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마지막 전투」: 시프트와 퍼즐(9)
이런 것이 다 배교에 빌미를 제공하는 것들이다. 먹는 것 먼저(내 몸부터 먼저), 그 다음에는 버젓이 사는 모습(보기 좋은 것), 그 다음에는 내놓기 좋은 것(자랑하기 좋은 것) 갖추고, 그 다음에 말씀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그 다음’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갖출 것 다 갖추고서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다른 무엇이 추가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대로 육신과 안목과 자랑을 누리면서 살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배교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몸과 눈과 자랑에 좋은 것을 얻는 것에 결코 마음을 쓰지 않는다. 이런 것에 마음을 쓰는 것이 바로 배교의 마음이다. ‘하나님 믿으면 성공한다, 새벽 기도하면 건강이 좋아진다, 십일조 제대로 하면 부자 된다, 전도 많이 하면 복 받는다’ 등과 같은 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 세상 사랑을 겸하여 하라고 가르치는 말들이다. 어린양의 모습을 하고서 용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슬프게도, 오늘날 우리는 이 「마지막 전투」의 때에 살고 있다. 오직 열다섯 마리의 개들과 생쥐, 두더지, 다람쥐와 같은 작은 동물들 ‘몇몇이’ 쪼르르 달려오고, 잇따라 곰과 멧돼지도 오지만, 그러나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동물들이 훨씬 많은 현실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속해야 하는가? 참 기독교인이라면, 즉 몸에 좋은 것이나 눈에 좋은 것, 자랑하기 좋은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교회를 세워가고 하나님 나라를 전진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개들과 작은 동물들과 곰과 멧돼지의 편에 설 것이다. 그들과 함께, 참 지도자 티리언 왕과 함께, 나니아를 위하여, 참 신 참 구원자인 아슬란의 병사로 싸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몸과 눈에 좋고 자랑하기 좋은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침이 마르기까지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한다고 말해도, 그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동물들과 함께 서성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치열한 싸움에서 아슬란과 타슐란 사이에서 중립을 지킨답시고 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는가? 단테는 그의 일생의 걸작인 『신곡』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옥의 가장 괴로운 자리는 공동체의 가장 힘든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다”고.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이생에서의 우리 마음의 방향이 최후 심판의 날의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