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2020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여행에 어쩔 수 없이 몸을 맡기고 거의 다 도착했다며 위로하고 아직은 살짝 원망도 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내용이 어떻든 변함없이 시간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오늘도 내일도 해가 뜨고 지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 자리를 오고 간다.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무력한 나를 위로한다. 이 주어진 시간 속에 우린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이상한 바이러스의 지배를 받으며 우리의 생활 습관을, 바른 생각을 얼기설기 바꾸어 놓았다. 어쩌면 정상적이지 못한 생활의 리듬을 이것으로 핑계거리를 하나 만들어 편한대로 갖다 붙이며 살아온 것을 아주 잘 살아온 것처럼 여기는 희한한 삶의 방식,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일까 싶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것 조차 모순이다.
며칠 전, 서울대 박동규 교수님이 문학계의 거성인 부친 박목월 시인의 삶의 얘기를 들려주는 글을 읽으며 훌쩍 거리기도 송구한 밤을 보냈다. 박목월 시인의 시 창작의 원동력은 가난과 기독교적인 삶의 태도를 고사한 것이라고 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내외가 돋보기를 서로 빌려가며 성경을 읽었다. 눈이 오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 하니라” 마태복음 1장 2장 읽을수록 그 신비, 그 은총, 너무나 감사해요. 아멘. 그리스도의 탄생 안에서 우리는 거듭나고 차분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었다. 이 연령에 범죄할 리 없을 것 같다. 그럴수록 남은 여생을 얼룩없이 살기를 다짐하며 우리들의 앞길에도 순결한 축복의 눈이 쌓이고 깨끗하기를 간구한다. 벌써 크리스마스가 가까웠군요. 그렇군. 올해 성탄절에는 성가대에 끼어 우리도 큰 소리로 구주 예수 오셨네를 부르며 골목을 누벼볼까요. 함박눈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벌써부터 성탄의 새벽의 경건한 아침 공기가 방 안에 서려왔다]
지금 우리의 상황과 너무나 동떨어진 성탄의 시 인가요? 정상적인 생활이 한 일년간 비껴 나가다 보니 어떤 것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서로 뒤죽박죽이 되어 글을 쓰는 자도 정신 줄 잠깐 내려놓고, ‘이것도 내 맘이야’하며 억지를 부립니다. 만약에 코로나가 없었다면 그리운 이들을 만나러 여행도 가고 그래도 한 번쯤, 하면서 쇼핑도 하고 회식 핑계삼아 한 끼 식사 준비도 당당하게 건너 뛰고 한 해 동안 수고한 나에게 그럴싸한 옷 한 벌쯤 마련해 주어야 되지 않느냐고...... 암튼 이렇게 살아야만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너무나 오랫동안 젖어온 습관이 되었던 건 아닐까? 예기치 못한, 어처구니 없는 삶을 살다 보니 생각이 여러모로 바뀌어 가는 이상한 현상, 아니 진작에 가졌어야 할 정상적인 생각이 늦게나마 이제야 돌아온 느낌이다.
박시인이 입었던 고작 여섯 벌의 내복은 구멍으로 성한 곳이 없었고 겨울이면 잉크가 얼어 입으로 녹여서 쓰느라 입술이 퍼렇게 물드셨다고 한다. 노트북을 게임기 두드리 듯 찍어 대며 글을 쓰는 내 꼴이 이렇게 건방질 수가 없다. [오늘은 나의 것이고 내일은 하나님의 것이니......] 시인의 말을 곱씹으며 조금 더 겸손해지길 소원해
본다. 성탄을 앞두고......