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드라마를 보다 흥미를 갖게한 얘깃거리가 있어 결론이 어찌될까 하는 호기심으로  끝까지 보았다. 평생 12첩 이상의 밥상을 끼니 때마다 차린 아내가 반기를 들고 더 이상 밥상을 차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남편과의 결별을 요구한 아내의 얘기다.  

 우리나라에는 상차림이란 말이 있다. 상차림은 5첩 반상의 외상 차림을 기본으로 반찬의 수에 따라 조절하며 밥과 국, 더운 음식과 찬 음식에 따라 놓는 위치가 다르며 심지어 수저를 놓는 자리도 정해져 있다. 손님을 초대할 때는 5첩 반상이나 7첩 반상의 범위에서 두레상 차림이나 주안상 차림, 또는 교자상 차림으로 한다. 손님에게 반상을 낼 때는 손님 앞에 밥, 국이 놓이도록 상을 들고 들어간다. 주안상은 처음에 술과 안주를 대접하고 술이 끝날 즈음에 밥이나 국수를 내어 식사를 하도록 하며, 식사가 끝나면 숭늉을 낸다. 식사 후에는 음료나 차를 대접하는데, 이 때 다과를 함께 낸다. 이런 격식에 맞춘 밥상을  대접으로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상식적인 말은 이쯤에서 그만 두자.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식사는 끼니로 음식을 먹는 일이고 끼니란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밥, 또는 그렇게 먹는 일이다.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이----요즈음엔 듣기 어려운 말이 되긴 했지만----친교를 위한 어떤 의식이나 대접의 의미로 쉽게 말들 하는데 사실 한 번만 먹어서 될 일도, 한 끼 먹어 친분을 쌓아 질 일도 아니다. 게다가 뱉은 말을 실행하기란 더욱 어려운 법, 초대하여 밥상을 차리는 대접이라면 몰라도 같이 먹는다는 것만을 생각하여 마련한 식사 자리라면 음식으로 굶주림을 해결한 것과 상차림의 수고와 정성을 다른 것으로 대신한 것에 불과하다.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며, 한 상에 둘러서 먹고마셔…. 온식구가] 이런 찬송의 가사가  요즘 아이들에게 이해 될는지 모르겠다. 아이들과 식탁을 마주할 일이 자꾸 줄어든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음식문화의 차이가 그 중에 하나다. 안도현 시인은 이런 어린이들에게 밥을 맛있게 먹는 비법을 가르쳐 주려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논에서는 쌀밥, 밭에서는 보리밥, 고들고들 고들밥, 아슬아슬 고봉밥, 이에 물렁 무밥, 혀에 찰싹 찰밥, 달달 볶아 볶음밥, 싹싹 비벼 비빔밥,……’ 밥에 붙이는 말이 정말 가지가지이다.

 가족을 위한 상차림에는 무슨 말이 적당할까? 오늘도 훈련병처럼 마음 다져먹고 차린 밥상에 수저 놀림이 바빠진다. 분명 계산대로라면 한 끼 성공인 셈이다. ‘그 까짓 것 쯤이야, 별거 아니지…’라는 게 평소의 나의 모습이지만 성공의 여부를 칭찬이라는 것으로 확인하고야 비로소 마음이 움직인다. 드러내 놓지 못하고 받는 야속한 감동이다. 

 글을 쓰다보니 밥상을 더 이상 차리지 않겠다는 아내의 얘기를 다 못하고 끝낼 것 같다. 상차림을 5첩으로 확 줄이고 세 때의 밥을 두 끼로 줄이는 것으로 합의하여 따돌림 당하는 찬밥 신세는 면하게 된 것이 결론이다. 엄마가 담근 김치 맛을 아는 아들,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수저질하는 식구가 함께 한다. 한솥밥을 먹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