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해 세 번으로 치달으면서도 꿋꿋하게  이 집을 지키고 산다. 한 때는 북적이던 집이었다. 자식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며 지금은 오히려 집안이 횡하다. 두 늙은이가 거처하기엔 나름 집이 제법 넓다며 방 하나씩을 여분으로 차지하고 자신들만의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으니 이 또한 이 곳을 지키고 있음에 보탬이 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어릴 적 내 방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고 지금에 와서야 어부지리로 얻은 방에서 그나마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업자료를 만들고 이런 글 나부랭이도 쓸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말년에 누리고 있으니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 더 보탠 셈이다. 느닷없이 집 안 사정을 드러내는 일이 글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시작은, 잠시 안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이 오늘 쓰려는 글의 소재가 되었다고 한다면 장황히 늘어놓은 서두를 납득할 것 같다. 

 작년 연말에 집을 떠나 새해에 집으로 돌아 온 보름 동안의 나들이에 나의 작업실에 방을 가로지른 거미줄이 생겼다. 희미한 가느다란 줄, 창문을 열면 바람에 끊어질 듯 말 듯 흔들거리지만 흔들릴 뿐, 끊어짐 없이 단단한 이 거미줄을 어찌해야 할지...... 아예 처음에 제거했으면 됐을 일을 그냥 내버려둔 게 화근이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굵어지는 이 줄을 만드느라 거미는 주인 없는 낮 동안, 혹은 밤 사이에도 열심히 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나보다. 야박하게 잘라 버리기엔 그 길을 잃어버릴 거미가 안쓰러워 그냥 두고 본다.

 백석 시인의 ‘수라’가 생각났다. <거미 새끼 하나가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하다. 나는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거미가 소재로 사용된 이 시의 제목은 ‘수라’다. 수라는 ‘아수라’의 준말로 우리가 흔히 난장판을 가리켜 ‘아수라장’이라 하는 그 의미인데 ‘싸움 따위로 혼잡하고 어지러운 상태에 빠진 것’을 말한다. 시인이 처한 상황--가족과의 이별--이 거미 가족의 흩어짐을 안타깝게 여기는 연민으로 연관되어 시에 담겨있지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시대의 아수라장을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의 만남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시에 옮겨 놓았다고 해석해도 무관할 것 같다. 

 요즘은 우리 주변이 자연 재해에 아수라장이다. 쉬이 사라지지 않는 병마는 지칠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극성이고 이것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해결 정책은 이랬다저랬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거미줄은 점점 굵어진다. 거미줄을 치워 새 집이 되거나 거미줄 때문에 집을 옮겨야하는 일은 없을테지만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그저 시간이 해결되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면서 지내온 우리의 긴장된 삶이 언젠가 끝나길 바라듯, 잠시 이 방에 찾아 온 거미 가족의 수고가 저절로 끝나 버리길 기다리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