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에서)비밀
2021/03/25 20:51 입력  |  조회수 : 768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로 기사전송 밴드공유 C로그로 기사전송

김동순.jpg

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이건, 정말 비밀인데 너에게만 알려 주는 거야” 시작부터 분위기를 조성하며 속삭이듯 꺼내는 이 화제는 반갑지 않은 일임을 짐작하면서도 흥미와 약간의 호기심으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 비밀이란 것을 들어야 하고 또 그 것을 지켜내야 하는 굳은 약속까지 포함하여 상당한 부담을 느끼지만 듣고 싶지 않다고 거절할 용기는 없다. 남의 말을 잘 들어 주거나 입이 무거워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기에, 아니면 전하는 자의 생각이 상대방과 같은 생각이기를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어서 말하고 싶은 대상자로 지목된 영광의(?) 자리일 수도 있다는 우월감이 살짝 있기도 하기에, 너그러운 척하며 상대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이다. 사실상 자신의 문제를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에게 자신의 패배를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대단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듣는 이도 마찬가지다. 우월감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해 그 비밀이 알려지게 되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괜한 시비거리를 주게 되어 난처한 입장이 되는 것을 감내하면서 들어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비밀은 크거나 작게 우리의 곁을 늘 맴돌고 있는 발이 달린 위험한 유희의 말(언어)이다.
 비밀에 관한 여러 가지 말들이 있다. 남자는 남의 비밀을 주로 듣는 편이고 여자는 말을 하는 편이다. 또 남의 비밀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 가에 따라 쓸데없이 으스대기도 하고 자신의 잣대로 상대방을 무시 하는 경향도 있다. 일반적인 일상의 비밀은 속성이 밝혀 진다고 해도 그리 문제 될 것은 없다. 시치미를 떼거나 흔히 써먹는(?) 오리발만 있으면 무난히 넘어가고 아니면 오해라는 글자로 얼버무리면 되니까.
 혼자만 간직해야 하는 비밀도 있다. 경제적 유용성으로 비밀리에 지켜야 하고 발설해서 안 되는 경우, 사업의 경영과 기술의 비밀이 있을 수 있겠다. 이런 비밀을 “이건 정말 비밀인데 너에게만 알려 주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렇게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는 철저히 비밀을 간직하면서 남의 비밀을 은근히 퍼뜨리는 헤픈 행위는 상대의 허점을 간접적으로 남에게 알리는 바르지 못한 처신이다. 
 ‘별’, ‘마지막 수업’이란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은 산업화로 인한 전통의 쇠퇴와 상실에 대한 주제를 [비밀]이라는 문학적 장치를 통해 긴장감을 강화한다. [프로방스 마을에 풍차 방앗간은 증기 제분소가 들어오기 전까지 마을의 상징이고 행복한 일상의 공간이었다. 증기 제분소에 밀리어 방앗간의 일감이 떨어졌는데도 풍차는 계속해서 돌고 있다. 이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마을 아이들이 영감이 외출한 사이에 방앗간을 들여다 봄으로써 그 비밀이 밝혀진다. 밀을 빻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코르니유 영감은 회벽조각,벽돌, 폐기물 등을 주워다가 빻았던 것이다. 비밀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풍차 방앗간에 밀을 맡기게 되어 영감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풍차 방앗간은 다시 사라지고 만다.] 
풍차 방앗간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이 사라지게 되는 것들에 대한 쓸쓸한 향수와 연민을 상징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코르니유의 행동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이다. 누구든지 밝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이 한가지쯤 있을 법하다. 털어 놓아야 풀릴 것 같은 비밀도 있고 소중하게 간직할 때 그 가치가 드러나는 비밀도 있다. 남이 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비밀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진정한 비밀은 남과 상관없는 혼자만의 신비로움이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ammicj@hanmail.net
"남미복음신문" 브라질 유일 한인 기독교 신문(nammicj.net) - copyright ⓒ 남미복음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 많이본기사
  • 화제의 뉴스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설교하는 이영훈 목사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남미복음신문(http://nammicj.net) | 창간일 : 2005년 12월 2| 발행인 : 박주성 
    주소 : Rua Guarani, 266 1°andar-Bom Retiro, São Paulo, SP, BRASIL
    기사제보 및 문서선교후원, 광고문의(박주성) : (55-11) 99955-9846 nammicj@hanmail.net
    Copyright ⓒ 2005-2024 nammicj.net All right reserved.
    남미복음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