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모피어스를 만나다(4): 실체란 무엇인가
모피어스 일행은 매트릭스를 부분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해킹하고 신호를 교란하여 네오가 죽은 것으로 인식하게끔 해야 했다. 그래야 매트릭스가 그를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죽어야 산다… 이순신 장군의 명언인 ‘생즉필사 사즉필생’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을 가르치시면서,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나를 위하여’ 라는 말씀은 곧 ‘구원을 얻는 것’이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어떻게 자기 생명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그 답 역시 예수님의 말씀에 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자기 생명은 부인하고, 대신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거듭나면 된다. 즉,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생명, 이 새로운 생명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
새로운 생명, 즉 영생은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된다. 앞서 ‘나를 위하는 것’이 구원을 얻는 영생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수 개월 후 ‘나의 이름을 위한 것’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신다.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여기서 ‘내 이름’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동일한 말씀의 병행구를 보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눅 18:29-30).”
그러므로 인간이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생명을 부인하지 않으면, 즉 죽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곳이다. 또한 동시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바로 이 위대한 사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동일선상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8,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성경에서 물은 속죄를 의미한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골 2:12-13).” 또 성령은 해방의 능력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최후 만찬 자리에서 성찬을 제정하시고, “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이 세상에 속하였으면 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이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하신 말씀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