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당신은 하루의 생활 중에서, 아니 지금껏 살아온 삶 중에서 어느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뜬금없이 받는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의 가치와 기준이 어떤 규칙처럼, 조건을 가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정답이란 것을 찾으려는 것은 모순입니다. 

 어느 외국인이 한국 여인네들의 하루의 일상을 본 후 ‘한국 여인네들은 매일 똑 같은 일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한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또 밥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일에 묻혀 개인의 취미 생활이나 여가 생활을 할 틈이 없어 불쌍하다고......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는, 그들이 바라 본 우리 한국 아낙네들의 모습입니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어쩌면 당연한 것을 말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곳, 말하자면 여기도 외국이니까. 

 이곳의 주부의 삶은 어떨까요? 대부분의 생각대로 일을 해야 살 수 있다는 분위기에서 집 안 일에만 몰두해 살면 퇴화해지는 일로 여겨져 스스로 무기력해지는 모습들을 쉽게 보게 됩니다. 일거리가 없어 고민 끝에 나쁜 생각을 갖게 되는 사연들이 제법 있긴 하지만 반면에 일이 너무 많아 죽어야(?)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남다른 어느 노인의 얘기를 윤오영 씨의 글 [방망이를 깎던 노인]이라는 곳에서 찾아 보겠습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다. 방망이를 한 벌 사 가지고 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방망이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 사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깎아나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깎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깎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깎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집에 와서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예쁘게 깎았다고 야단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배가 너무 부르면 옷감을 다듬다가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 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글에 나오는 노인은 일에 대한 정성이 남다릅니다. 이러한 자기 만의 기술을 연마하기까지 노인은 얼마나 많은 세월에 눈물과 웃음을 섞어 놓았을까요. ‘절실’이란 두 글자를 알면 생활이요, ‘진솔’이란 글자를 알면 글이 된다고 합니다. 거짓 없는 눈물과 웃음, 이것이 참다운 인생이기도 하고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순수함이 미의 극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이루기 위한 생각의 출발점이지만 결과의 성패가 달린 일이기에 매우 중요한 발걸음입니다. 일상이 늘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어도 자기의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으로 시작한 일이 후회 없는 일이 된다면 그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방망이를 사용하는 이는 다른 사람인데 그것을 만든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생활의 절실함이 에누리 없는 인생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은 이런 생활에서 오는 것이고 균형과 조화를 잃지 않는 마음이 행복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