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복 목사의 복음과 삶)이 “수” 자는 무엇의 “수” 자일까요
2024/06/07 00:40 입력  |  조회수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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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복 목사(시온성장로교회 담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창세기 출애굽기 하면서 차례대로 읽어가기도 하고 어떤 분은 여기 저이 읽어가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성경을 알려주는 글자 가운데 무슨 성경을 가리키는 약자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는 “창”자로 되어있고 마태복음은 “마”자로 되어 있습니다. 신양석영을 우리가 자주 읽어서 그런데 그런대로 어느성경을 가르키는 글지인줄 한 글자만 보아도 잘 압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은 생소한 이름이 많아서 어떨 때는 이것은 어느 성경을 가리키는 것일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스”자는 에스라를 가리키고, “애” 자는 예레미야 애가를 가리킵니다. “슥”자는 스가랴를 가리키고, “습”자는 스바냐를 가리킵니다. 이것을 잘 모르는 사람은 성경 앞에 나와 있는 성경 책명 약자 표를 찾아보고 알아내기도 합니다. 

 지난 주일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내가 주일 아침 일찍 교회에 도착하여 성경을 찾아 펴놓고 읽었답니다. 그런데 펴 놓은 곳이 민수기였습니다. 주일 본문은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민수기를 펴 놓고 읽고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주보에 나와 있는 제목을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답니다. 어떻게 이런 제목을 잡았을까 하면서 성경을 계속 읽어 보았는데 아침에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자기도 모르게 주보에 나와 있는 “수”자를 민수기로 알고 민수기를 펴놓고 몇 장 몇 절이라는 데를 읽었는데 제목이 그렇게 나오게 된 것을 못 찾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있자니 아래층에 있었던 집사님이 올라와서는 자기에게 와서 묻더랍니다. “사모님 주보에 나와 있는 ‘수’자가 어느 성경을 가르치는 ‘수’자인가요?”라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멍하니 있다가 “예?”하고 반문을 하였더니 “여기 주보에 있는 ‘수’ 자는 여호수아인가요? 민수기인가요?” 하다가 “여호수아는 ‘수’ 자로 표시하고, 민수기는 ‘민’자로 나타내지요?” 하길래 “예 그렇지요”했더니 자기 자리로 가더랍니다. 그래서 사모는 어안이 벙벙하면서 “이것이 무엇인가? 아침에 정신이 없어서 주보를 보고 여호수아 서를 민수기로 잘못 알고 민수기를 펴놓고 읽고 있던 자기에게 하나님께서 제대로 알려 주기 위해서 천사를 보낸 것이 아닌가?”하면서 깔깔웃더라고요. 그렇지 않았다면 성경을 읽는 시간에 자기 자신만 다른 성경을 큰소리로 읽을뻔하였다고 말하면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있다고 하더니 바로 내가 그러네요”하면서 박장대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이렇게 순간 착각을 하고 잘못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좋으신 하나님은 사모가 실수하지 않도록 즉시 사람을 보내어 주어 정정하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신없이 성경을 펴 놓고 읽은 자신이 예배시간에도 큰 소리로 다른 성경을 교독하면서 읽게 되었다면 난처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 잠시 착각했던 것이라면 그것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시 쉽게 알아내고 다시 찾아 정정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다른 것에 대하여 착각을 한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브라질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도를 보고 운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네비게이션이 있었던 때가 아니라 두꺼운 지도책을 보면서 운전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갈 때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브라질에는 한 방향으로만 가는 길이 많기에 바로 옆에 있는 사무실이나 건물을 찾아갈 때 한참 돌고 돌아야 그곳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도만 보고 가자니 길을 찾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운전하고 가다 보면 이길이 그 길 같고 그 길이 이길 같을 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고 이리저리로 방황할 때도 많았습니다. 열심히 찾아갔는데 엉뚱한 곳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는 참 난처했습니다. 한번은 바닷가를 가야 하는데 바닷가 근처에서 착각하고 엉뚱한 곳으로 들어갔을 때가 있었습니다. 길을 잘 못 들어왔으니 방향을 제대로 찾아야 나갈 수 있는데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있는 길이기에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몇 번이나 갔던 곳을 또 가고 돌아와 보니 또 그 자리인 것을 알고는 땀을 뻘뻘 흘릴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남편이 어느 날 부인과의 대화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부인의 청각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인 몰래 이를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방 한쪽 구석에 돌아앉았고 부인은 반대편 구석에 돌아앉게 했습니다. 그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여보, 내 말이 들려?”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습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물어도, 더 바짝 다가가서 같은 말을 물어도 여전히 대답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부인의 등 뒤에 다가가서 “여보, 이제 내 말이 들려?”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귀찮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벌써 네 번째 대답이에요. 잘 들린다고요.” 하는 것입니다. 이 남편은 자신에게 청각장애가 있는 것을 모르고 부인이 잘 듣지 못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잘못을 범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빨간 안경을 쓰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왜, 세상이 이렇게 붉으냐?”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날이 흐렸나?” 할 때가 있습니다. 아내가 경험한 이런 이야기와 저의 경험을 통해 알아낸 것,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을 보면서 우리 인간은 언제든지 착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에서는 이런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바로 마태복음 7장 3절의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나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고 나는 안 틀린 것 같은 생각 하면서 성경을 펴서 읽는 일이나 지도를 보고 보아도 착각하며 다른 길을 갔던 일들 등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사랑하여 주십니다. 실수하지 않도록 역사하여 주시기도 하고, 잘못 갔으면 다시 시작하도록 역사하여 주시기도 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실수나 착각을 바로 잡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오늘도 감사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올바로 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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