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구세주
모든 기독교 작품에는, 현실 세계로 들어와 위대한 희생을 치룸으로써 사람들을 살리고 다시 돌아와 적을 완전히 무찌르는 신적 존재인 ‘구세주’가 등장한다. 『벤 허』나 『쿠오 바디스』와 같은 기독교 고전소설과 마찬가지로, 『반지의 제왕』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은 조금 독특하다. 이 작품에는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구세주’가 나오기 때문이다. 얼핏 보기에는 기독교적이 아닌 이러한 설정을 이해하려면, 먼저 구약성경에 나타난 메시아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은 구세주의 두 가지 성격을 묘사한다. 하나는 예언자적인 메시아이고, 또 하나는 전투적인 메시아이다. 물론 신약성경에 오면, 메시아의 이 두 가지 성격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에게서 모두 발견되고 또한 실현된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에서 톨킨은, 예언적 메시아 상과 전투적 메시아 상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자신의 ‘중간계’ 설정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인지, 또는 그것이 소설적 재미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서인지, 구약성경이 보여주는 이 두 성격을 두 명의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부여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한 명의 구세주는 간달프이다. 우선 간달프는 ‘올로린’이라는 마이아 급의 천사이다(『반지의 제왕』 제 4권 158쪽). 그는 자비와 지혜의 발라인 니엔나의 수하였다(『실마릴리온』 40-41쪽). 그러나 악마 사우론이 ‘중간계’를 죄악으로 뒤덮으려 하자, 그는 다른 네 명의 마이아와 함께 ‘중간계’로 급파되었다. 그들은 ‘중간계’의 자유민들을 규합하고 그들을 도와 사우론의 위협에 맞서는 임무를 받았지만, 그 민족들을 지배해서는 안되었다. 이들이 바로 ‘이스타리’, 즉 ‘마법사’라고 불리는 이들로, 인간의 형체를 띠고 왔다(『반지의 제왕』 제 7권 133쪽). 유일신 에루 일루바타르의 창조에 참여한 신적 존재가 인간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온 것이었다.
2. 간달프의 서사
제 3시대 1000년쯤 인간의 몸을 입고 온 ‘회색의 간달프’는 그 뒤로 쭉 ‘중간계’의 자유민들 사이에 거하면서 사우론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였다. 그는 북부 돌-굴두르에 ‘강령술사’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동료 마법사들과 요정군주인 엘론드와 갈라드리엘과 함께 그곳을 쳤다. 그 과정에서 ‘강령술사’가 사우론인 것이 밝혀졌고, 그의 막강한 힘이 ‘절대반지’에서 나온다는 것과, 그것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형체도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중간계’의 모든 반지들의 행방을 좇았지만 절대반지를 찾지 못하다가 빌보가 골룸에게서 얻은 반지를 마지막으로 살폈고, 결국 그것이 절대반지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그는 빌보에게 그것을 버리라고 했고, 마침내 성공하였다.
나중에 그는 리벤델(Rivendel)에서 프로도를 중심으로 반지원정대(Felloship of the Ring), 직역하면 ‘반지의 우정단’ 창설에 기여하였다. 그 후 모르도르로 향해 가던 중 크하잣둠(Khazad-dûm)에서 고대 악마 중 하나인 발로그(Balrog)를 만나 기어이 그것을 죽이고, 자기도 죽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죽은 장소인 크하잣둠은 다른 말로 ‘모리아(Moria)’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