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에서)고독의 힘
2022/07/22 05:27 입력  |  조회수 : 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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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넓지도 않은 집 안, 구석구석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잡동사니들을 꺼내 놓으니 정말 어마어마하다. 왜 이유가 없겠는가! 다 사연이 있어 버리지 못하고 끼고 돌다 보니 이렇게 쌓이게 된 것을. 

 거추장스럽다고 침대 밑으로 쑤셔놓고 생활 공간을 넓게 써야 한다며 다락 장까지 만들어 머리 위에 올려 매달아 놓고 산지, 꽤 오래다. 휴가 같은 방학에 마음 다져 먹고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정리하려고 벼르던 날을 잡아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시작한 어느 날, 정작 정리는 말 뿐, 자꾸만 한 켠으로 물건들을 옮겨 놓으니 매한가지다. 날리는 먼지와 까맣게 묻어나는 발바닥 닦는 일이 더 분주하다. 

 일이 없어서 심심하면 심심한대로, 그렇게 살아도 될 일을 아무 일도 없이 사는 것은 무의미하며, 실속 없이 세월을 허비하는 일이라며 잠시의 틈도 두지 않고 달려 온 그 시간들과 함께한 잡동사니들을 처분해 버리듯, 정리하려고 시작했건만 또 그 속에 빠져들어 허우적댄다. 이민 길에 오를 때 달랑 서너 개의 가방이 고작이었던 보따리 안에 꼭 가져가야 한다는, 먹을 것들을 따돌리고 소중히 가져온 것은 국어국문학 총서 스무 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자존심이자 나의 전부인 것을 그래도 끼고 있어야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지 않을 거라는 얄팍한 속임수에 말려들어 그랬던 것 같다.

 음악 지도를 하기 시작하며 여행길에 오를 때마다 구입한 음악 서적이 방하나를 차지한다. 바이엘, 소타티네, 인벤션, 교회 음악용 악보들...... 취미 삼아 배운 띠종이 접기, 종이로 꽃 만들기, 심지어 바느질 놀이...... 이에 필요한 서적과 재료들이 또 한 무더기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에 유일하게 자료를 통한 지식 습득은 서적뿐이었으니 여행 가방에 반 이상을 온통 이런 것들로 채울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소모되는 것이라면 없어지겠으나 고스란히 쌓여만 가는 짐들은 당당히 지금도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르치는 대상들도 각각이어서 교재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한국 국어 교과서와 참고 교재로 도배를 하고 있지만 문학 소설과 기독교 서적의 순위를 아직 젖히지 못한 실정이다. 며칠 남지 않은 기간에 다 정리를 해야 하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고독은 병적인 외로움을 미화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고독을 느끼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안병욱씨는 [고독을 그리워 하며]라는 수필에서 교훈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으로 때론 고독이 필요한 것임을 나타냈다. [사색에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색하기 위해서 주위의 접촉에서 격리되어 조용한 장소를 구한다. 더구나 자기 성찰에는 그러한 환경이 요구된다. 고독은 사색하기 위한 조건이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자기가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을 갖는다.] 고독은 혼자만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가. 

 사회 관계 속에서 떨어져 나가야 느끼는 고독이라면 이미 인간관계의 본연을 상실한 것이 되고 만다. 내가 버려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은 바로 무엇인가. 정리해야 한다는 것은 나를 지키는 일을 더 많이 갖고 싶은 욕심이고 버려야 한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얽힌 인연들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모든 서적들은 곧 나의 전부이자 나와 관계된 사람들과의 끈이다. 

 먼지 털어 다시금 정리하니 그 속에서 온갖 것들이 소중한 보물이 되어 다시 내 속에 힘을 주고 있다. 없앤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미 든든한 버팀목으로 튼실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는데 말이다. 혼자 고독을 느낄 수 있는 힘은 이론이 아니라 생활 속에 실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휴가 중의 한 날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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