기 지성이다. 마르크스주의 성향을 가진 그는 사회의 체계적인 권력 관계를 분석하는 비판사회학의 아버지다. USP 학풍을 형성했고 인종차별, 인권, 사회적 불평등을 연구 했다. 그는『계급 사회에서 흑인 통합』A Integração do Negro na Sociedade de Classes(1964)에서 인종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1530년대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부터 1888년 5월 13일까지 무려 350년 이상 지속되었던 노예제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폐지 되었다. 흑인과 그의 가족들은 노동시장에 편입되거나 사회적 이동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소외와 빈곤에 직면하게 되었다. 노예제가 폐지 될 때 국가 노동력을 떠받치고 있던 다수가 토지, 교육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에서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노예노동에서 임금노동으로 전환이 되었는데 수혜자는 백인이었다.
질베르투 프레이레(Gilberto Freyre)가 만든 ‘인종 민족주의’는 다양한 인종이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는데 플로레스탄은 이 개념이 오히려 인종차별을 숨기는 도구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엘리트들과 기득권층이 만든 ‘피부색과 관계없이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입을 닫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피부색은 침묵을 강요한다. 차별, 편견, 배제, 혐오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플로레스탄은『브라질 부르주아 혁명』A Revolução Burguesa no Brasil(1975) 에서 브라질 자본주의 발전이 식민주의적이고 불평등하다고 말한다. 포용을 향한 발전이 아니라 배제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브라질 현대화는 자본가 그룹인 부르주아가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서 되었다. 의존적이고 종속적인 자본주의가 형성되었다. 정치, 경제, 사회 엘리트들은 국제 경제 강대국의 하위 파트너가 되었다.
1964년부터 20년간 군사권위주의 정부와 2000년부터 유지되고 있는 온건좌파의 등장은 독재, 부르주아,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의존적 현대화와 자본주의 현실을 보여준다.
국가발전에 대중이 기여했지만 항상 배제되어 있고 부유한 땅에서 나오는 사회경제적 이익을 공정하게 배분하는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결과는 대물림 되는 불평등, 노동과 인력의 착취, 도시파괴, 소외된 공동체, 윤리의식의 부재다.
플로레스탄의 분석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피부와 출신에 따라 구조적으로 소외되고 배제된다. 다수의 유색인종은 소수의 백인을 위해 일할 수 밖에 없는 경제구조다. 국가의 부가 축적되기 보다 착취되고있다. 성장의 이익은 공평하게 나눌 수가 없다. 소수의 부와 다수의 빈곤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의존성과 인종차별의 뿌리는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