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모피어스와 네오의 선택(3): 네오의 선택(1)
네오를 살리기 위하여 요원들에게 잡히기로 선택한 모피어스. 그는 네오를 굳게 믿고 있다. 네오야말로 자기를 구하러 올 수 있는, 그러기 위해서 이 모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미스 요원의 집요한 해킹에도 끝까지 저항하는 것이다.
전함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네오는, 바로 이것이 오라클이 예언한 상황임을 인식한다. “이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오라클, 그녀는 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어. 그녀는 내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어.” 트리니티가 “어떤 선택?” 하고 묻자, 네오는 대답 대신 탱크에게, “나는 매트릭스로 들어갈 거야” 하고 말한다. 트리니티가 막아서자, 네오는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가야 해.”
그러자 이번에는 탱크가 반대한다. “저도 모피어스가 돌아오기를 원해요. 하지만 이건 자살행위입니다.”
그러나 네오는 확고하다. “이게 무엇처럼 보이는지 알아. 하지만 아냐. 왜 아닌지 설명은 못 하겠지만. 모피어스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즉시 희생했어. 이제 나는 그것이 이해가 돼. 그래서 가야만 하는 거야.” 탱크가 묻는다. “왜?” 그러자 네오가 대답한다. “왜냐하면 나도 믿음이 있거든… 내가 그를 다시 데려올 수 있다는 믿음.”
그 말을 듣고, 트리니티도 함께 가기로 한다.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그들에게, 탱크는 반신반의하며 묻는다. “뭐가 필요합니까? 기적 외에?” 네오가 말한다. “무기. 많은 무기.” 그러자 정말로 엄청난 양의 총기가 그들 둘 뒤에 나타난다. 트리니티가 말한다. “네오, 전에 아무도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어.” 그러자 네오가 중요한 말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잘 될 거야.”
기독교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뇌는 매일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현실에 맞닥뜨리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온갖 괴로운 생각들에 의하여 침투당한다. 그것은 마치 매트릭스의 요원들이 우리 정신을 해킹하는 것처럼 집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모피어스는 힘껏 저항한다. 심지어는 기계들도, 그 정도로 긴 시간동안 저항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훨씬 넘은 것이라고 놀랄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저항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저항력의 원천은 네오가 말한대로 바로 ‘믿음’이다. 네오라는 구세주를 믿는 믿음, 그가 절대로 자기를 버리지 않고 반드시 그를 구하러 올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 필요하다면 현실과 상황을 바꾸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믿음.
그러므로 이러한 성격의 저항은 결국 기다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견디기 힘든 삶의 현실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희망이 동일한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 40:1).” ‘기다리고 기다리다.’ 물론 이것은 동사를 강조하기 위한 히브리어의 전형적인 화법이다. 동시에, 이것은 진행형으로 되어 있다. 즉, 시인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구원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더 기다린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가?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시 40:2).” ‘물이 발 밑에서부터 차올라오는 웅덩이와 발이 자꾸 빠지는 수렁’이다. 얼마나 큰 공포인가. 죽음만이 확실한 상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