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현자 사루만의 어리석음 

 사우론을 물리치고 중간계의 저급한 종족들을 다스림으로써 그 땅에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그의 권능이 담긴 절대반지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 없게 된 사루만은 자기가 유일하게 동격이라고 생각하던 간달프와 만나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영화는 이 부분을 두 마법사의 대화로 처리하는데, 매우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대사들로 장면을 구성한다. 사루만은 먼저, 악마 사우론이 워낙 강대하기 때문에 그와 맞서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고 일장연설을 한다. 그 후, 그는 간달프를 설득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한다. 

 “간달프, 우리는 사우론과 손을 잡아야 해. 그것이 지혜로운 것이네, 친구.”

 하지만 사루만의 마음을 꿰뚫어본 간달프는 이렇게 반문한다. 

 “말해보게, 친구. 언제부터 현자 사루만의 지혜가 어리석음으로 바뀌었나!”

 간달프의 이 대사는 정확하게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을 크게 보고 이 세상 흉내를 내려 하는 고린도 교회의 기독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성경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마 16:24)’이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도’는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능력이라는 것이 분명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왜 구원을 받았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자꾸 이것을 미련한 것으로 생각할까?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멸망하는 자들, 즉 이 세상 사람들의 관점이 아닌가? 

 기독교인이 ‘십자가의 도’를 미련하다고 생각하고, 싫어하기까지 하는 것은 결국 마음의 방향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톨킨은 사루만의 태도를 통하여, 죄의 핵심이 마음의 방향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마음이 이미 절대반지로 향하고 있다면, 그의 지혜는 그에게 독이 된다. 그의 달변은 그에게 덫이 된다. 그의 책략은 그의 멸망이 된다. 이것은 마치 친일 행각에 온 힘을 다한 자들의 변명과 똑같다. 왜 그토록 적극적으로 친일 행각에 가담했느냐 하는 질문에, 그들은 항상 동일하게 대답한다. 해방이 올 줄 몰랐기 때문이라고.     

 이러한 답은, 일제 치하 동안 그들의 마음에 ‘해방’이라는 것이 없었음을 반증한다. 일제가 워낙 강대하기 때문에, 그리고 해방을 주장하면 먹고살 수 없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2. 사루만의 몰락

 사우론은 사루만도 절대반지를 찾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에게 반지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먼저 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간달프가 알지도 모르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사우론은 어둠의 기사들인 나스굴을 파견하여 간달프를 쫓게 하였다. 하지만 도중에 사루만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를 배신자로 규정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백색 회의를 오리무중에 빠뜨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우론이 절대반지를 찾지 못하게 하면서, 지배 지역을 로한으로 넓히려던 그의 책략은 이렇게, 너무나도 일찍 탄로나게 되었다. 무수한 우룩-하이로 병력을 만들고, 무기를 제련하고, 지하 요새와 공성퇴를 제작한 그는, 종국에는 서부의 발라들에게도 버림받게 되어 바람에 흩어져버렸다(시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