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오라클을 만나다(5): 현실의 진짜 의미(5)
“나는 네가 네오인 것을 안다.”
네오가 안내에 따라 오라클이 있는 주방에 들어가자, 그녀는 그에게 등을 지고 있다. “너랑 곧 이야기할거야.” 그러자 네오가 묻는다. “당신이 오라클인가요?” “빙고.” 그녀는 답한다. 그러면서 몸을 돌이키는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돋보기를 쓴 평범한 흑인 할머니이다. 네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는지, 그녀는 미소 지으면서 그에게 “네가 기대한 것과는 좀 다르지?” 하고 말한다.
“거의 다 됐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면서 오븐 쪽으로 향한다. “냄새 좋지?” “예.” 네오도 웃으면서 대답한다. 오븐 안에서 구운 쿠키를 꺼내면서, 오라클은 “너에게 앉으라고 권하고 싶다만, 너는 어쨌든 안 그럴 거니까”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그 화병은 신경 쓰지 마” 하고 말한다. 네오가 “어떤 화병이요?” 하고 말하면서 주위를 돌아보자, 그의 옷 왼쪽 끝이 걸리면서 거기에 있던 화병을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게 했다. 그러자 오라클이 “그 화병” 하고 말한다. “죄송해요.” 당황한 네오가 말하자, 그녀는 웃으면서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니” 라고 한다.
“어떻게 아셨어요?” 네오가 묻자, “오… 사실 네 사리(뇌) 팔팔 끓게 만드는 것은, 만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네가 화병을 깼을까 하는 것이지” 하고 오라클이 답한다.
이 부분에서, 둘의 대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예언과 성취의 선후관계이다. 우리는 종종,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없게 만드셨다면, 제아무리 사탄이 시험한다고 해서 그 말을 안 따르지 않았을까’와 같은 의문 내지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이것이 시간과 공간에 매여 있는 우리 인식의 오류라고 지적한다. 왜 오류인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그리고 그 바깥에 계시는 하나님께는 ‘만일… 하셨다면, … 하지 않았을까’와 같은 시제가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위의 질문이 유치하게 여겨졌다면, 같은 선상에 있지만 좀더 심각한 의문 또는 질문을 보자. ‘만일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구세주로 성육신 하셨을까?’ 예수의 구원이 복음인 이유는, 인간이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가 사해지고, 그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일 인간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복음의 창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오류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가는 서사를 ‘역사’라고 부르는데, 이 역사에는 ‘만일’이 없다. 어떤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돌이킬 수 없으며, 그 공간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역사에는 만일이 없다’는 말에는 아무런 반발을 하지 않는 사람도, 인간이 원죄를 지어서 그것을 무효화할 수 없다는 말에는 화를 내며 반발한다.
이것은 모순이다. 그러나 인간이 죄 가운데 잉태되고 출생하기 때문에, 이것이 모순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안 만드셨으면 됐잖은가 하는 것이 오류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오라클은 바로 그 맹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