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물물 교환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곡식을 서로 주고 받는 일이, 옛날 고려 시대에 있었다. 교통수단이 고작 말(馬) 뿐이어서 교역할 때에 곡식(쌀)을 말에게 싣는다면 몇 섬 싣지도 못하고 먼길을 가야하기에 날짜도 열흘이 넘게 걸리고 소와 말이 없는 가난한 백성은 쌀을 직접 등에 지고 가다가 추위와 더위에 병들어 길에 쓰러지기도 함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이런 폐단을 해결하려면 돈을 만들어 써야 한다는 주장을 임금님께 올린 고려 시대에 의천의 얘기다.
[돈을 만들어 쓰면 곡식을 사람이 지거나 말에 싣고 가는 고충을 덜 수 있고 돈은 견고하기 때문에 저축하는 데도 지장이 없고 벼슬아치들에게 봉급을 줄 때에 돈을 사용하면 손쉽게 지급할 수 있고 간교한 무리들의 부정을 막아 곤궁한 백성의 이익을 돌 볼 수 있다. 이 제안을 수락하여 실행하게 되면 슬기로운 임금이라는 소리를 후대에까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라며 상소문을 올렸고 책은 여기에서 결론 없이 끝을 맺는다.
돈을 사용하게된 유래를 보면 여러가지 얘기들이 참 많다. 곡식을 주고 받은 ‘곡화’를 비롯해 샐러리 맨--salaried man--은 아프리카에서 처음 사용하였는데 소금(salt)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브라질에서 비슷한 발음으로 쓰는 살라리오—salario—는 이것과 유사하고 , 우리 한국인이 쓰는 ‘돈’은 [돌고 돈다]라는 말에서 파생되어 유통의 용도로 써야한다는 설도 있다. 시작이 어디서 되었든 돈이라는 것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편리라든가, 효율이라든가, 인간의 유익을 생각하여 만들어졌으나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돈[화폐]의 역할은 인간의 가치 위에 존재하여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려는 욕망의 다른 도구로 전락되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소시민과 영세 업자들의 생계를 돌보기 위해 돈을 지급한다.
브라질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편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 절실함 때문이다. 욕망을 채운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말장난이다.
문학은, 욕심을 품지 말고 자신을 비우라는 말들을 하도 많이 해서 무슨 경전을 읽는 듯하다.
피천득씨의 [은전 한 닢]은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을 회고하며 쓴 수필이다. 어떤 거지가 평생
은전 한 닢을 모으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결국 한 푼, 두푼의 눈물겨운 저축으로 목적 달성을 한 후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
가진 것이 없는 자는 목표치도 가난하다. 성경에서의 금 한 달란트(약 20.4 kg)는 일용자의 20년의 삯이라고 한다. 이 달란트(talent)는 ‘재능’이라는 말의 어원을 만들었다. 나에게 있는 달란트를 찾아보자. 평생을 모으지 않아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계를 넘어선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는 고귀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일용할 양식이 오늘도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