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깨어나다

 부활한 간달프는 세오덴을 치유할 때 이렇게 말했다. “전하는 지금 훨씬 더 큰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꿈속에 있지 않소. 전하는 살아 있소…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자보다 [조카이자 충신인] 에오메르(Eomer)를 신뢰하고, 후회와 두려움을 버리고 눈앞에 닥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자 세오덴은 이렇게 답했다. “과인은 에오메르에게 빚진 것이 많소이다. 충직한 사람은 완고한 혀를 가지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오.” 이에 간달프는, “비뚤어진 눈에는 진리가 뒤틀려 보일 수도 있다는 말씀도 하셔야지요” 하는 말을 덧붙였다. 

 세오덴은 격이 없고 소탈하며 친절한, 선한 왕이었다. 하지만 순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외부의 악에 쉽게 걸려들어 마치 어두운 꿈속에 끌려 들어간 것처럼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신뢰해야 할 충직한 사람은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신뢰하지 말아야 할 간교한 사람을 신뢰한다. 왜 그럴까? 충직한 사람의 말은 투박하고 고집스럽게 들리기 때문이고, 간교한 사람의 아첨은 이해와 위안의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찌르고 아프게 하는 충직한 사람의 말을 피하게 되고, 자기를 진정으로 위로하는 것 같은 부드러운 간교의 말만 찾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눈까지 비뚤어져서 진리를 뒤틀린 것으로 보는 데에 이르게 된다. 

 그런 상태에 있던 세오덴을 치유한 것은 부활한 간달프다. 즉,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를 뒤틀린 것으로 인식하며, 현실에서 당하는 고통과 실패를 자꾸 피하려고만 하는 영혼을 완전히 치유하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다치지 않는 방식으로 치유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진리의 빛으로 문제점을 정확하게 드러내심으로써 치유하신다. 간달프는 세오덴에게 그가 처한 위험에 대해 숨기지 않았다. 이 위험은 세오덴이 악의 간계에 붙들린 기간 동안 하지 않은 것들 때문에 닥친 위험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마법사는 로한의 왕에게, 과거에 했어야 했던 일들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닥칠 일들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버리고, 지금 당장 눈앞의 일들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라고 권한다. 

 2. 헬름(Helm) 협곡

 비로소 현실을 직시하게 된 세오덴 왕은, 이제 사루만의 군대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였다. 

그는 기병을 이끌고 헬름 협곡의 나팔산성(Hornburg)으로 가서, 적군을 상대로 농성을 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거기서… 기쁨과 다시 싹트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곳엔 성과 방벽 모두에 배치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반지의 제왕』 제 3권 7장 267쪽).” 

그러나 우룩-하이들은 예상 외로 강했고 그 수는 너무 많았다. 여러 시간에 걸쳐 벌어진 전투에서, 압도적인 숫자의 적은 드디어 헬름 성벽을 함락하였고, 왕이 있는 성 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세오덴은 의연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싸우던 아라고른에게 이렇게 말했다. “끝이 머지 않을 거요… 새벽이 오면, 과인은 병사들에게 헬름의 나팔을 울리라고 명하고 말을 달려 나가겠소. 그 때 나와 함께 말을 달리겠소? 아마 우리는 길을 열거나, 아니면 노래로 남을 만한 최후를 맞게 될 거요.” 그러자 아라고른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왕과 함께 출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