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14일 격리 끝나는 낮 12시까지는 참 지루했습니다. 어떻게 격리기간을 잘 보냈는지 돌이켜 보면 참 신기합니다. 김치와 반찬거리를 냉장실과 냉동실에 분류해서 정리해놓고 쪽지를 써 붙입니다. 삼겹살, 포기김치, 깻잎장아찌 등 다음에 여기 머무를 선교사를 위한 배려입니다. 이 선교관을 운영하는 ‘생명나눔과 웨슬리 사회봉사회’를 방문하여 감사인사를 하고 한달동안 사용할 승용차 열쇠를 받았습니다.
장모님 모신 승화원으로 첫 발길
격리가 풀리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작년에 세상을 떠난 장모님 고 양경자 권사입니다. 벽제의 서울 승화원 3층 5496 납골함입니다. 80여년을 사셨는데 남은 것이라고는 대리석 납골함에 적힌 “고인명: 양경자, 생년월일: 1933년 12월 23일, 사망년월일: 2020년 02 20”이 전부입니다. 그 함 안에는 납골단지와 본인 독사진과 가족사진이 전부입니다. 한참을 추모하며 망연자실한 아내의 모습은 아프실 때 제대로 돌봐드리지 못하고 임종조차 지키지도 못한 불효를 용서하지 마세요, 어머니. 이런 표정입니다. 뒤에서 저도 속으로 “죄송합니다. 장모님, 목회 한답시고 사람노릇도 못하고 삽니다.”
그리고 그 곳을 나와서 장인어른이 살고 계신 아파트로 향했습니다. 보름간 갇혀 있어 우리 몰골도 장난이 아닙니다.
머리를 다듬고 어른들을 뵈어야 걱정을 덜하시겠다는 생각을 하고 먼저 단골 미용실로 갔습니다. 2년만의 만남에 서로가 반갑습니다. 그리고 장인어른을 찾아뵙습니다. 승화원에 다녀왔다는 말씀을 드리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로 한 날을 알려드려 안심시키고 강화도 제 친정집, 아내의 시집으로 갔습니다. 너무 늦으면 식사준비로 번거로울 듯해서 강화읍 ‘왕창잘되는 집’에 갔습니다. 밴댕이 삼합으로 저녁요기를 하며 특허 받은 “쑥양념장”은 다 먹었냐고 이번에는 더 큰 통에 가져가라는 등 2년간 밀린 이야기입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두 분 양친과 가까이 사는 동생 내외와 해후를 하며 긴 하루의 잠을 청했습니다. 오랫동안 불을 넣지 않은 우리 방은 약간 추웠습니다. 다감하게 잠을 자야 냉기를 이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새날 아침입니다. 아버님의 부지런함은 낼모레 구십나이로는 절대로 하실 수 없는 불가사이한 일입니다.
부모님 사시는 고향집 주변의 일상
이미 강낭콩은 엄지손가락만큼 커져서 밭에 심었고, 포트에서 자라는 옥수수 모는 손가락 정도 비닐하우스에서 자라서 노지정식을 기다리며 하늘거립니다. 도려서 먹게 큰 시근치, 몽우리 진 튤립들, 지난 춘분 즈음에 닭장에서 깐 애기 병아리들, 재래종 닭, 청계, 오골계가 아버지의 놀이터 닭장에서 활기찹니다. 꿀벌이 월동을 하지 못한 가운데 동생 찬웅이가 15통 새 벌통을 가져다 벌충을 해놨습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은 피고, 매화는 꽃맺이로, 두릅은 겨우 순이 눈터 보름은 기다려야 쌈을 먹을 수 있을 듯합니다. 사람손이 닫기 좋게 길게 가꾼 복숭아는 꽃필 준비 중입니다. 천오백 평 집터 구석구석에 심어놓은 더덕은 씨 떨어진 주변에 지당무지(地堂拇指)로 싹이 납니다. 일단 다 캐서 씨알이 굵은 더덕은 식재료로, 가는 것은 다시 땅에 모를 냅니다. 어른 한 키 높이로 비가림 지붕을 만들고 올린 포도 덩굴은 몸통만 남기고 다 잘려서 몸통사이로 하늘이 다 보이는 쇠시렁이 그럴 듯합니다. 집터 중 일부인 뒷동산에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와 몇 그루의 상수리 참나무는 여름 그늘 평상터로 아버지가 당대뿐만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서 가꾸는 나무들입니다. 부지런히 힘든 목회를 마치고 어서 와서 함께 살자시는 어머니의 당부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갈 생각을 하는 주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