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한국방문을 마치고 브라질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중동의 에미레이트 A380 이층비행기였습니다. 비교적 기내식도 괜찮고 특히 당뇨식을 따로 주문하면 일반승객의 식사 전 주문한 당뇨식을 미리 배달하고 있어 혈당조절 걱정이 없어 좋습니다.

 명품 만년필 구매로 10년의 소망 이뤘다

 인천공항에서 목적지인 상파우르 과롤로스까지는 27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인지라 중간에 두바이나 도하에서 몇 시간 쉬어가는 것이 퍽 다행입니다. 특히 우리가 탄 비행기의 중간 기착지인 두바이에서 몇 시간 경유하는 시간은 쇼핑천국 같은 대규모 면세점이 우리의 눈을 휘둥글게 합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 갈 때 올 때 늘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만년필 면세점에 금년에도 들려서 눈독만 들이고 있었는데 아내가 용기를 북돋아 줘서 알프스의 산 이름의 펜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면세품인지라 중간에 풀어보지 않도록 포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바이 환승구역에서 열어서 잉크도 충전해보고 명함에 사인도 해보며 60평생 처음 구매한 명품만년필을 들고 시필(試筆)을 하면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타면 처음 생생할 때는 영화를 몇 편 봅니다. 환승해서 브라질이 가까울수록 비행기 정보가 담긴 화면을 띄워서 지금 내가 탄 비행기의 정보에 집중하며 목적지에 다가갑니다. 출발지 시간, 도착예정지 시간, 출발지정거리, 잔여시간, 도착예정시간, 속도, 고도, 항공기 외부온도, 현재위치의 시각, 세계의 중요거점 도시들인 로스엔젤레스, 시드니, 상파우르, 도쿄, 런던, 두바이 등등의 시각을 비교해서 보여줘서 개인의자에 앉아서 세계를 다 볼 수 있습니다. 

 기내식 다섯 끼를 먹어야 도착할 수 있는 먼 여정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지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항공기가 중동의 회교권 국가의 여객기인지라 회교의 기도시간이 표시된 시간표가 있습니다. 회교의 성지인 메카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고, “새벽, 일출, 정오, 오후, 일몰, 야간 기도시간”이 비행정보 묶음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아랍 에미레이트나 카타르 항공의 존재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종교전쟁의 한복판에서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했습니다.

 박대승 형의 화각과 낙관, 일 년 읽을 책을 들고

 이번 한국출장의 주요 일정들은 이미 주보와 복음자리를 통해서 대부분 보고를 드렸는데 박대승 장로의 화각과 낙관은 보고 드리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방송 편성국장으로 은퇴하고 양평에 터를 잡은 박대승 형은 그동안 서각을 갈고 닦아 여러 번 전시회에 출품하는 등 성공적인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방문 전에 제 가까운 목사님의 낙관을 부탁했고 “여지(餘地), Kiwon’s”란 낙관을 받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실에 들려서 그동안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전에 저에게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일생을 화각으로 새기고 있다고 했는데 그 중에 하나 느티나무 소재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시는 예수님”이 제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제 모습을 본 형이 “정목사 그것 가지고 가, 오늘부터 정목사 소유야”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제 속을 다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빨게 졌습니다만 감사했습니다.

 아내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 최병천 장로가 이 시대의 소리를 담아 출간하는 신앙과 지성사의 책들, 대학 동창인 이순님, 유영일 부부의 올리브 나무에서 출판한 은희곤 감독의 <카무카무 우에,2>와 한국교회 신진 지성들이 시대의 요청을 담은 <하나님이 사용하신 10가지 도구>, 내 친구 김기석 목사의 <고백의 언어들>, 최근 한국교회의 젊은 지성 아현교회 김형래 목사의 <갈망하는 예배자>,<순종하는 기도자> 등등 일 년 동안 읽을 책들을 따로 포장해서 비행기회사에 짐 값 웃돈(수화물 추가비용)을 주고 한 박스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강단에서 교우들을 만나니 몸은 피곤에 찌들었지만 내 집에 왔다는 안도감으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