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망명왕국

 유일신 에루에게 충직했던 누메노르의 ‘신실한 자들’은 섬을 가라앉힌 홍수를 피하여 중간계의 북쪽과 남쪽에 왕국을 세우게 되었다. 그들의 지도자인 엘렌딜은 대왕으로 망명자들의 영토 전역을 다스렸으며 주로 북부인 아르노르에 머물렀고, 그의 두 아들 이실두르와 아나리온은 주로 남부인 곤도르에 거했다. 그러나 제 2시대의 마지막 전쟁에서 엘렌딜이 전사하자, 장자인 이실두르는 북왕국을 다스리러 떠났고, 남왕국은 동생인 아나리온이 다스리게 되었다. 하지만 북왕국은 악마 사우론에게 붙어 자기 민족을 배신하여 ‘반지 악령’으로 변한 인간 왕들, 즉 ‘나즈굴’들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남왕국 또한 사우론의 본영이 있는 모르도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끊임없이 악의 군대의 침범을 받아 날로 국력이 쇠락하게 되었다. 이 ‘망명왕국’ 이야기에 톨킨은 몇 가지 성경적 요소를 집어넣었다. 먼저, ‘신실한 자들’이 누메노르의 멸망에서 탈출하여 중간계로 피신하였다는 것에는 ‘출애굽’과 ‘망명-순례’ 모티브가 보인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은,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원래 살던 땅에서 ‘탈출’한다. 원래 살던 땅에서 탈출한 그들은 타지로 ‘망명’하여 그 땅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터전을 일군 땅에서 ‘이방인’이자 ‘순례자’인 것이다. 또, ‘신실한 자들’의 지도자인 엘렌딜의 이야기에는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역사 모티프가 들어있다. 두 왕국이 나뉘기 전 망명왕국 전체를 다스리던 대왕 엘렌딜은 이스라엘의 분열 이전의 다윗을 연상케 하며, 그의 사후에 북왕국 아르노르가 마치 북조 이스라엘처럼 배교자 왕들로 인하여 먼저 멸망하게 되는 것이나 남왕국 곤도르가 마치 남조 유다처럼 홀로 정통성을 보존하여 악과 싸우게 되는 것 역시 이스라엘의 남북조 분열 왕국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2. ‘최후의 동맹’ 

 증오의 영이 되어 다시 중간계로 돌아온 사우론은 자신의 땅인 모르도르로 돌아와 한동안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가 가장 증오하는 엘렌딜과 그 백성이 자신의 영토 서쪽 지경에 바짝 붙어서 나라를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분노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 망명왕국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전에 군대를 모아 급습하였다. 그러나 그가 일으킨 전쟁은 너무 섣불렀다. 그가 공격을 가하자, 중간계의 요정(엘프)들과 인간들이 훗날 ‘최후의 동맹’이라 불리는 동맹을 결성하여 맞선 것이다. 

결국 사우론은 패했고, 이실두르의 용맹함으로 ‘절대반지’는 잃게 되었다. 자신의 반지가 없는 사우론은 다시 한 번 물리적 형체를 잃었다. 그러나 ‘신실한 자들’의 대왕 엘렌딜은 전사하였고, 망명왕국은 나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중간계의 제 2시대는 막을 내렸다. 

 바로 이 부분이 영화 『반지의 제왕』 삼부작의 첫 장면에 나오는 전쟁이다. 요정(엘프)들의 여군주 갈라드리엘은 유달리 담담한 목소리로 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The World is changing)…” ‘최후의 동맹’이 악마 사우론을 전쟁에서 이겼으니 기뻐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크나큰 희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라졌어야 할 사우론과 그의 절대반지가 단지 행방불명된 채로 전쟁이 끝났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